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발길질 하면 문다"
By 나난
    2009년 05월 25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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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동생이, 아들이, 조카가 대화하자고 요구하며 자기 자신을 던졌다면 어떻게 하겠나?”

김달식 화물연대 본부장은 지난 20일자 조선일보의 ‘민노총, 당신들 조카 동생이라도 죽창으로 찔렀겠나’는 사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죽했으면 조합원들의 요구가 ‘안 두들겨 맞는 집회 좀 해보자’는 것”이라며 그는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색소를 뿌리기 전까지 만장깃대 하나 길가에 떨어진 게 없었다"며 "오히려 시위대를 토끼굴로 밀고 들어 간 것 같아 후회한다"고 말했다.

대전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직후인 지난 18일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담배를 물고 있던 그를 본 후 처음이다. 그때보단 덜 피곤해 보였지만 더 깊어진 주름과 짙은 어둠이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지난 22일 서울 모처에서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을 만났다.

   
  ▲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사진=이은영 기자)

한숨이 깊었다. 말과 말의 간격은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져갔다.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 동안 김달식 본부장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대화하자”, “안 된다”, “두렵다”로 정리된다.

고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통운 78명의 해고자를 복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한 그는 결국 절박한 심정으로 자결을 선택했다. 김달식 본부장은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대화를 하자고 했지만 정부나 관계부처는 오히려 ‘일체 대화 없다’며 노동자를 두들겨 패겠다는 방침을 내놨다”고 말했다.

"개도 발길질 하면 문다"

“말 못하는 개도 지나가는데 발길질 하면 문다. 소중한 동지를 잃었고, 함께 했던 동지가 악질 자본에 ‘대화하자’고 요구하다 억울하게 목숨을 던진 곳에서 (경찰은) 철저하게 토끼몰이식 진압을 했다. 정부 관계부처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은 가정에 비유하면 가장이다. 자식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달라는데 몽둥이로 때리고 죽이려는 부모가 이디에 있나?”

화물연대는 지난 16일 조합원 만장일치로 총파업을 가결시켰다. 그는 “화물연대 역사상 전체 성원 중 6000~7000명이 동시에 모여 총파업 단일 안건으로 총회를 연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화물연대 파업에 참가하는 화물 기사에 대해 ‘정부지원 혜택을 중단하겠다’, ‘면허를 취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는 해마다 화물연대와 화물노동자들의 공통적인 문제와 현실에 맞지 않는 정부 정책에 대해 교섭해 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국토해양부는 화물연대와는 일체의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화하자”는 화물연대의 요구에 정부는 ‘원천봉쇄’, ‘폭력진압’, ‘강제연행’으로 답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정부가 대화를 거부하는 한 화물연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 김 본부장은 "박종태의 심정"이라고 말했다.(사진=이은영 기자)

그는 “결국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선언하고 물류를 멈춘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부는 ‘물류대란’, ‘경제손실’, ‘집단행동’ 등을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화물연대에 떠넘길 게 뻔하다. 김 본부장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모든 책임 떠넘길 것 뻔하다"

“박종태의 심정이다. 대화를 하자는데 대화를 안 해 준다. 대화상대를 불러내기 위해 먹고 살기 바쁜 노동자들을 3번씩이나 대전에 집결시켰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직 공권력을 이용해 화물연대를 짓밟고 있다. 답답하다… 박종태 열사가 이런 심정으로 자신을 던지지 않았을까….”

현장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정부에 대한 분노와 대한통운에 대한 울분으로 들끓고 있다. 현장의 조합원들은 그에게 “우리는 기름장이다. 머리 쓰지 말자. 가슴으로 몸이 허락하는 대로 가자”며 총파업에 힘을 싣고 있다. 그는 “제2, 제3의 박종태가 나올까” 우려한다.

“현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전술을 주문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그의 말줄임표는 그가 박종태의 심정이듯 현장의 조합원들 역시 박종태의 심정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대화가 필요해서…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하고, 또 다른 대화를 위해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하고. 조합원들도 안다. 그 전술이 자신을 던지는 것이라는 걸… 그런데도 그걸 하자고 한다. 분노가 차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대한통운은 오히려 분노에 찬 화물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부추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텐데… 국민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놈들이 대한민국 정책을 펴고 있다.”

화물 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기에 단체교섭권도 없다. 대화의 권리가 없으니 정부나 자본의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는 “단체교섭권도, 단체결성권도, 단체행동권도 없다”며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의 페어플레이”를 제안했다.

"수퍼마켓 사장 쉬면 처벌하나?"

“정부나 자본이 노동자보다 우월하니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노동권에 준하는 ‘글러브’를 지급하고 페어플레이를 하자. 화물연대가 파업한다고 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가 파업하는 게 불법인가? 수퍼마켓 사장이 가족들이랑 소풍가고 싶어 며칠 문 닫았다고 법으로 처벌할 수 있나? 같은 사안임에도 그때마다 규정의 잣대가 달라진다. 자기네가 필요할 때는 ‘자영업’자다.”

