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복지연합’으로 나가자
        2009년 06월 01일 03: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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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의 위기 아닌 위기

    이 글에 주어진 두 화두, ‘MB 시대’와 ‘좌파 정치’는 어쩌면 별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역사적 필연성에 근거하는 좌파의 시간은 대기(待機)와 낙관 사이에서 운동하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한정된 5년의 대통령 임기는 촌음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관망하는 좌파는, 그 필연이 도래했을 때 아무도 살아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파시즘’이라는 예단에서부터 ‘노무현 2기’라는 평가까지로 다양하다. ‘파시즘’이라는 평은 대체로 자유주의파, 문화적 관점, 비관적 경고에서 나오고, ‘노무현 2기’라는 평은 대체로 사회주의파, 경제적 관점, 냉소적 분석에서 나온다.

    이명박의 강박

    이명박 정권 스스로의 동인, 그리고 그 정권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권을 가장 먼저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 ‘다음’의 정권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이 정권이 하는 일이 노 정권과 ‘다르기’를 바라고, 이 정권의 정치 기획은 노 정권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그 ‘다름’이 사실인가 아닌가, 좋은가 나쁜가는 정권이든 국민이든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노무현과 민주당은 2004년 국가보안법과 언론법, 과거사 등에서 ‘개혁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2008년 국정원법과 미디어법, 교과서 등에서 ‘보수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것은 대립자와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정체(正體)를 확인하는 것이 노무현과 이명박 정치행위의 근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제적 포만을 줄 수 없어 이데올로기적 위무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한국 보수의 위기를 반증한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많이 다르지만,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과 다른 정도보다는 작게 다르다. 조금 긴 관점을 들이대면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비슷하고, 노무현 이명박 정권이 비슷하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대목은 그 정권들이 일종의 붐(boom)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노와 이는 공히 각각의 당 안에서는 취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386’으로 불리는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群)의 선도적이고 일관된 지지로 집권에 다다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민주주의의 심화에 대한 열망이었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는 그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감이 사회경제적 욕구로 급속히 전화된 점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경제사회 정책이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욕구 실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증명되면서 그의 지지세력은 팬클럽과 삼성 일족으로 협소화, 견고화된다.

    이명박 정권 역시 촛불집회를 거치며 수도권 386과 절연되고, 결국 그 정권에는 교회, 우익인사 등 공신(功臣)만이 남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나라당 안에서 색깔을 의심받기조차 하던 이명박이 ‘수구 꼴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명박 현상’

    결국, 3김 시대에 뒤이은 ‘노무현+이명박 현상’이란 [ ① 기성정당 지지기반의 이완 ②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여론 주도성 ③ 그 인구집단 욕구의 급격한 변화 ④ 기성정치권의 욕구 수용 불가에 의한 괴리 ]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어찌어찌 몇 편 쇼로 집권했으나, 국정능력 없음이 금방 폭로되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진정한 계승자이다. 개혁우익이 망해간 것처럼 지금 수구우익이 망해가고 있다. 이명박과 그 후계자들이야 계속 권좌에 앉아 있겠지만, 한국 우익 전체의 무능력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제 한국 정치는 장기파동에 들어선 듯하다.” – 이재영, 「한국 우익 겨우 이 정도였나?」, <레디앙>, 2008. 5. 23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무능하다거나 한국 정치가 장기파동(long waves) 국면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곧 급격한 정치변동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가 거리에서의 아노미와 감성적 일탈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운동의 한계가 아니라, 그 운동이 처해있던 정치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한다.

    민주당들은 이미 촛불시위자들의 눈 밖에 났고, 사회주의 정파들은 ‘정치’에 입문하지 못한 상황, 이명박 정권만이 유일한 국가 정치세력이라는 사실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즉, 보수우익의 위기는 그 상대자들의 침묵으로 인해 현상하지 못하고 잠재한다.

