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 전 첫 만남 & 네번의 만남
        2009년 05월 26일 06:14 오후

    Print Friendly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던 변호사 시절과 국회의원 시절에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솔직히 깊이 있는 만남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노무현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을 보며 우리가 성찰해야 할 바를 적어본다.

    노무현 변호사에 대한 기억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변호사로 활동할 무렵에 있었던 몇 차례 만남을 기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한창 활동하던 시절인 1986년 가을인가에 처음 그를 만났다.

    당시 대우조선에서는 1985년부터 불어닥친 조선 불황으로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었고 현장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 불안하고 힘든 상황이었다. 1985년 말, 노동조합 결성 준비모임을 시작한 우리는 1986년에 들어서면서 매월 한 차례 천주교 신부님들의 이름을 내세워 활동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노동법 강연회’였다. 그래서 1986년 가을, 노무현 변호사를 초청해 한 성당에서 노동법 강연회를 개최하기로 했는데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1987년 4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 회사의 방해로 실패하고 우리는 해고되었는데 그 때부터 부산에 있었던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에 자주 들리면서 그를 몇 차례 만나게 되었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87년 6월 부산지역 민주항쟁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6월 항쟁이 절정에 올랐던 6월 26일 새벽, 부산 서면로타리에서 시위를 마치고 남천동에 있던 노변호사의 집에 활동가들이 모였다. 다음 날의 시위와 향후 투쟁에 관해 논의한 자리였는데 이 때 노변호사는 법적인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6월 민주화투쟁은 곧바로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옮겨 붙었다. 나는 당시 해고자 신분으로 대우조선의 노동조합 결성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노조설립을 도와주었고 이것이 당시 노동법에서 금지했던 소위 제3자 개입을 한 것이 되어 노동자 대투쟁이 끝나갈 즈음인 9월에 구속되었다. 이 때 노변호사가 우리의 사건을 담당하였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노무현 변호사와의 네 번의 만남

    그리고 당시 대우조선 노동조합 설립 투쟁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석규 열사 장례 문제로 노 변호사 역시 구속되었다가 나중에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 때 그는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의 활동이 ‘학생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재판을 방청했던 나 역시 깊은 감명을 받으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우리 해고자들은 본격적으로 복직투쟁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법적으로도 다투기로 하고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자연스럽게 이 때 또 다시 노 변호사가 사건을 맡게 되었고 네 번째 만남이 되었다.

    그리고 노변호사는 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우리의 해고 소송문제로 국회에 그를 찾아간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는 87년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것은 1989년 대우조선노조의 임금인상 투쟁 중 박진석, 이상모 두 열사의 분신으로 투쟁이 전국 이슈화 되었고 국회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그 때 노변호사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대우조선을 방문하였다. 나는 당시 해고자 신분으로 상황실장을 맡고 있다가 잠시 마난 적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기대 저버리다

    이렇게 노동운동을 통해 그와 몇 차례 만난 인연이 있었지만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냥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잠깐씩 만난 그에게서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이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성이 유난히 풍부했던 것 같은 그는 노동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감상적인 태도는 있었어도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소위 ‘합리적인’ 법과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노동문제에 관해서는 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야당시절에도 그랬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던 대통령 시절에도 노동자의 입장보다는 자본주의 국가의 최고 집행권자로서 자기 임무에 충실했던 것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에게도 역시 국가란 ‘자본주의의 집행기구’였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의 죽음 앞에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 이외의 다른 느낌이 별로 없다.

    노무현의 죽음이 던지는 성찰, 우리의 이중성

    이제 그가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으로 죽었다. 현 정권과 검찰이 죽였다는 일부 지지자들의 표현이 아무리 수사적인 표현이라 해도 ‘자결’이라는 선택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죽음 방식이 바로 우리의 수준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정치 지도자의 수준은 곧 그 국민의 수준이다’ 라는 말이 있다. 선거 때마다 자기의 존재를 배반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죽음에서까지도 적용된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그 죽음의 근원에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을 가장 큰 무기로 정치에서 성공한 사람조차도 ‘배금주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배금주의의 공범의식으로 묵인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그의 죽음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이 더러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인정하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보이지 않는 더러운 ‘돈의 전쟁’에 모두가 가담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청렴과 도덕을 외치고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돈의 노예’로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의 중독 속에서 애초부터 도덕적인 대통령을 기대했던 것은 잘못이었다.

    이는 이명박을 선택한 국민들의 대선 투표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경제지상주의’, ‘경제 중독’에 걸려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이명박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노동자들이 너나없이 주식이다, 펀드다 하면서 매일 출근하면 주식 시세를 가장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며 때로는 노동운동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다.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

    이런 배경을 생각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결은 표면적 도덕성과 내면적 배금주의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의 노동자 서민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의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보면 지나친가?

    그러나 어느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 짙게 배인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를 개탄하면서 노무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볼까? 우리는 또 애써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적당히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것이다. 배금주의에 중독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노무현의 죽음을 노동자의 눈으로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가 대통령 시절에 노동자들의 친구에서 노동자의 적으로 바뀐 것을 이야기해야 할까? 나는 판에 박힌 얘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이고 성찰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노무현의 죽음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수사와 정치적 보복에 의한 압박으로 죽을 수밖에 없도록 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온전히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해도 혹시 우리 모두가 이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주의에 젖어 있음을 숨기는 공범의식이 만들어낸 또 다른 도피처는 아닐까?

    겉으로 공적으로는 도덕성을 외치면서 뒤로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합리화하면서 돈을 받는 이중성은, 겉으로 공식적으로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양극화 해소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뒤로 개인적으로는 주식투자에 올인하고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삼는 잘못된 노동운동의 이중성과 무엇이 다른가?

    돈의 노예를 넘어 변혁으로

    우리가 물질만능, 배금주의가 만연한 이 자본주의 사회를 제대로 바꾸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물질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주의를 내 주변에서부터 실천해 나가지 않고서는 노동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모두가 함께 나누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경쟁사회에서 경쟁에 이기기 위해, 보다 잘 경쟁하기 위해, 엄청나게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임금인상 투쟁을 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전직 대통령이 자결한 소식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에서 한 단계, 한 발자국 전진하기 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의 노동운동이 정말 한 단계 전진하려면 자본주의의 체제를 과감히 거부하는 단호한 결별이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노무현은 노무현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운동은 운동이고 개인적인 삶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이라고 구분할 수 없다. 그의 죽음이 노동운동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지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