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석 이상의 가치, 자신있다"
        2009년 05월 28일 12:2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의 인터뷰는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지난 4.29 선거날 당선이 확정된 후 울산 선본에서 만나 “인터뷰 하자”는 말을 건넸지만, 곧 당선 후 등원준비가 시작되었고, 이어 고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의 죽음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이 겹치며 인터뷰 날짜는 점차 뒤로 미루어졌다.

    가까스로 만들어진 자리에서 조 의원은 지난 울산북구 재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문항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민주노동당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다면 단일화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단일화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이를 두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일부 언론이 이후 ‘이중배제’ 문제를 빼고 26표차를 강조한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조 의원은 지식경제위 선택한 배경에 대해 “진보가 독자적인 산업경제정책을 갖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다”며 “(산업경제정책에 대한)계속된 고민이 언젠가 이를 중요한 비전 중 하나로 제시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석뿐인 진보신당으로서는 (본인이 소속된 바 있던)익숙한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다른 현안에 대응하기 쉬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1석 정당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대해 “의제를 선점하고 국회 안팎을 넘나드는 대중정치를 통해 차별화 해나가야 할 것”이라며 “그야말로 1석 이상의 가치를 분명히 느낄 수 있도록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칭 ‘진보개혁법안발의연대’ 식으로 한 15명 정도의 의원들이 함께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의원과의 인터뷰는 27일 오후 2시 의원실에서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 *

    – 당선 후 꼭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사진=정상근 기자 
     

    =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갔다. 지역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종태 열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대전을 오갔다. 지역은 틈틈이 큰 행사 있을 때 맞춰서 인사하러 다녔다.

    그리고 당선 후 곧바로 중앙당 회의에 결합해 의원실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했다. 정책보좌관 공채 등 시스템 전반에 대한 논의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김해에 다녀왔다. 사실 아직 경황이 없다. 무엇인가 ‘세팅이 끝나고 안정이 된다’는 느낌이 없다. 사실 의원실에도 오늘이 단 4번째 온 것이다.(웃음)

    – 다른 당 의원들은 만나지 못했나? 만났던 다른 의원들은 어떤 얘기를 하던가?

    = 몇 분은 당선 후 연락을 해 주셨다. 그리고 지난 번 의원회관에 왔을 때도 한 번은 김재균 민주당 의원이 직접 내려오기까지 해서 축하해 주었고, 오가다 마주친 한나라당 의원 두 분도 축하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최근 노 전 대통령 조문을 가서 민주당 의원들을 많이 만났다. ‘자리가 이래서 축하의 말을 할 자리는 아닌데’라면서도, 축하인사를 건넸다.

    – 단일화 표차가 매우 근소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고 진보신당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에 너무 양보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단일화 진행 배경에 대해 말해달라.

    = (문항, 조사방식 등을)공개하지 않기로 그 당시 합의를 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선 이후 일부 언론에서 사실과 다르게 쓰여진 부분이 있어 팩트는 얘기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얘기할 기회가 없기도 했다.

    ‘단일후보’ 묻는 것이 가장 명쾌했지만

    당시 양쪽이 단일화는 해야 하는데, 총투표 등 다른 방식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확인했기 때문에 결국 여론조사를 가지고 (단일화 하기로)합의했고, 짧은 기간 동안 여론조사에 대한 줄다리기를 했었다.

    그 때 우리의 상식으로서는 (문항을)‘단일후보로서 누가 적당한가?’라고 묻는 것이 가장 명쾌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기존 <경향신문>등 몇몇 여론조사에서 이미 단일후보적합도가 더블스코어 정도로 벌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안을 얘기해 보라’ 했을 때, 민주노동당은 ‘역선택 방지’의 명분을 들면서 우선 정당지지도를 물어서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지지자를 제외하고, 또 다시 본 문항에서 박대동-조승수-김창현을 넣자고 했다. ‘역선택 방지’라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중배제가 된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한나라당 지지자를 포함하면 조승수로 단일화되었을 때와, 김창현 후보로 단일화되었을 때가 8%p이상 확연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문항을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나로 단일화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오고, 김창현 후보로 단일화되면 안가기 때문이라, ‘역선택 방지’를 명분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제안을 던진 것이다.

