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수궁에는 있고, 서울역에는 없는 것
        2009년 05월 25일 05:3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평일 낮이라는 시간적 제약,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행렬은 끊기지 않았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시민분향소’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100여 미터 가까이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국민장의위원회가 구성한 서울역 앞 ‘공식분향소’에도 끝을 알 수 없도록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이날도 노 전 대통령의 영정에 헌화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덕수궁 분향소에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상희 민주당 의원 등이 시민들의 조문을 맞았고, 서울역 분향소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및 민주당 관계자들이 시민들을 맞았다.

       
      ▲덕수궁 분향소 앞에서 시민들이 헌화 후 목례를 하고 있다. 뒤로 국화꽃을 매단 전경버스가 눈에 띈다.(사진=정상근 기자) 
       
      ▲서울역 앞 공식분향소 모습(사진=정상근 기자) 

    그런데 두 분향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덕수궁에는 있고, 서울역에는 없는’ 그 무엇들 때문이다. 같은 추모 현장임에도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덕수궁 앞 분향소를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는 ‘전경버스’다. 덕수궁 앞 분향소에는 전경버스가 있고, 서울역에는 전경버스가 없다.

    철통같이 둘러싼 전경버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토요일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분향소인 덕수궁 분향소를 통제하며 여론의 강한 반발을 샀던 경찰은 이날은 분향소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전경버스로 인근을 둘러쌓다. 그리고 덕수궁과 가까운 서울시청 인근에 전경부대를 대기시켰다.

    이들은 전투복이 아닌 근무복을 착용했지만 방패를 휴대하며 언제든 ‘출동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분향소 인근에서 만난 50대 시민은 “버스로 이렇게 둘러싸고 있으면 추모 분위기가 나겠나? 위압감만 든다”라며 “이 정부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노 전 대통령을 죽인 것이 현 정부 탓이라는 여론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역에는 전경버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경찰은 약 200여 명의 병력을 배치시켜 질서유지에만 힘을 쏟고 있다.

    ‘반 이명박’의 구호도 덕수궁 시민분향소와 서울역 분향소의 주된 차이였다. 덕수궁 인근에는 플래카드와 리본, 대자보 등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이명박 정부에 의한 타살’이라는 정치적 구호가 서려있다. 또한 분향소 한 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서명도 받고 있었다.

    이명박 탄핵 서명

    반면 서울역 분향소에는 정치적 구호가 적인 플랫카드나 전단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4시를 전후해 5명의 시민들이 덕수궁 인근으로부터 서울역 분향소를 찾아 ‘시민분향소를 돌려 달라, 분향소를 시청광장으로 하라’며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피켓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어디서 조직되서 나온 것이 아니”라며 “덕수궁 인근에 있다가 (정부의 분향소 통제방침이)너무 화가 나서 시민 몇 명이 모여 매직과 하드보드지를 사서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덕수궁 인근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그리고 서울역 앞 공식분향소에서는 상조회사가 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덕수궁 인근의 자원봉사자들은 시민들의 질서를 유지하고 ‘근조’리본과 시민들이 기부한 국화꽃을 배부하고 있다.

    한 자원봉사자는 “지금까지 연인원으로 약 25~30만 정도 찾아주신 것 같다”며 “시민들이 국화꽃도 사오시고, 물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자원봉사자가 부족해 여기계신 분들은 2시간 정도 주무시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덕수궁에서 부터 온 시민들이 서울역 앞 공식분향소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조승수 의원이 조문 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한편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등은 25일, 서울 각지의 분향소를 방문하면서 덕수궁 분향소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이에 대해 노 대표는 “여기가 바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노무현 정신으로 세워진 분향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그런데 정부가 이곳에 있는 시민들을 불법시위자로 몰면서 경찰차벽을 치고 진압병력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추모열기가 두렵다면 정부당국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뒤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민주화 이후 최대사건”이라며 “하직하신 이후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 왜 일이 이렇게 되었나를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