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발적 시민들의 놀라운 힘들
    By mywank
        2009년 05월 28일 04: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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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그들은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상황실 상근자인 백은종 촛불시민연석회의 공동대표(닉네임 초심)는 “양초나 물이 떨어지면 바로 달려가죠. 걸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한 시민은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가 불편하지만, 정말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셨어요. 분향소 주변에 놓인 신발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면서도 고마웠어요"

       
      ▲대한문 시민분향소에는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손기영 기자) 
       
      ▲매직글씨 잘 쓰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벽보가 붙어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오후 2시 현재, 지난 23일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 시민들은 1,700여명(시민분향소 측 추산)에 달했다. 자원봉사 신청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분향소 옆 상황실 책상에 놓인 자원봉사 신청서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으면, 바로 상황실 측에서 필요한 곳에 배치를 시킨다.

    탄핵서명 관리, 국화 꽃 나눠주기, 분향소 신발정리, 커피 봉사, 질서유지 등 하는 일은 다양했다. 이날 분향소를 찾자, 자원봉사를 신청하기 위해 상황실 앞으로 달려가는 여중생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중학교 3학년인 이들은 오전에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지 전에 이곳을 찾았다.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다양했다. 권보람 양은 “어른들도 고생하는데, 저희도 와서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정지영 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동안 저희들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겠다”는 마음에 동참했다. 

    박규현 양은 “솔직히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여기에 왔다”며 “친구들한테 ‘분향소에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고 주변 친구들도 이곳에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날 한 일은 신발정리.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사진=손기영 기자)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 것을 알게 해줍시다.”

    김상내(52) 씨는 ‘서명합시다. 이명박 탄핵소추 발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서명을 부탁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외침에 목은 이미 쉰 상태였다.

    김 씨는 “시민분향소에 계신 분들이 너무 고생을 해서, 제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내기 위해 3일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솔직히 어제 너무 힘들어서 오늘부터는 그냥 좀 쉬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고생하는 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는 법을 마음대로 해석해, 힘없는 사람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제발 청와대가 평범한 대다수 시민들의 심정과 바람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을 위해 커피와 냉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3일째 커피봉사를 하고 있는 주부 이 아무개 씨(52)는 “분향소를 찾은 뒤, 집에 가는 길에 문뜩 생각이 나서 자원봉사를 신청하게 되었다”며 “이곳에 ‘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이어 서울시청 앞 광장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버스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기 버스들은 광장에 모셔다 두고, 전직 대통령은 ‘골목길’에 모셔져 있다”며 “이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인가.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정부 측의 광장봉쇄 방침을 비판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50대 여성은 묵묵히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국화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시민분향소 자원봉사에 참여했다고 밝힌 그는 “오늘 이렇게 인터뷰하고 사진 찍히려고 나온 게 아닌데…”라며 쑥스러워했다.

    바로 옆에는 대학생인 기현준 씨(22)가 추모객들의 대열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는 “학교가 이 근처라서 분향소 주변을 많이 지나다녔다”며 “그 때는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쳤지만, 자꾸 마음이 편치 않아 어제 자원봉사를 하러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보다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더 많은 걸을 배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념이나 교과서 속의 시민이 아니라, 거리로 나와서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살아있는 시민들의 힘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순간이자, 공간이었다. 한편, 시민분향소 상황실 측은 29일 오전까지 분향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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