    그 안을 받아들고 고민한 끝에, 이를 통해 나름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는데, 그 결과가 거의 박빙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친박연대까지는 (배제하는 것이)과도한 것 아니냐’고 제안해 친박연대를 빼고 한나라당만 배제하게 된 것이다.

    26표차? ‘이중배제’로 인한 결과일 뿐

    이는 ‘백기투항’이라기보다는, 우리로서도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문항은 매우 불리하지만 단일화는 북구 주민과 국민적 명령이라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단일화를 이룰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다면 이 단일화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결론은 두 여론조사 기관에서 모두 내가 이겼다. 평균 1.4%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이중배제라는 사실은 싹 빼버리고, 26명 표차라고 표현했던 기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여론조사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

    – 이번 단일화과정에서 결정적인 걸림돌은 무엇이었나? 마지막 몇일을 앞두고 극적인 합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 걸림돌은 민주노동당에 있어 ‘조승수’라는 문제였다고 본다. 단일화의 필요성과 대의는 공감 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람에 대한 문제를 아주 강하게 제기했다. 나중에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극적인 합의를 한 것은 결국 문항설계에 대한 부분을 합의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창현 위원장 인터뷰를 보니, ‘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고, 사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런 식의 여론조사라면 우리가 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민주노동당은 이길 수 있는 조건이었다.

    김창현 측, ‘졌다’고 믿기 힘들었던 이유

    – 지식경제위원회로 상임위가 결정됐다. 스포트라이트가 적어 ‘비인기 상임위’로 꼽히는데, 진보신당으로서는 보다 관심도 높은 곳을 원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본인이 지경위를 원했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 우선 상임위 자체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는데 있어 우선 교섭단체에게 권한이 있다. 그리고 지경위는 인기상임위는 아닌지 몰라도, 국내 산업정책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 산하에 있기 때문에 에너지 정책도 관할한다.

    나는 평소에 진보가 독자적인 산업경제정책을 갖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은 신자유주의 기조 하에서 공단개발이나 R&D(Research and Developmen)에 천문학적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해 진보는 어떤 경제시스템을 만들지에 대해 생각과 의견이 있어야 한다.

    이를 17대 국회 때 하지 못했지만, 이 문제는 집권을 생각한다면 계속 고민해야 만이 언젠가 중요한 비전 중 하나로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17대 때 시작한 에너지 관련 문제에 대한 고민과 당시 함께 했던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소중하기 때문에 계속 연장해 나갈 필요성이 있었다.

    진보, 독자적 산업경제정책 갖춰야

    두 번째는 국회가 상임위 중심이기는 하지만, 진보신당으로서는 상임위에만 매몰될 수는 없는 현실 때문이다. 모든 현안에 대응하면서 상임위 활동을 해야 하는데 내가 겪어 본 상임위가 기본적으로 대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다른 상임위는 공부도 해야 하고, 시민사회 네트워크, 전문가 네크워크를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상임위가 다루고 있는 진보적 의제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상임위에 대한 부담을 덜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 보좌관 채용이 거의 완료되었는데, 보좌진에 대해 짧게 소개해 달라. 그리고 지경위와 관련된 정책보좌관 중 산업정책에 대한 보좌진이 갖춰지지 않고 환경전문 보좌관만 채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 정책수석에 이종석 당 연구원이 채용되면서 지역보좌관을 제외하고 인선이 마무리 되었다. 지역보좌관은 사람이 없기도 하고, 적임자인 사람은 신분상의 문제로 아직 선발하지 못했다.

