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선 발암물질이 한국선 안전물질
        2009년 05월 27일 09:5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맨날 기준 미만이라고만 하면서 현장은 개선하지 않고 있다.”

    작업환경측정을 하면 항상 노동자들이 하는 얘기이다. 반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반응은 기준 미만인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기준 미만이라도 문제는 있겠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화학물질의 노출기준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준을 아예 신뢰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측정대상 유해물질의 독성정보와 노출기준 자체가 문제 있다면?

       
      

    최근 신형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방역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뉴스를 보다 보면 공항에서 호텔로 곧장 격리되는 여행자들 얘기가 자주 나온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신형인플루엔자를 일반 감기로 보는 곳은 없는 듯하다. 한 마디로, 신형인플루엔자는 “위험한 것”이라고 전세계가 동의했다는 뜻이다.

    산재인정 암환자 한국은 20명, 프랑스는 1천 명

    그런데, 화학물질은 양상이 전혀 다르다. 캐나다 금속노조는 절삭유를 발암물질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자극성 물질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황산이 후두암과 폐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식성 물질에 불과하여 피부에만 묻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절삭유에 대한 노동자 노출기준도 나라마다 다르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벤젠의 경우 미국에서는 1987년부터 작업환경 노출기준이 1ppm(피피엠)으로 관리되었다. 우리나라는 2003년도에 10ppm에서 1ppm으로 개정되었다. 발암물질은 나라에 따라 인정하는 것도 다르고, 노출기준도 다르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암물질로 인정하는 물질은 총 56종에 불과하며, 작업환경측정 대상물질은 20여 가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조직인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발암물질은 최소 400여 종이 넘는다.

    이 중에서 직업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물질은 200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으며, 암에 걸려도 직업성 암이라는 것을 의심해보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보상되는 직업성 암 환자는 1년에 겨우 20~30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랑 인구규모가 비슷한 영국과 프랑스가 1년에 1000명 정도는 직업성 암으로 산재가 인정되고 있는 것에 비교할 때 턱없이 낮은 수치다.

    발암물질 정부 기준 무시해야

    이제는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과 발암물질의 현실이 얼마나 엉망인지 공감할 수 있으리라. 정부의 기준이라는 것이 세계적인 최근 연구결과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우리의 기존 상식을 뒤집어 엎어야만 문제가 바로잡힐 것 같다. 정부의 기준은 무시해야 한다. 무엇이 진짜 발암물질인지 우리의 손으로 확인하면서 현장에서 발암물질을 잘 알고 쓰거나, 발암물질을 독성이 덜한 물질로 대체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

    ‘아이쿠, 일이 커졌구나. 불가능 하겠는걸?’ 혹여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희망을 드리고자 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유해성에 따라 관리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였다. 리치(REACH)라는 제도인데, 기존 제도에 비해 강력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발암물질, 생식독성물질, 변이원성물질, 환경잔류물질 등 우려물질들에 대해서는 목록을 작성하여, 목록에 있는 우려물질은 정부가 허가해주지 않고서는 시장진입을 금지하는 것도 중요한 내용이다. 현재 유럽에는 10만 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있으며, 이 중에서 실제로 1년에 1톤 이상 생산 또는 수입되어 유통되는 물질이 3만종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유럽의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이 무엇을 하였느냐 하면, 자체적으로 267종의 물질 리스트를 만들어서 정부에게 제출하였다. 우려물질목록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2008년 9월의 일이다. 2009년 1월에는 노동조합이 물질리스트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총 306개의 물질이 올라있다. 이런 식으로 이미 외국에서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을 정의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못할 일은 아니다.

    발암물질정보센타 출범

       
      ▲ 발암물질정보센터/감시네트워크 발족식 (사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올해 4월 녹색병원 연구소에는 발암물질정보센터가 만들어졌다.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도 만들어졌다. 전국에서 약 30명의 전문가들이 ‘발암물질 목록작성 전문위원’으로 등록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차원의 발암물질 목록을 만들어 발표하고 정부를 압박하는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환경부에 자료를 요청하여 우리나라에 수입, 제조되어 유통되고 폐기되는 발암물질들의 현황을 분석할 것이며, 전국 50여 개의 사업장에 들어가서 발암물질의 관리 및 사용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다.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를 묶어서 공동의 발암물질 목록을 만드는 작업도 준비 중이다.

    노동자들에게서 발생되는 암을 추적할 수 있는 감시체계도 준비하고 있다. 개별 사업장 노동조합을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의 회원으로 조직하여 암 신고엽서를 운영하고자 한다. 말 그대로 현장에서 발생된 암을 신고하면, 법률 환경 의학 전문가들이 검토하여 직업성 암일 경우 지원하는 사업을 할 계획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물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적극 결합하고 있어서 올해 중에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암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은?

    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만 더 뒤집어 엎도록 하자. 암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부분 조기발견 조기치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발암물질만 잘 관리하면 전체 암의 4~20%를 차지하는 암을 관리할 수 있다.

    시민들이 마시는 식수와 공기, 생활용품 속의 발암물질을 관리하면 더 많은 암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유해물질을 생산하고 수입하고 유통시키며 사용하는 기업들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고쳐야지, 증상을 고치려고 해서는 늦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생각을 확 바꿔보자.

    * 이 글은 주간 <변혁산별>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