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고 "다시 노동계급으로"
        2012년 05월 08일 12: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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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L계의 부르주아와 결탁한 의회정치는, 결국은 그 추악한 본질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그들의 패권주의, 당권파의 조폭을 방불케 하는 집단 행동 등이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추악한 본질, 낯설지 않은 행동

    NL계가 남한 사회에 처음 뿌리내리던 전대협 시절에도 그랬다. 수많은 학원자주화 투쟁에서도 그들은 대학 측과 타협하며 투쟁을 진행했다. 투쟁은 당연히 평화적이고 타협적이었다.

    미리 각본을 짠 것처럼, 투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전경들은 미리 철수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행부는 전경이 철수하자마자 거기에 따라 투쟁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회나 투쟁이 모두 사전에 합의되고 각본은 미리 짜여졌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들은 학교 측과의 타협으로 (그들은 장학금이라고 말한다) 투쟁 없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조직을 키워왔다. 무엇인가에 대해 투쟁하고자 하면, 그 당시 NL계 이론의 지침서였던 ‘강철서신’의 예를 들어 “역량이 안 된다”며 투쟁을 회피하였다. 그리고 NL을 비판하면 대자보를 찢거나 총학생회로 끌고 가 뭇매를 때리기도 하였다.

    (강철서신은 80년대 후반에 “지금은 역량이 일천한 시기에 놓여 있소~” 라고 주장하며 전위정당 건설을 반대 하였으며, 대중 추수주의인 산개전을 주장하였다. 그 저자 김영환은 현재 뉴라이트 소속이다)

    전대협과 한총련이 사멸의 길을 걸은 것은 그들이 과격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 온건해서다. 후반부에 그들은 너무나 안이하고 평화적인 투쟁만을 지향해 왔다. (평화적 투쟁에 학생들이 10% 모인다면, ‘전투’를 하게 되면 20%, 더 치열해지면 그 이상 모인다. 평화적인 투쟁은 형식적이고 절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원은 늘어도 대중 신뢰는 떨어져

    그들의 조직원 숫자는 늘어갔을지 몰라도 전체 대중들의 신뢰는 급속하게 떨어져갔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과 똑같은 패권주의와 역량 타령이 노동운동에도 벌어졌다. 노동자들이 무엇인가 투쟁하고자 하면, NL 운동권이 역량을 들먹이면서, 때를 기다리자며 노동자계급의 투쟁의지를 막아왔다. 이것을 비판하면 분열주의자, 종파주의자, 품성이 안 좋은 자로 몰려 매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시 2008년 광우병대책위의 비겁한 행동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비판한 촛불시민들을 그들은 아직도 정체불명의 과격주의자로 매도하고 있다) 아직도 NL이 지배하는 운동판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FTA 범국본도 마찬가지였다. 투쟁보다는 선거나 정치인의 연설에 집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술만 먹고 투쟁하지 않는 민주노총 결의대회, 기륭에 사수대를 보내겠다는, 시청광장을 탈환 하겠다는, 무수히 미사여구만 남발하며 ‘뻥 파업’을 주도하였던 민주노총 상층부 관료들도 NL계가 장악하였다. 그것 때문에 이번 총파업도 사실은 의심스럽다.

    그들이 적어도 총파업의 의지가 있다면 아무리 선거 기간이라 할지라도 희망광장의 동지들과 대한문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월 11일에도 당연히 재능투쟁과 결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투쟁하지 않는 자들이 만드는 총파업이 과연 얼마나 자본가 계급을 타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아는 NL은 마치 암세포 같았다. 미리 그 싹을 잘라냈어야 했는데 그 싹을 제대로 비판해내지 못하고 그 싹을 키운데 대해 일말의 역사적 책임을 통감한다.

    그들의 이론과 실천

    모든 이론과 실천은 통일되어 있다. 그들의 지금 실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의 이론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NL에도 주사가 있고. 비주사가 있고 여러 가지 분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의 실천을 관통하는 중심이론은 계급이 없는 상명하달식 패권주의 주체사상이다)

    그들의 이론에는 계급이 없다. 주체사상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계급성이 아니다. 또한 그것에서부터 이어지는 품성론, 인간학 개론은 결국엔 수령 일가를 숭배하는 혈통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다.’로부터 시작해서 결론은 영도자의 순수한 혈통으로 끝이 난다. 결국 주체사상의 인간학개론은 자신들의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다.