    목영대 정무수석은 나와 20년 가까이 진보정당운동을 해왔다. 지금은 의정부에 뿌리를 두고 훌륭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던 중, ‘진보신당 의원의 역할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참모진이 없으면 힘들다’고 간곡히 요청해 결단해 주셨다.

    김경수 보좌관은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나와 밀접하게 얘기를 나누어왔다. 선거 시작 때부터 내려와 쭉 같이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종석 정책수석은 아시다시피 당의 훌륭한 자산이다. 공인회계사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보정당운동에서 열악한 임금을 받아들이며 좋은 정책을 생산해 냈다.

    이종석-목영대-김경수-권경락-장주영-손은숙-이민우

    7급 권경락씨는 그야말로 순수한 공채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원이었고 현재 진보신당 당원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이구동성으로 유능하고 창의적인 스타일이라 얘기하더라. 인사위원회에서도 일치된 의견으로 선출했다. 청정개발체제(CDM)를 전공했고 직접 기업에서 활동해 왔다. 관점이 좀 다른 측면도 있지만 이해도와 능력이 뛰어나다.

    장주영씨는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시절부터 나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지금까지는 나와 다른 쪽에서 일을 해왔지만 ‘언젠가 저 친구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일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인턴 두 사람은 사실 인턴이 아니라 정책보좌관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인데 한정된 자리로 인해 인턴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이들은 기꺼이 이를 감수하겠다고 해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손은숙씨는 당 내에서는 저 못지않게 유명한 사람이다. 분당과정에서 활동해왔고, ‘까발리아호’를 추진해왔다. 부산지역에 있었지만 전국적인 팬이 있다.(웃음) 이민우씨는 ‘직접행동’의 운영자였고, 그 때 자주만나서 이야기 했다. 직접 보좌관으로 채용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지난주 의원실 워크샵을 다녀왔는데 이 자리에서 의원실은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능력이 뛰어나면 좋지만, 국회의원실은 정보가 집중되고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팀워크가 없으면 개인역량으로도 커버가 되지 않는다.

    17대 때 민주노동당을 보면 의원실 정책보좌팀들의 팀워크가 맞지 않고 갈등이 있는 경우가 있어 굉장히 많은 실수를 해왔다. 우리는 17대 때 팀이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간 보기드문 사례였다. 이번에도 조승수의 동지로서 일을 하되, 우리 스스로가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힘들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좌진,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핵심

    산업정책 보좌관이 채용되지 않은 것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직하게는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에너지 분야와 환경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좋은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경제분야 중에서는 재정, 조세분야도 그렇고 산업정책 역시 진보적 그룹이 없다.

    오히려 연배가 있는 교수 분들 중에는 진보적인 분들이 있는데, 90년대 이후 민주화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그 쪽 자체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다고 한다. 진보적 산업사회학계 쪽 교수들을 만나보면 지금 후배를 키워내지 못하면 문제가 심각해 질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사실 공채에서 이런 분을 찾길 바랐지만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정책라인에 있는 분들이 환경과 에너지 쪽이기는 하지만 의원실에서는 자기 분야를 살려나가면서 필요한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 영역이 다르더라도 팀워크를 통해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전공보다는 기본적 마인드가 중요하다.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채용된 분들 역량이나 경험에 만족한다.

       
      ▲사진=정상근 기자

    – 어느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과는 ‘연대1순위’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아직도 분당과 그 과정에서의 종북주의 논쟁 등 조 의원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있다. 사실 관계가 껄끄러울 수 있는 것 아닌가? 

    = 정치는 현실이다. 공당의 정치가 사적인 감정에 좌지우지 될 수 없다. 나에게 ‘분당 당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이미 두 개의 독립적 진보정당이 공존하는 것은 현실이 되었고, 나도 국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5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과의 연대-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몇 가지 영역을 제외하고 민주노동당과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정책분야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래서 연대 1순위라 한 것이다. 한 석을 가지고 법안발의를 할 수는 없고 사실 이 같은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당에도 얘기를 했는데, 가칭 ‘진보개혁법안발의연대’식으로 한 15명 정도의 의원들이 함께 법안발의 연대를 조직해서, 결정적으로 당론에 문제가 되거나 소신과 양심 부분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한은 함께 공동발의를 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아울러 정책적 분야에서도 그 단위를 중심으로 진보블록을 만드려 한다. 가능하지 않을까?

