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 도대체 어디서 온 누구인가?
    민생의제 잡아먹는 진보정당 끔찍해
    [현장편지] 후보사퇴 거부를 바라보며 … 저항의 현장 외면한 그들
        2012년 05월 08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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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부정선거와 사퇴 문제로 통합진보당이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생소했던 국회의원 당선자와 후보들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 상위를 며칠 째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무리들의 추악한 비리와 범죄 행위들도 모두 통합진보당의 높은 인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 일가의 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도, 새누리당의 파렴치한 국회의원들도, 민주통합당의 권력 담합도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소름 끼치고, 추악하고, 파렴치하고, 끔찍하고, 참담하고…” 진보 언론에게도 돌팔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고통스런 영화가 언제쯤 막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잔인한 5월’입니다.

    통합진보당에서 피어오른 ‘잔인한 5월’

    가장 끔찍한 것은 이 광풍이 민생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과 재벌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을 날려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처절한 저항의 현장을 덮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럼비를 살려달라는 문정현 신부님과 제주도에서 들려오는 절규도,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한미FTA와 광우병 쇠고기를 막기 위한 어린 벗들의 촛불의 노래도, MBC를 비롯한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을 위한 외침도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밤 쌍용차 22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한문 분향소에서 여러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물세 번째 죽음은 기필코 막겠다며 상복을 입고 싸우는 쌍용차 노동자, 1600일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천막과 거리에서 보내고 있는 재능교육 노동자,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깊은 절망의 한숨이 쏟아졌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분향소를 말없이 지켜주는 이들의 연대의 마음과,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도 “따뜻한 음료 드세요”라며 검은 봉지를 건네고 얼른 뛰어가는 한 청년의 해맑은 웃음이 그나마 노동자들의 처참한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민생을 집어삼키는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광풍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라는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의 결정을 거부하며 김재연 씨가 “공명정대한 과정을 거쳐 선출된 저는 합법적이고 당당하다”고 밝힌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권파의 실세라 불리는 이석기 씨도 “아무리 가혹한 여론의 압박이 있다고 한들, 저를 지지해준 당원들의 소중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을 훼손하고 그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며 사퇴를 거부하고 당원 총투표를 요구하는 보도 자료를 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금속노조 한 조합원은 “그런데 김재연이 누구야?”라고 물었습니다. “김재연이 명심해야 할 것은, 정당투표 10%의 표는 듣도 보도 못한 김재연이란 인물에게 보내는 지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라는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많은 노동자들은 김석기, 김재연을 알지 못합니다.

    이명박 정권 5년, 촛불항쟁을 시작으로 2009년 용산 철거민과 쌍용차 살인진압 투쟁, 2010년 기륭전자, 동희오토, 현대차, 한국지엠 비정규직 투쟁, 2011년 대학청소노동자 투쟁과 희망버스 투쟁에서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명박 정권 5년, 이석기, 김재연은 어디 있었나?

    이명박 정권, 5년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2008년 2월 지엠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명박 당선인은 비정규직의 절규를 들어라’며 한강 다리에 올랐고, 한강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해 여름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서울역 40m 조명철탑에 매달렸습니다.

    2008년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에서 수많은 촛불들이 이명박 정권에 끌려갔고, 촛불항쟁에 연대해 7.2 촛불총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30여명의 간부들은 수배와 구속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상징이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8년 공장 옥상에 올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94일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의 단식농성을 벌였고, 수많은 노동자들과 시민, 사회단체가 ‘기륭공대위’를 만들어 연대했습니다.

    2009년 1월 망루 위에서 ‘살려 달라’고 절규하던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살인 진압에 맞서 수많은 이들이 용산으로 달려와 ‘용산 범대위’를 구성하고 꼬박 1년을 싸웠으며 박래군, 이종회, 김태연 등 많은 활동가들이 연대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 해 여름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 2646명,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1000명의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공장 점거파업에 당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이 평택으로 달려와 폭포처럼 쏟아지던 최루액과 물대포에 맞서 맨주먹으로, 때로는 짱돌을 던지며 싸웠고 감옥과 경찰서는 차고 넘쳤습니다.

    용산,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

    2010년 여름 다시 시작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포클레인 점거농성에도, 기아차 모닝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노숙투쟁에도, 공장 정문 아치에 올라 영하 30도 동상 걸린 발로 64일 고공농성을 벌인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64일 투쟁에도 노동자 시민들의 연대의 발길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울산 공장을 점거하며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했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도, 14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88일을 싸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에도,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점거 투쟁에도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노동자 서민들의 가난한 지갑을 털어 재벌의 곳간을 가득 채우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이명박 정권에 맞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연대의 마음은 마침내 희망버스에서 불꽃으로 타올랐습니다.

    투쟁의 상징 85호 크레인 309일와 연대의 상징 희망버스는 자본의 탐욕과 정권의 탄압을 넘어 작은 승리와 희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송경동, 정진우가 감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수 백 명의 노동자, 서민들이 유치장으로 갇혀야 했고, 수 억 원의 벌금폭탄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끌려가며 투쟁하고 연대하다

    5개월 전인 지난 1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재벌의 ‘절친’인 새누리당조차 ‘경제민주화 실현’을 목표로 내걸었고, 여야가 앞 다투어 비정규직 공약을 약속했습니다.

    이는 노동자, 민중들이 목숨과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을 벌였고, 이 투쟁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처럼 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반대를 외면하고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이라는 3대 악법을 만들고, 신자유주의와 한미FTA를 강행했던 참여정부의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묻지마 야권연대’에 몰두하였습니다.(참고 사라진 민생 ‘묻지마 야권연대’의 처참한 패배)

    당선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의 후보들은 목숨을 걸고 가장 처절하게 싸웠던 노동자, 민중들이 아니라 각 정파의 대장들과 명망가들로 채워졌습니다. 결국 야권연대는 패배하고,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도시에서 외면당했습니다.(참고 진보정당은 왜 노동자 도시에서 외면당했나)

    목숨을 걸고 싸운 비례대표 후보는?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에는 농민과 장애인, 환경운동을 대표하고, 2008년 촛불항쟁을 함께 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정리해고와 900만 비정규직의 고통을 양산한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을 싸워 자본의 탐욕과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알려낸 김진숙 지도위원과 송경동 시인에게 비례대표 후보를 제안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용산 철거민들과 연대했던 이들에게,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기륭전자와 현대차 비정규직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는 소문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부정선거와 후보사퇴 논란을 겪는 통합진보당에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와 패권주의를 말하고, 당권파의 종파주의를 비난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함께 내용적 민주주의, 즉 노동자 서민의 고난을 짊어지고 함께 싸우는 정당과 후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씨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진보정치를 위해 온갖 불이익과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묵묵히 헌신해 온 이름 없는 평당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퇴를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진보정치를 위해’ 그는 누구와 함께 싸웠습니까? 이석기, 김재연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명박 정권 5년, 노동자 민중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후보는 누구입니까?

    필자소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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