    2. 좌파 위기의 뿌리

    위기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어느 기준에서 어찌 보느냐에 달려 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한 한국 좌파정치의 장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을 굳이 위기라 할 필요도 없겠다. 짧은 시간에 꽤 커졌고, 더 커져야 할 미래의 도상에서 잠시의 정체나 퇴보를 피할 도리는 없으므로, 지금 한국 좌파정치가 보이는 지지부진함이란 정상적 발전과정의 한 시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토막난 국회 의석 수, 저조한 지지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같은 것이 우연적 요소들에 의한 일시적 머뭇거림이라기보다는 그 운동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약점이 표출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좌파정치의 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

    어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조만간 재통합할 것을 빌어 마지않는다. 어느 나라 어느 정당에서든 내부 정파가 있어 왔으니, 민주노동당파와 진보신당파가 한 당 안에서 어울려 놀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는 양자가 결코 융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민주노동당 운동의 시작에는 여러 배경이 있는데, 당시의 급진적 정치운동을 대표하는 두 조류, 전국연합과 진보정치연합이 고사(枯死)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동거를 꾀했고, 그 동거자들이 획득한 ‘민주노총 독점 영업권’에 여타 세력이 꾀어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후 10년 동안 두 조류와 여타 세력은 한 당 안에 있으되, 결코 한 당이었던 적이 없다. 강령과 규약은 단지 종이 위의 잉크 찌꺼기였지,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을 만들거나 제어하는 준거로 기능한 적이 없다. 대표 권영길은 명시적으로 ‘사회주의’를 부정했고, 소속 국회의원들은 “강령을 읽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당비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학생 데모대의 식대로 쓰이기 일쑤였다.

    이처럼 비당적인 조직이었음에도 민주노동당이 1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당의 미개척 영역이 워낙 광대했던 덕분이다. 초기에 수십 개의 지구당을 장악하고 있던 정파들은 백여 개의 지구당으로 진출하면서도 다른 정파와 심각한 충돌을 빚지 않았고, 어느 누구든 민주노총이라든가 사회운동의 여러 영역에서 ‘민주노동당’으로 행세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미개척지가 점차 줄어들면서 당 성장이 포화에 이르고, 지구당과 분회 차원에서까지 정파끼리의 충돌이 빚어지고, 당 밖에서 누가 민주노동당을 대표할 것인가가 ‘모의’가 아닌 ‘실탄(實彈)’의 문제가 된다.

    ‘형식 민주주의’로 후퇴한 민주노동당 정파들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그깟 강령 따위’에 개의치 않았지만, 나중에는 당 권력을 경과하면 공중파 TV에서 “북핵은 자위권이다”라거나 “민주노총이 각성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당선 가능성도 없는 출마가 고역이었지만, 나중의 민주노동당에게는 적어도 비례명부 상위권은 정파들의 명운과 장래를 좌우하는 뜀틀이 되었다.

    당 이념을 대신한 유일한 규율은 지극히 형식화된 다수표였는데, 그나마도 ‘북조선식 강권 투표’나 ‘남한식 매수 투표’가 횡행하며, 다수파든 소수파든 ‘민주주의’로 후퇴하게 되었다.

    애초 쌍방 누구도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고사는 모면하였으므로 동거의 이유가 사라졌고, 가족이 불었으니 더 이상 비좁은 집에 동거할 수도 없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그만큼만 기획됐었고, 결국 성공했다.