    – 당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진보신당이 이번 선거를 통해 드디어 원내로 진입했다. 불과 1석이긴 하지만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이 ‘1석’을 어떻게 보나?

    = 사실 이런 조건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확신이 안설 때가 있다. 상임위 배정은 받되, 나머지 상임위도 커버해야 하고, 비례대표도 아닌 지역구 의원이니 만큼 지역구를 관리하는 문제에 대한 비중을 어떻게 둘 것인지도 고민이다.

    기존 민주노동당 시절의 경우에도 8명의 비례대표, 2명의 지역구 의원으로 이루어져, 모든 것이 비례대표 중심으로 돌아갔다. ‘지역구 출신 의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이해가 잘 안되고 있었고, 비례대표 중심으로 일반화 시켜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진보신당에도 그런 경향이 있다. 물론 ‘1석의 의미’는 소중하지만, 이 1석의 실제적 의미와 조건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분석하고 판단을 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질 것이다. 선택과 집중도 해야 하고, 중앙정치-지역도 커버해야 하는 달라진 조건과 상황에 대해 그동안 당과 논의해 왔다.

    그 결과 의정지원시스템에 대해 연말까지 (별도의 의정지원단을 운영하지 않는)한 시스템으로 운영해보고, 그 평가에 기초해 다시 의정지원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전제로 잠정적인 안을 도출했다.

    정치적으로 판단해보면 우리는 숫자적으로 ‘295대 1’의 극소수당이다. 한계들이 분명히 보일 텐데 의제를 선점하고 국회에만 머물지 않으며 안팎을 넘나드는 대중정치를 통해 차별화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한 석 이상의 분명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하며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

    – 잠깐 언급했지만 당과 의원실간의 ‘의정지원단’문제로 다소 이견이 있었다. 어떤 의견 차이었나? 결국 의정지원단을 설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 경험이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견을 맞춰가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결정된 것은 앞으로 연말까지 그 시스템을 운영해보기로 한 것이다. 다만 구조화 하는 것은 아니고,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진보신당에 의정지원에 대한 당규가 없는 상황이지 않았나?, 그럼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 참여하게 되고, 당선자가 나올 수도 있는데 지역정치나 단체장에 대한 당규도 없는 상황인가?

    = 당규가 국회의원이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도적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있다. 때문에 대부분 민주노동당 시절 경험을 기초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그게 소중한 경험이긴 한데, 비례대표 서울중심의 판단이 많아서 앞으로 지역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에도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이 약했다. 때문에 행정수도 논쟁도 붙었고, 내가 당론이 반대였던 행정수도특별법에 법안참여를 해서 최고위원회에 소환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웃음)

    당시 행정수도 특별법 자체가 완벽해서 찬성했다기 보다는 거대화된 수도권을 깨야 하는데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 좋다고 판단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물론 당론이 반대한 것은 특별법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가장 완벽한 지방분권 방안이 뭔지, 언제 진행될지 요원해지는 상황이었다.

    수도권 문제는 지역에 있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이고 경제력이 70%이상 집중되어 있는 반면, 지방에는 자원이나 문화가 고사상태다.

    –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이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다. 애초 조 의원이 정책위의장을 맡는 설이 지배적이었고 실제 제안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이 정책위의장직을 고사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의원실과 정책위의장 관계가 특별한데, 어떤 사람이 정책위의장을 맡아야 한다고 보나?

