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과 자유주의적 정치패러다임의 비극
    2009년 06월 01일 10:18 오전

Print Friendly

먼저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이런 글을 쓰는 것에 용기를 내본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과 감정이 있을 것이다…

1. 비극의 배경

최근 노 전대통령의 충격적인 서거사건은 도덕성을 강조해온 진보적인 성향의 전직대통령이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어 검찰 및 보수언론과의 진실공방과정에서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깊은 충격과 함께 그 자살배경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작동되지 않는 정당정치’와 ‘자유주의적 정치패러다임의 긴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제기한다.

즉, 노 전대통령의 자살배경에 대해, ‘MB정권의 정치보복설’, ‘검찰의 보복설’, ‘보수언론의 공격설’, ‘대화와 타협이 부재한 증오와 정치보복 관행’ 등 다양한 관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주요한 변인인지는 좀 더 논리적 연관성을 면밀하게 따져보고 입증해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을 좀 더 추상의 수준을 높여 구조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지적된 자살배경의 요인들이 정당을 중심으로 한 대의적 공론장이 약화됨에 따른 ‘정당의 사인화’(personalization of political party)와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현상 그리고 ‘자유주의적 정치패러다임의 공격성’과 연관되어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는 점은 분명하게 추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정당의 사인화’와 ‘정치의 사법화’현상은 대의적 공론장을 활성화할 주체인 정당의 의원들이, 특정 보스나 지도자 개인의 정치성향과 정치활동에 속박되어 자율성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적 갈등을 정당들간의 충분한 토론과 합의에 따라 새로운 정책과 판단기준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기존의 관행을 중시하는 검찰과 사법부에 넘김으로써 여야관계를 ‘적대관계’로 변질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정파들간의 갈등과 경쟁이 증오와 보복의 관점으로 폭력화되거나 비생산적으로 극단화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 같은 ‘정당의 사인화’와 ‘정치의 사법화’가 ‘자유주의적 정치패러다임’과 만나거나 상호작용하여 그 상승효과를 내게 된다면 그 공격성과 파괴력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2. 정치패러다임의 세가지 전통

일반적으로 정치의 본질과 원리가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 전통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개인의 사적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전통(개인적 자유주의), 둘째는 개인의 사적자유보다는 공적자유(시민성)를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적 전통(공동체 자유주의), 셋째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맑스주의적 전통이다.

특히, 첫째는 로크로 출발하는 계약론적인 자유주의, 벤담과 밀의 주장처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정당화하는 공리주의적인 자유주의, 목적달성을 위한 비용대비 최대의 효용을 주는 행위만이 합리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강조되는 합리적 선택 자유주의 등이다. 둘째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로 출발하여, 하버마스와 아렌트, 벤자민 바버로 이어지는 공동체주의적 전통이다.

이 세 가지 가정과 패러다임은 인간본성에서부터, 공동체, 정부,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고, 시대변화에 따라 그 부침도 다르다. 자유주의적 전통과 맑스주의적 전통은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유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정치를 ‘이익’(interest)과 ‘선호'(preference) 및 정체성(identity)의 문제로 연관시키고, 이러한 것의 형성과 쇠퇴를 정치의 기본 메커니즘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이익과 선호 및 정체성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법적으로 혹은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주어진 것’(given thing)으로 그리고 외생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 이익과 선호 및 정체성은 변화가능성이 없는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가정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호와 이익, 정체성을 표출하게 하거나 관철하기 위한 투쟁은 정당화되고, 그렇게 표출된 상태에서 투쟁하는 사람들간 그 합리적인 옵티마와 균형점을 잡는 것이 정치의 목표가 되며, 그 목표를 위한 강력한 수단과 도구로 사람들간의 논쟁, 타협, 거래, 절충이 사용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모든 계급투쟁, 이익투쟁, 정파투쟁, 전쟁 등등은 다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합리적인 옵티마와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그리고 합의와 타협을 위한 극한 견제와 균형, 비정한 적대투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둘째 공동체적 자유주의의 가정과 패러다임은 이익, 선호, 정체성을 바라는 보는 관점에서 첫째와 셋째와 다르다. 즉, 인간의 이익과 선호 및 정체성은 처음부터 태생적으로, 외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 및 공동체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그 과정속에서 형성되고 변화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사람들간의 교류와 대화 및 토론속에서 공동선과 공공선을 중심으로 정체성이 변화가능한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정치의 목표는 사람들마다 주어지고, 타고난 이익, 선호, 정체성을 단순히 이익조합(이익집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과 공동선을 전제로 더 좋은 이익, 선호,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이익통합과정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