    형해화된 강령 쪼가리가 아니라 통일된 이념을 가지지 못한 것이 민주노동당의 실패라면, 노동계급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민주노총의 오늘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계급 다수자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와 정당함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노조운동, 정당화의 실패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자본 독점화와 정치 자유화에 경제투쟁으로 대응한 유일한 노동운동이다. 머리띠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든, 언론에 어떤 요구사항을 내걸든 1980년 이래 모든 쟁의(쟁의발생 신고 기준)의 95%~99%는 단위 기업 노동조합원들의 경제이익 확대 여부에 의해서만 마무리되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비조합원의 임금이 대기업 조합원의 41%로 떨어지는 과정은 기업노조 경제투쟁의 20년 축적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 이재영, 「민주노조운동 비판 ① : 계급 분열의 세 가지 기원」, 2006. 9. 27

    “노조의 교섭요구안과 단체협약을 조합원 경제 의제, 조합원 비경제 의제, 비조합원 의제로 나누어 봤을 때, 1987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5년 가량은 비경제 비조합원 의제가 증가하다가, 그 이후 15년 가량은 축소되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정규직의 고용 보장은 강화되고, 비정규직 및 여성노동자 등 취약 노동계층의 차별 시정은 약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2003년을 기준으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노조 비율은 0.2%, 사내 비정규직의 의견 청취 규정이 있는 노조 역시 0.2%에 지나지 않는다.

    … 계급의 단결과 다른 계급에 대한 영향력은 이익 조화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익 조화를 실질적으로 거부했다.

    수직적 분업구조와 불공정거래 상황에서 대부분이 대기업인 기업노조의 경제투쟁은 기업 간 그리고 노동계급 내부의 이윤 이동 제도로 고착되었다.” – 이재영, 「민주노조운동 비판 ② : 기업노조 경제주의의 고착화」, 2006. 10. 2

    “세계 최저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그리고 노동소득 집중도와의 연관성은 한국 노동운동의 현 단계가 한편으로는 상인자본에, 한편으로는 비숙련 직인에 대항하던 장인길드(craft guild) 정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급형성에 실패하였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조운동은 계급연대 이전의 계급선도 운동이다.” – 이재영, 「민주노조운동 비판 ⑤ : ‘민주노조운동 비판 연재’를 끝내며」, 2006. 10. 17

    민주노조운동은 민주화 이전의 가족주의와 민주화 이후의 경쟁논리를 내면화했고, 그를 노동조합운동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선도적 조직 가담자들의 ‘고성장기 과실 분배형 노동운동’으로 출발하여, 조직 외부의 불안정노동에 대항하는 ‘저성장기 과실 배제형 노동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은 그 공개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실질적으로는 자본독점운동의 한 축으로 편입되었다.

    3. 상상의 확장, 정치로의 집중 : 촛불프라이머리

    좌파정치의 위기가 이념의 부재와 세력 형성의 실패로부터 기인한다는 진단은 별스럽지 않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정체와 분당, 민주노총의 퇴락을 거치며 그런 문제의식이 첨예화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을, 곧 사라질 그 무엇이 아니라 영국의 페이비안협회처럼 100년을 갈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바치고 싶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정당들의 흥망과 이합집산을 초월하여 100년을 갈 것이다.” – 주대환, 「구좌파와 전쟁 각오, 동지들에 미안」, <레디앙>, 2008. 9. 2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에 대한 어떤 고민이나 평가 없이 제2창당을 통해 그저 외부 사람을 어떻게 끌어들일 거냐로 가있는 건 심상정 천영세 두 비대위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 총선 이후 신당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문제가 어떻게 토론되고 진행되느냐가 신당에 참여할 수 있고 없고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 단병호, 「나의 탈당 이유는 신당파와 다르다」, <레디앙>, 2008. 2. 29

    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념이나 세력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적 환기 수준이 아니다. 지금, 주대환과 단병호는 진보정당들 밖에서 ‘사민주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사회당 같은 당들 중에 딱히 적을 둘만한 곳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최근 행보는 다분히 ‘탈정당적’이다.

    단병호와 주대환의 탈정당적 행보

    하지만, 이런 근원적 문제의식이 현실 타개에 도움이 되기는 대단히 어렵다. 대뇌 기능이 떨어진다고 고등수학을 공부시키거나 골격에 이상이 있다고 영양을 공급하는 사이 환자는 죽기 마련이다. 병인(病因)을 발본색원하고 체질을 바꾸기 전에 대증요법(對症療法)을 통해 환자부터 살려놓아야 한다.