    또한 혁명을 포기한 일국사회주의는 민족주의로 귀결된다. 민족을 외치면서 어느 틈엔가 우리는 계급투쟁, 반 자본가투쟁보다 민족투쟁이 우선시 되어왔고, ‘미제’가 축출되어야 모든 모순이 해결된다는 논리가 정식화되고 말았다.

    미 제국주의를 축출하려면 그들과 결탁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을 축출해야만 가능하다. 민족 일변도의 투쟁은 현실의 계급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생산의 담지자이고 혁명의 원동력인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섰을 때만이,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을 철폐하고 다른 계급마저 철폐하였을 때만이 비로소 계급은 철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계급이 철폐 되었는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계급을 철폐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독재이지 어느 한 집단이나 관료계급의 독재가 아니다. 독재라고 해서 내부의 민주주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철저하게 노동자계급 대중의 민주주의와 이해에 기반을 둬야 한다. 시대를 초월한 3대 세습은 북한에서 내부 민주주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북한이 고도로 폐쇄되어 있고 착취사회라는 것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이다.

    주체사상, 노동계급 착취 은폐

    소련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의 공산주의자는 모두 숙청되었다. 혁명은 패배하였다. 아니 존재하지도 않았다. 소련에서 넘어온 김일성과 그들의 관료집단에 의해 북한은 장악되었고 그들은 북한을 지배하는 관료계급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모든 법칙은 현상적으로 국가와 국가 관료를 통해서 관철된다. 북한은 국가 관료 계급이 통제하는 사회이며 엄연히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고도의 착취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러하기에 북한에서의 계급은 소멸되지 않았다. 주체사상은 계급관계를 은폐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는 철학이다.

    북한을 짝사랑했던 80년대 방북 인사들에게 북한이 했던 말이 널리 구전된 바 있다. 남한의 혁명을 도와달라는 말에 북한은 일언지하에 “자력갱생 하시오.”라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세계혁명을 포기하고 자국의 혁명은 자국의 민중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는 것이 일국사회주의 이론이다. 북한의 사상과 현실은 남한에 어떠한 도움조차 되지 못한다. 그 사회 자체가 남한과 마찬가지로 계급사회이고 타도 되어야할 착취 사회이기 때문이다.

    NL의 이론에는 계급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은 필연적으로 민족주의로 흐르게 되고, 그들의 실천은 현상적으로 자본가계급과의 계급 협조 또는 결탁으로 이어진다. 또한 계급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기에 운동에서는 필연적으로 대중추수주의, 대중영합주의로 나타난다.

    낮은 대중의 의식수준에 맞추어 대중의 후미를 쫓아다니는 운동은 목적의식적인 운동의 발전에 아무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의 암세포라는 것이다. 그들이 10년 동안 만들어 놓은 조합주의, 관료주의의 대명사인 민주노총.

    투쟁하지 않고 자본가 계급과 타협하고, 협조하는 민주노총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이번의 3자 통합, 그리고 이어지는 부정들. 또한 북한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민주주의가 전혀 없는 상명하달식 구조. 도저히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암세포 이다.

    그래도 비당권파가 통합진보당을 개혁하고 싶다면, 3자 통합을 반성하고 다시 노동자계급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철회하고 총파업을 하려거든 쌍용자동차 문제부터 집중하면서 총파업을 하기 바란다. 22명의 죽음이 과연 좌시할 죽음인가? 투쟁 밖에서 총파업을 조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이다.

    투쟁과 조직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투쟁하면서 총파업의 의지를 키워 나가는 것이지 따로국밥은 없다. 민주노총이 선포한 이번 총파업이 자본가계급을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총파업에 그친다면 민주노총 상층부는 노동자 대중들로부터 유리되고 사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NL계가 거듭 나려거든 마녀사냥이니(김선동 의원), 세작의 이간질(이정희 대표 비서실장 신석진)이니 이런 구차한 변명 늘어놓지 말고 철저한 반성위에 제대로 거듭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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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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