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사람에게는 백 개의 사회주의"
        2009년 06월 01일 07: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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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반가운 책이 나왔다. <주간 진보정치>에서 연재가 시작되어 <레디앙>에까지 이어진 시리즈물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이 단행본으로 따끈따끈하게 묶여 출간된 것이다. 연재되는 동안 나름 마니아층을 만들어낸 글들이다.

    다루어진 인물들의 가치 못지않게, ‘사회주의자’라는 호명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긴장감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그건 뒤에 가서 얘기하도록 하고, 우선 이 책의 소재가 된 이들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개인적 소회를 이야기하자면 이 연재를 읽는 동안 나는 『성문종합영어』의 재발견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수능으로 입학 제도가 바뀐 이후 예전 같은 명성은 아닌듯 하지만 내 또래에게 『성문』은 가장 많이 읽히는 영어 교재였다.

    이 책의 장마다 ‘장문독해’ 예문이 하나씩 붙어있었는데 교양독서량이 부족한 학력고사 세대에겐 제법 인상적인 주제의식과 문필력으로 다가온 글들이 많았다. 마틴 루터 킹, 버트란트 러셀, 헬렌 켈러, 조지 오웰, 아인슈타인, 존 스타인벡 등의 예문이 기억에 남는다. 말하자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좌우와 신구를 막론하고 인정받는 철학과 인문적 소양을 지닌 이들이라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입시 관문을 통과하고 못보던 책, 못듣던 이야기들을 통해 이 필자들의 ‘불순함’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던 것인데, 『세계의 사회주의자들』(펜타그램. 13,000원)은 이를 제대로 확인시켜준다. 이 책의 전체 제목에 붙은 “교과서도 위인전도 알려주지 않는” (그리고 성문종합영어가 살짝 힌트를 준) 이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그럴 듯하다.

    교과서도 위인전도 알려주지 않는

    이 책의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의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는 익숙하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하다. 첫 번째로 실린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행적은 한국 운동권들에겐 제법 알려져 있다. 그의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깔끔하고 호소력 있는 에세이는 북미의 월간지 <먼슬리 리뷰>에 1949년 처음 실린 이래 지금도 두 해에 한 번 꼴로 실리고 있다.

    1994년에 개봉한 <IQ>라는 영화가 있는데, 월터 매튜가 아인슈타인 역을 맡고 멕 라이언이 그의 조카인 천재 과학자로 분한 작품이다. 아인슈타인의 그런 면모를 알고 보면 이 영화에서도 유쾌하고 따듯한 사회주의자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라고 나는 느꼈다).

    책에는 모두 30명의 사회주의자들을 모아냈다. 헬렌 켈러의 식견과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치활동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해보지만 여전히 경외스럽다. 조지 오웰과 존 스타인벡의 언어구사력과 동시대의 사회를 다루는 솜씨는 부럽고도 자랑스럽다. 파블로 네루다와 피카소가 가진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추종을 불허하지 않는가.

    우리를 ‘타임머신’과 ‘우주전쟁’의 공상 속으로 인도했던 허버트 조지 웰즈는 그 속에 계급대립의 메시지를 담아내었다. 현대 디자인과 생활 사회주의의 아버지인 윌리엄 모리스처럼 몇 페이지에 담아내기 어려운 인물도 있는가 하면, 존 레넌이나 켄 로치 같이 좀 더 알고서 그들의 작품을 보고 들으면 좋을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당연히 들만한 의문은 이들이 모두 ‘사회주의자’인가, 혹은 사회주의자라는 명명이 과연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30명의 인물 중에는 전향이라고까지는 하기 어려워도 노선 변경을 한 이들도 많고, 이들 사이에서도 낭만적 혹은 인간적 사회주의, 페이비언주의, 종교 사회주의, 노동계급주의 등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스탈린 체제, 68혁명, 베트남 전쟁, 베를린 장벽 붕괴 같은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들에서 이들이 모두 같은 태도를 취한 것도 아니다. 또 마르크스에 대한 긍정적 언급 몇 마디나 노동계급 지원 활동, 급진 평화주의 실천들을 가지고 ‘사회주의자’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인물들도 없지 않다. 사회주의자라고 이름 붙여 묶어놓은 것은 혹 자칭 좌파들의 강박관념은 아닐까?