    이념부터 세우자는 주대환의 주장,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자는 단병호의 진술은 몇 줄짜리 강령과 수백 명의 노동자들밖에 가지지 못한 150여 년 전의 독일 망명객들이 공산당을 창건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주대환의 이념은 노동자들에 의해 실험 실천되지 못할 것이고, 단병호의 노동자들은 이념에 의해 모이거나 이끌어지지 못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주장은 우리 운동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되먹임 자폐선(feedback loop)에 갇히게 할 뿐이다.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 1869년 독일사회민주노동당의 창당 이래 사회주의 운동의 본령이란 이념운동도 아니고 노동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도전적 정치다. 정치는 이념을 유예시킬 수 있지만, 이념이 정치를 자연스레 불러오지는 못한다. 정치가 세력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세력은 정치를 넘어서지 못한다.

    정치는 이념과 세력의 구성에 필요한 시간의 누적을 지혜로운 선택으로 단축시키는 것이다. 대자적 계급은 진보정치 아래에서만 형성되고, 급진이념은 도전적 정치에 의해서만 조탁될 수 있다.

    도전적 정치에 의해서만 조탁될 수 있다

    현실의 정치는 어떠하고 우리는 어떤 정치적 기회를 가지고 있는가? 앞서는, 변화된 국민욕구를 기성정치권이 수용하지 못함에 따라 한국 정치가 장기파동에 접어들었다고 말했었고, 이제 이런 장기파동이 정계재편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검토해보자.

    지금의 한국 정치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 기반 취약과 동시에 민주당의 지리멸렬함, 즉 부동(浮動)하는 민심에 의해 정치재편이 내연(內燃)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답보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경험을 통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초록동색’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유권자들의 정파성은 일관되게 약화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정당 지지세력이 소멸하는 한편, 보수정당들이 근친수렴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재기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정치재편은 야권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2012년까지의 정치 상황은 민한당에서 신민당으로 제1야당이 교체되던 상황과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촛불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를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진보정당까지 포함되는 정치세력이 촛불집회를 제대로 수용치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폭발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어느 때일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재편의 동력으로 재등장할 것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구상

    최근, 야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범야권이 출마 선거구를 조정하자는 구상이 조심스레 검토되고 있다. 4대 동시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구와 출마자가 워낙 많고, 그 대부분인 기초의원 선거에서 이른바 ‘범야권’이 심각하게 경합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이런 구상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문제는, 광역단체장처럼 정치적 상징성이 크고 경쟁이 치열한 선거에서도 그런 ‘조정’을 할 것인가이다. 첫째, 그런 조정이나 연합을 할 필요성이 있는가? 야권 전체가 워낙 열세이므로, 조정이나 연합은 필요하다.

    둘째, 그런 조정이 바람직한가? ‘범야권’이라 통칭되지만, 정책적 스펙트럼이 넓으므로, 정책 차이까지 묻어버리는 연합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그런 조정이 가능하도록 할 방법이 있는가? 모든 야당이 수긍할 만한 공정한 룰(rule)은 없다. 양보를 강요할 수 있는 명분은 ‘촛불프라이머리’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주경복 모델과 김상곤 모델을 따라 할 수 있다. 물론,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을 배제할 수 없고, 후보를 만드는 과정도 훨씬 대중적이어야 한다. ‘경제민생 위기극복 연석회의’를 이룬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광우병대책회의, 촛불집회를 주도한 네티즌들이 함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촛불프라이머리를 치루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그 틀 안에서 일정한 기준과 자격 요건으로 선거관리위, 선거인단, 후보자를 정할 수 있다면, 다음 지방선거가 또 한 번의 촛불축제가 될 수도 있다.

