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화 편협한 수단, 문제는 다양한 권력
    2009년 06월 01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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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식할 정도로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모두 거둬서 몽땅 나눠주는 것이 순수 공산주의이고, 아무것도 거두지 않고 아무것도 안 주는 사회가 순도 100%짜리 자본주의이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사민주의

   
  ▲ 책표지.

사민주의란 아마 그 중간쯤의 어디 일 것이다. 즉 국가가 좀 많이 거둬서 개인들에게 좀 많이 나눠주는 사회쯤 될 것이다. 사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정말 이렇게 대답해도 될까?

가수 윤도현씨가 아닌 교수 윤도현님께서 최근에 『사민주의란 무엇인가?』(논형. 13,000원)라는 책을 번역했다. 이 책의 원저자는 잉바르 카를손 과 안네마리 린드그렌 이라는 스웨덴 사람들이다.

외국사람들이라 책을 다 읽고나도 저자들의 이름을 외우기란 쉽지 않다. 단지 우리 입장에서는 번역한 사람 윤도현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잉바르 카를손이 스웨덴 수상이었다는 정도만 생각날 뿐이다.

이 책은 스웨덴 사민당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만든 책이다. 책은 사회민주주의 핵심 가치와 주요정책 등을 서술하면서 사민주의 자체에 대한 쉽고 일반적인 서술에 주력하고 있다.

스웨덴 사민당이 만든 책

이 책은 사민주의의 슬로건으로 알려진 자유, 평등, 연대라는 3대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필치로 친절한 설명하고 있다. 그 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과 시장에 대한 이해, 공산주의에 비판을 펼치고 있다. 즉 사민주의의 핵심 3대 가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굴곡 사이에서 어떻게 단일한 이념적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 설명하고 비판하는 체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는 ‘자유’와 ‘시장’이 꼭 자본주의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고, 왜 평등과 연대가 사민주의의 핵심 구호인지도 재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든 문제를 ‘소유문제’로 정리하면 혁명적인 것이고, 소유문제를 외면하면 근본적 해결을 도외시하는 개량주의라는 관점에 반대한다. 이 책은 ‘소유의 문제’ 라는 관점 이전에 ‘권력의 문제’를 더 중시 여긴다.

“중요한 문제는… 사적 자본가로부터 권력을 빼앗는 것만이 아니었다…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하여 그들이 공급의 다양성과 질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문제, 그리고 피고용인들에게 권력을 주어 그들이 임금과 고용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문제였다.”

전체주의 일당독재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이것은 일방적 국유화의 한계에 대한 절절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국유화라는 고전적인 요구는 실제 현실에 있어서 너무나 편협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권력의 다양성이 생겨날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완전히 국유화된 경제에서는 임노동자, 소비자 그리고 시민의 영향력은 동일한 경로를 통해 행사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편견 없이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서구 사상계의 넓은 안목과 전통이었다. 북유럽의 사상계는 맑스주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한 비판하며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속에 배어 있는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의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균형 잡혀 있다. 합리적 핵심은 받아들이면서 지나친 이념 중독을 또한 경계하고 있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선전하듯이 불멸의 사상체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전체주의와의 투쟁하는 사민주의자답게 소련 등 이른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 중간 중간에 전체주의 일당 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소련체제, 사회주의 개념을 매우 나쁜 게 만들어"

"소련체제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소련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조직의 기틀을 만든,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알려진 러시아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교훈은 사회주의적 이상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중앙집권적으로 통제된 획일적인 체제는 비록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가 고전적 사회주의 이론과 일치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상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러한 책의 흐름에 대해 역자가 약간의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역자인 윤도현 교수는 개량주의자(?)인 책의 원저자들보다도 맑스주의의 기본을 더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책의 구석구석에서 나타나는 역자와 저자 사이의 묘한 신경전도 주의 깊게 볼만하다. 역자인 윤도현 교수는 역주를 이용해서 때론 저자들을 비판하고 때론 원저를 보충하면서 전체적으로 책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예전에 우리는 소련 교과서라는 별칭으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을 읽었었다. 그리고 소련의 붕괴 이후 사회과학을 별로 진지하게 접해 본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비난하며 중간에 끼어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보려는 사민주의의 시각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40줄에 들어선 이른바 386세대에게 있어서 사민주의란 ‘일단 나쁜 것’이었다. 이 세대는 사민주의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사민주의란 개량주의라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먼저 전달받았던 독특한 사상사를 갖고 있다. 이제 그 왜곡된 사상사를 좀 벗어나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윤도현 교수의 이번 역서는 20대 청년 시절에 소련 사회과학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그 뒤로 이념서적을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특히 권할 만한 책이다.

전체적으로 스웨덴 중심적인 서술이라 한국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내용도 다소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 평이한 서술이라 읽는데 큰 거리낌이 없다. 내 마음 속에 뻘건 국물이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라면 먹으면서 봐도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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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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