       
      ▲아인슈타인, 존 레논, 존 스타인벡, 마틴 루터 킹, 조지 오웰, 미셸 푸코(왼쪽 위부터) 

    사회주의로는 협소하다

    그러나 만인의 자유와 만인의 평등을 함께 실현하기 위해, 그러한 인류의 실현가능한 이상을 가로막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와 지배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각고의 노력이 전개되어 온 것 역시 부인할래야 할 수 없는 일이다.

    백 사람에게는 백 가지의 사회주의가 있는 것이지만, 이 책이 다루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러한 가치요 실천이다. 혹은, 이들에게는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는 게 아니라 차라리 협소한 호칭일 수는 있겠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들은 시대의 불의와 불합리, 편협에 맞서는 ‘반체제자’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혼자만의 이상과 관념으로 담아둘 수 없었던, 그래서 함께 투쟁하고자 했던 이들이 아니었을까? 다름 아닌 존 레넌이 노래했듯이 말이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로버트 브레너 등이 편집진으로 있는 격월간지 이름이 바로 <시류를 거슬러서(Against the Current)>다. 지배체제의 시류를 거슬러야 한다는 거다. 사회주의자라는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동시대성과 불온함이라는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거다.

    이 책의 기획은 그러한 긴장의 환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인물들로 박제화되고 말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라는데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냐?

    20년 전에 인민노련 그룹이 법정 진술 등을 모아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지금 그런 책이 나온다고 겁을 낼 지배계급은 없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TV토론에서 사회당의 원용수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사회주의자 후보가 출마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이명박 후보는 허허 웃으며 “좋은 일이지요, 함께 토론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받아넘겼다.

    같은 시간에 월드컵 응원장에는 “Be the Reds”의 물결이 넘실거렸고, 히딩크 감독은 사회주의자임이 분명한 백기완 선생을 ‘오소독스(orthodox)’한 인물이라며 출국인사에 초청했다. 이명박과 룰라의 접선과 사노련 구속 영장 발부는 한국인의 인식 회로 안에서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촛불의 일부에게서 운동권은 좌빨이라고 공격받았고, 진보가 등을 돌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중동은 어제까지 좌빨이라 씹어대었다. 이것이 한국 사회다. 이것이 우리의 로두스섬인 것이다. 

    여운형-전태일-노회찬-진중권-한석호를 불러내자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이 한국 사회의 옆구리 정도를 간지르는 우회로일 것 같다. 그 자체로 충분히 불온하거나 그리하여 사회주의스럽거나 반체제스럽기는 어렵다. 지금의 상황으로, 지금의 발언으로 연결되고 재해석되어 다가가야 의미가 산다.

    좌빨 사상검열은 조중동만 해 온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진보운동 역시 자기검열을 해왔다. 그간 한국전쟁의 기억과 북한체제라는 변수 아닌 상수가 너무도 컸고, 진보운동의 성장이 더디고 어렵기는 했지만 우리의 이름으로 하나 둘씩 사회주의를 다시 호명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미남 엔터네이너 사회주의자 여운형을 불러내고, 우리의 세계적 휴머니스트 사상가 전태일을 불러내야 한다. 우리의 국민개그 사회주의자 노회찬을 부르고, 독설 사회주의자 진중권을 부르고, 만담 사회주의자 김종철을 호명하자.

    무지개 사회주의자 한석호가 있고, 사회연대노동운동 사회주의자 임성규가 있고, 페미니즘 사회주의자 누가 있고, 생태사회주의자 누가 있고, 장애운동 사회주의자 누가 있고, 문필가 사회주의자 누가 있고, 종교 사회주의자 누가 있고, 노래일꾼 사회주의자 누가 있고, 가사일꾼 사회주의자 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주의하는 거니까 사회주의 같이 할만 하겠네 해야 하는 것이다, 원래. 그렇게 안 되면 이런 책도 소용없고, 사회주의 강령 같은 것도 소용없고, 정치신문 같은 것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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