    4. 한국 정치의 위기, 변화의 위기 : 복지연합으로 나가자

    촛불프라이머리가 성사된다면 그 안에서 공동공약을 도출할 수도 있겠고, 일회성의 선거연대이니 선출된 후보 측에 공약을 일임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런 시도가 ‘촛불연합’쯤으로 불릴 수도 있겠는데, 이런 구상을 해보는 이유는 그동안의 좌파운동이 이념이나 세력을 형성하기에는 부적절한 노선을 밟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촛불연합 같은 것으로 판을 흔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래 한국 사회를 이끈 주요 변화, 노무현의 집권, 이명박 정권의 등장, 촛불집회는 흔히 ‘중산층’으로 불리는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욕구 표출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급속한 민주화의 산물이고, 경제주의 노동운동과 자유주의 시민운동에 의해 고무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史實) 속에는 불안정 노동계층과 영세 자영업자가 빠져 있다. 지금 한국 좌파운동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은 유럽의 공산당이나 사회민주당들이 태동할 때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그래서, 색깔로는 ‘사회주의’이고 형식으로는 ‘노동운동’인 한국의 좌파운동이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급진적이지 못하고, 정치적 비약점(jumping point)을 넘지 못한 채 고립돼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와 노동운동에서 이미 조직돼 있는 좌파운동으로부터 섣불리 이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촛불연합이 제대로 된 하층연대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운동엘리트집단보다 더 깊고 넓은 풀(pool)인 것은 분명하다.

    중산층화된 좌파운동은 그 풀 안에서 우리 운동이 포섭하지 못한 불안정 노동계층을 만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기업임금과 기업복지 선점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하층 계층과 사회복지연합을 맺으면서, 세력과 이념의 재구성을 도모해야 한다.

    세력과 이념의 재구성

    1995년이었던가 삼성 이건희는 한국 정치는 후지고, 저희 자본가들이 다 이룬 것이라 우겨댔었는데, 경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호응해왔다.

    군사주의적으로 조직된 영남권의 중화학공업 노동자들,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전투적 노동운동이 조직한 노동력이 1990년대 초반까지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세기 들어서는 창의적이면서도 값싼 IT노동자들,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개방적 대학문화가 쏟아낸 노동력이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세계 최부국인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물량 공세를 펼치며 정치적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미국의 선진국 진입은 동북부의 제조업으로부터 나왔고, 그러한 산업 기반은 내전을 거치며 자본과 노동력을 집중시킨 결과다. 노무현 정권이나 여러 언론이 자주 인용하는 네덜란드의 무역과 금융산업이 성장한 배경은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확립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대체 산업 육성이나 전두환 정권의 중화학공업 집중 역시 정치적 결정과 다양한 사회정책에 힘입은 것이다. 4.19와 5.16, 1987년 항쟁 후에 신산업이 발생하고 한국 경제를 주도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정체는 사회정치적 변혁의 부재로 인한 경제 토대의 고착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제를 변화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치를 변혁하라.” – 이재영, 「정치변혁이 경제성장 토대다」, <레디앙>, 2007. 1. 12

    지속성장은 ‘생태’나 ‘신성장동력’ 따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장이란 바로 정치 변화에 의한다. 그런데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김영삼으로, 김대중으로, 노무현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온 흐름이 끊기고 있다. 뻔히 보이는 한국 정치의 미래는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이거나 중도수렴된 보수양당의 지리한 정권교체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여러 사회지표가 OECD 최고라는 둥, 최저라는 둥 운위되는 상황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길고 긴 변화의 도정을 앞두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정치가 현재처럼 요지부동이라면 사회적 불균형과 불안정은 다른 통로를 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란 바로 정치적 변화의 정지이고, 좌파정치의 정체에서 비롯된다.

    * 참여사회연구소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하반기호에 「좌파의 위기, 위기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같이 실립니다. 4월 중순에 작성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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