하지만 정부는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물류대란’, ‘집단행동’, ‘엄정대처’라는 비난은 물론 연행과 구속으로 대응해 왔다. 현장에서는 “노동기본권이 뭔데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고 피해를 봐야하느냐”는 학습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화물은 공공업종이었다. 화물이 멈춰 버리면 세상이 갑갑해진다. 물, 기름, 컴퓨터, 카메라, 화장지까지 우리가 다 수송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 공공성에 맞는 정책으로 관리 감독해야 한다. 노동기본권을 먼저 주고 필수유지규정이나 필수사업장 등 대응책을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한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지난 대전 집회 이후 투쟁력이 약화된 게 사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각 산별단위와 민주노총의 연대가 절실하다. 그는 “가장 절벽 끝에 선 사람들만 파업을 결의하고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며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상에서 선동할 때 민주노총을 꽤나 씹었다. 이명박 탓만 할 게 아니라 현장 동지들을 지도하지 못했던 지도부의 책임은 없느냐? 민주노총의 책임 아니냐? 각성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도 싸워왔다. 각각 싸울 게 아니라 쟁점이 생겼을 때 총봉기로 전국을 들끓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이 기회다. 조합원들도 ‘같이 하면 이긴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걸 못하고 있다.”

“총파업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는 그의 말에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는 며칠 전 대한통운 측이 일간지 신문을 통해 낸 의견 광고 얘기를 꺼내며 “거짓이 아닌 게 없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힐난했다.

   
  ▲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싸우겠다"는 그는 "이 세상에 사는 게 더럽고 두렵다"고 말했다. (사진=이은영 기자)

대한통운은 의견광고를 통해 노동자들을 해고한 적도 없으며, 운송료 30원 인상을 합의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과 화물연대가 그토록 주장하는 ‘대화’에 대해 “언제든지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대한통운 사측의 새빨간 거짓말

“노동부 일일 상황 보고에 따르면 대한통운 대표단과 논의해 운송료 30원 인상하기로 합의했고, 합의사항이 깨져 박종태 지회장이 개입했다는 보고가 올라와 있다. 대한통운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또 박종태는 대화를 요구하며 30여일을 싸웠고 도저히 안돼 택배의 허브인 대전까지 올라와 대화공간을 요구하다 그렇게….”

그 역시 화물 노동자다. 21살에 화물차 핸들을 처음 잡은 그는 화물연대 지도부를 한 7년의 시간을 빼고는 화물차를 운전해 의식주를 해결해 왔다. 그를 통해 들은 화물 노동자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루 평균 10~12시간 운전하며 포항에서 서울을 다녔다. 배차를 받기 위해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며 오후까지 기다린다. 오후 1시쯤 오더를 받고 또 기다린다. 수십 대 차량이 상차를 하는 동안 2~3시간의 기다림이다. 2시간 정도의 숙면을 취한 뒤 오르막 내리막 꼬부랑 좁은 길을 달린다. 한시도 방어운전을 놓칠 수 없다. 상차하고 결박하고 하역하는 1박2일 동안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시간도 채 안 된다.”

하루 평균 13~15시간의 노동을 하고 화물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임금은 150여만 원에 불과하다. 술 담배 안 하고 밥 한 끼 굶어야 200만 원정도. “손톱 밑에 기름때가 찌들도록” 일을 한 그들이지만 ‘신용불량자’는 흔하디흔한 일이다.

“한도 이상의 대출을 받는다. 신용불량자가 되도 먹고 살아야 하니 부인 앞으로 사업등록을 옮긴다.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일하다 죽으면 산재처리라도 해 먹고 살 수 있지 우린 일하다 죽으면 장례비도 없다. 죽음으로써 이승의 인연을 없앨 수 있다지만 차량할부금은 남편이 죽고 가족이 죽어도 남은 가족이 갚아야 한다.”

한편 대한통운은 자사 택배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300~350만 원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혼자서 하던 일을 부부가 함께 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부인과 함께 다니며 운송시간을 단축시키는 거다.

950원 vs 4050원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300~350만 원을 받는다고 하면 사측은 얼마를 벌겠나? 택배 하나 붙이고 받는 금액이 5,000원이다. 수수료 30원 올려 950원 달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 4,050원은 누가 먹나? 그게 무리한 요구였나?”

정부의 ‘대화 거부’에 답답했던 그는 도리어 기자에게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가면 천문학적인 사회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우리가 전혀 명분 없이 내놓으라는 것도 아닌데 왜 문제 해결을 해주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죽창이냐 죽대냐 논쟁하기 싫다. 지도부를 처벌하고 싶다면 내가 다 준비했다고 하자.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왜 사람이 죽었느냐가 먼저다. 해당관계 부처와 검찰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화물연대 때려 부수는 작업들만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사회에 살아가는 게 더럽고 무섭다”고 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절규에 가까운 ‘대화하자’는 요구가 정부와 검찰의 탄압에, 대한통운의 외면에 박종태의 심정으로 극한의 선택에 놓이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서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구라고 배웠다. 오히려 국민의 생존권을 축소시키고 짓밟는 정부가 지금 대한민국 정부다. 화물 노동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소외돼서는 안 되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인터뷰 내내 그는 말을 많이 하는데도 고요한 듯 보였다. 그의 말대로 "폭풍전야" 같았다. 그는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 대처방안에 맞서 "대처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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