이 같은 목표를 위해 대화와 설득, 토론, 대면관계가 중시되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와 믿음, 새로운 정체성의 창조가 강조된다. 따라서 그것의 결과 어떤 합의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설령 그 같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지라도 그 과정 자체와 그 차이를 신뢰하게 됨으로써, 이후 관계를 공동성찰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쨋든, 첫째와 셋째는 정치를 이해하는 실천하는 방식에 있어서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적대적 모순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주류적 시각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 같은 시각은 최근 한국의 정치양식의 수준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후 촉진되고 있는 참여민주주의 열정과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의 강경모드가 강렬하게 부딪치는 과정 그리고 급기야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국면에서 벌어지는 여야 그리고 진보보수진영간의 대결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자유주의적 정치패러다임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정치의 당연하고 필연적인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매우 비정한 논리이고 민주화 이후 우리 시대상황에서 적실성이 떨어지는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구화, 후기산업화, 정보화, 탈물질,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전환은 사람들간의 이익, 선호, 정체성이 다변화, 복잡화, 유연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것들을 단순하게 집합하거나 절충, 타협시키려 했을 경우 잘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수많은 문제점을 양산하는 등 적실성이 떨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3. 다성악적인 진보와 토의민주주의의 적실성

따라서 이 같은 정치의 비극과 비정함 그리고 정치의 폭력성을 개선하고 상생하기 위해서는 선호, 이익, 정체성의 변화를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적 정치패러다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 중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정체성의 변화와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추구하는 토의민주주의모델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토의(deliberation)는 숙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바, 단순한 자유주의적 전통에서 드러난 토론(debate)이나 논쟁(argumentation)과는 구분되며, 진정한 의미의 토의는 이익이나 생각의 단순한 집성(aggregation)이 아니라, 충분한 설득과정을 거쳐 이익과 생각의 근본적인 ‘이익통합’(interest integration)이 수반되거나 적어도 그것을 목표로 하는 의사소통이다.

다시 말해서, 이익이나 생각의 통합을 거쳐 최종적으로 합의에 도달하든지 혹은 도달하지 못하든지 간에,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관계속에서 결정이나 결정주체의 정통성에 대한 신뢰를 자아내는 대화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의는 토론(debate)이나 논쟁(argument)보다 고차원적이고 이상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노무현 서거사건을 계기로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오에 기초한 복수정치, 공멸정치에서 벗어나 타인과 다양성에 기초한 공론정치, 상생의 정치가 부활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 핵심에는 토의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정당정치의 정상화가 핵심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탈냉전과 탈이념사회라는 전환기적 시대상황에서 진보의 의미는 재정의될 필요도 있다. 민주화 이전시기는 대체로 보수독점주의와 반공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진보주의가 어느 정도 보편적인 선과 이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진보주의만이 절대선이자 절대진리라는 역편향성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즉, 민주화 이전의 진보는 단성악(單聲樂)적인 진보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민주화 이후 시대에는 ‘추상적인 이념’에 기초하기 보다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기초한 다성악(多聲樂)적인 진보가 필요하다. 즉, 진보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세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진보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정도로,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잠정적인 결론수준에서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