       
      ▲ 사진=정상근 기자

    = 그와 관련(조 의원 정책위의장)한 논의가 있었고, 나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으로서는 다른 당들도 현직 의원이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고, 선관위 주최 TV토론에도 정책위의장이 나가기 때문에 현직 의원이 적당하다고 봤지만, 내가 정책위의장을 맡으면 또 하나의 역할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책위의장을 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당에서 배려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책임지고 점검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정책위의장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발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본다. 사람을 키우는데 아끼지 말아야한다. 조금 시간을 갖더라도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 현안이야기를 해보자. 북한은 핵 실험을 강행했고, 한국은 PSI 전면참여를 선언했다. 대립이 격화되고 상황은 일촉즉발로 흘러가는데, 이번 북핵실험과 한국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 북이 남북관계를 대하는 기본태도를 분명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북의 전략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핵 포기를 고리로 남한을 비롯한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경제재건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받겠다는 전략이었는데, 핵보유국으로 자기지위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북한 정권입장에서 가장 우선되는 정책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어떤 것도 북의 체제유지에 우선해서 고려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쪽의 정서, 정세위기 고조는 하위개념으로 들어갔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강하게 비판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도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국제적 고립을 택하면서까지 북한이 하려는 것은 핵보유국 지위다. 그것을 인정받는 것을 체제유지와 직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북한이 제시했던 ‘우리민족끼리’를 스스로 차버린 것이다. 감정적으로도 민주정부 10년 동안 가시권 안에 들어온 통일의 문제가 굉장히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면 통일협상이 정상적으로 될 수 없다. 게다가 이 문제는 통일뿐 아니라 평화의 문제에도 심각한 균열을 낸 사건이다.

    게다가 핵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올 수 있고, 남쪽의 핵무장론도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화약고에 불이 타오르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번 핵실험은 한반도 평화정착과정에서 많은 것을 바꿔버린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PSI 전면참여문제를 꺼냈는데, 핵실험 대응이라는 부분에서 나름대로 근거는 있는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정부가 대북관계에 대해서는 중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선거 때는 ‘비핵개방 3000’을 얘기해왔고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해 오다가, 개성공단이 경색되면서 많은 전문가, 한나라당 내에서도 대북정책전환에 대한 주문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조만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기조에 전환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핵실험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달라진 북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풀어 나가야 하며, 보다 장기적 전략으로 가져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잡성과 구조적 어려움을 대처할 수 없다. 싫든 좋든 북의 현 정부는 통일과 평화에서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PSI참여는 즉자적인 느낌이 난다.

    과연 이명박 정부가 PSI참여 이후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도 민주정부 10년은 그나마 남북관계 철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위기가 낮아졌었다. 한반도 전쟁의 가장 큰 억제력은 남한 국민이고 이를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이 남한 정권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변화가 필요하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있다. 정부여당은 조문정국이 반정부정서로 흐를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야당이나 시민사회세력은 영결식 이후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조문정국 이후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으로 보이나?

    = 일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생의 화두가 정치개혁이었다. 이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진보-보수를 떠나서 정치권이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이 죽음을 헛되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 문제의 키는 이명박 정부가 지고 있다. 정책을 양보하고 물러서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구조자체에 숙제가 내려진 셈이기 때문에 이 숙제에 대한 국민적 공론과 그 논의 속에서 진보-보수를 넘어 단계적 합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상호존중하지 않는 정치문화, 주류-비주류 문제와 같은 것들이다.

    제도적으로 제왕적 대통령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고위공직자 수사에 대한 부분도 현재처럼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검찰이 하는 것이 맞는지, 지난 17대 국회에서 논의되었던 공직부패수사처 신설문제 등 많은 숙제가 남겨져 있다. 이러한 논의 없이 이명박 정부가 일시적 화해 제스츄어 정도로 이 사안을 대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사실 이미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직전에도 사회 곳곳에서 비정규직이나 대학 등록금 문제와 같은 ‘뇌관’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터질 것인지 많은 얘기들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판단하길 바라며 방향전환을 제대로 하려 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도록 협력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