• 이 냉동고를 열어라
        2009년 06월 04일 07: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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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에 그을린 그대로
    134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얼어붙은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다

    까닭도 알 수 없다
    죽인자도 알 수 없다
    새벽나절이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토끼처럼 몰이를 당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쓰레기처럼 태워졌다
    그들은 양민이었지만 적군처럼 살해당했다

    평지에선 살 곳이 없어 망루를 짓고 올랐다
    35년째 세를 얻어 식당을 하던 일흔 둘 할아버지가
    25년, 30년 뒷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할머니가
    책대여점을 하던 마흔의 어미가
    24시간 편의점을 하던 아내가
    반찬가게를 하던 이웃이
    커피가게를 하던 고운 손이
    우리의 처지가 이렇게 절박하다고
    호소의 망루를 지었다

    돌아온 것은 대답없는 메아리였고
    너무나도 신속한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이었다
    6명이 죽고 십여 명이 다치고
    또 십수 명이 구속되었다
    이웃이 이웃을 죽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단지 쓰레기를 치웠을 뿐이니
    단지 말을 잘 듣지 않는 짐승 몇을 해치웠을 뿐이니
    경찰과 용역깡패들과 정부와
    대통령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그렇게 6명이 죽고도
    이 사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수의 시민들이 차벽과 연행에 맞서
    양심의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부터 더운 초여름까지
    어둔 거리에서 쫓기며 항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 역시 수배되거나, 체포되거나, 소환당했다
    용산참사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유가족들이 다시 경찰에 밟히고 희롱당했다

    하루 이틀 날짜가 쌓여 넉달이 되었다
    하, 유가족들의 피눈물이 넉달이 되었다
    하, 이웃들의 원통에 찬 한숨이 넉달이 되었다
    하, 죽어서도 무슨 죄를 그리 지어
    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날이 넉달이 되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용산에서 아직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
    열린 사회라고 한다
    억울한 죽음들이 넉달째 차가운 냉동고에 감금당해 있는데
    살만한 사회라고 한다

    134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
    134일째 우리 모두의 양심이
    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당해 있다
    134일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차가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
    134일째 이 사회의 역사가
    차가운 냉동고에 얼어붙어 있다
    134일째 우리 모두의 분노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어가고 있다
    120일째 우리 모두의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는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것인 민주주의가 볼모로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인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 틀려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연대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정당한 분노가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너와 내가, 당신과 우리가
    모두 한 마음으로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

                                                      * * *

    [덧말]

    전 대통령의 죽음과 용산의 죽음

    5월 30일 새벽 5시. 근 1년여만에 열린 시청 광장에서 다시 연행이 되었다. 국화꽃 다발 수십 송이를 안은 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이 간신히 연 민주주의의 광장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가난한 벗들과 함께 용산참사 희생자/열사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차리고 앉아 있었다. 조금은 외로웠다.

    1월 20일 용산참사가 난 그날부터 넉달 넘게 순천향병원과 용산4구역으로 출근을 했다. 1980년 5월 광주 이후 국가공권력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가장 많은 수의 양민들이 몰살당한 일이었다. 12시간만에 정부는 유가족들을 따돌리고 강제 부검을 해서 진실을 은폐했다.

    서울지역만 해도 260여 곳에서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이라는 미명하에 이렇게 평범한 우리들의 이웃이 사람 취급받지 못하고 내쫒기고 있었다. 전국적으로는 600여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의외로 담담했다. 포기했다고 해야 맞을까. 참사 현장 분향소를 찾아주는 고마운 시민들도 꽤 있었지만 용산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다. 정부는 안간힘으로 용산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갖은 탄압과 억압을 가해 왔다.

    단 한번의 추모제도 합법적으로 해보지 못했다. 청와대 홍보실까지 나서서 강호순 사건을 이용해서 용산 문제를 덮으라고 했다. 검찰은 ‘이웃이 이웃을 죽였다고’, ‘아들이 방화를 해서 일흔 둘의 아버지를 태워죽였다’고 발표했다. 핵심 수사자료 3000쪽 공개를 거부하고, 고인들을 연거푸 확인사살하고 있다.

    나는 외로웠다

    외로웠다. 용산에서. 가난하게 살다 어느 한 순간 건설자본들의 이해만을 위해 내쫓겨 철거민이 되었다가 급기야 불에 타죽은 남편들을 그리며 초췌해져가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먹먹해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고 전국에서 수백만의 추모 인파들이 국화꽃을 고인의 영전에 놓아주었다. 죽어서라도 영혼만은 안식을 찾으라고. 따뜻한 연대의 마음들이 아닐 수 없다.

    그 거대한 물결들 속에서 그러나,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지금도 차가운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죽어서도 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다섯 구의 시신이다. 용산 4가 어두운 골목길에 삼삼오오 앉아 날마다 경찰의 무자비한 연행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양심만은 놓을 수 없어, 진실이 위협에 의해 꺾이는 수모를 볼 수 없어 넉달 넘게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던 29일 새벽 7시에 명도집행 나온 용역깡패들과 경찰들의 합동작전에 의해 무슨 쌀푸대처럼 끌려나오던 문정현, 이강서 두 가난한 거리의 신부님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사과를 할 것이라 한다. 인지상정,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 당연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국가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용산참사 철거민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국정 책임자로서 사과하는 일이다.

    쌀푸대처럼 끌려나온 거리의 신부님들

    진상을 규명해주고 책임자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그것이 공동체 사회의 미래를 위해 아픈 어제를 위로하고,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는 한 매듭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함께 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안타까운 죽음에도 함께 해주는 마음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넉달 넘게 시신 인도조차 받지 못하고, 눈물로 날을 지새우는 용산 참사 유가족들도 소박하나마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이 냉동고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평범한 사람들의 인권이 어떻게 취급받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어 있다. 이 냉동고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수은주가 되어 있다.

    이 냉동고는 우리 사회 양심들의 용기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어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주자. 우리 모두가. 이 얼어붙은 사회를 열어주자. 우리 모두의 따뜻한 가슴으로. 더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서늘한 가을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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