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부르는 사회, 노동자가 답할 때
    5.30은 승부의 날 "민주주의를 넘어"
        2009년 05월 27일 12: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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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핵폭탄이 터진 셈이다. 앞으로 어떤 정국이 전개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참여정부가 비정규직법 제정, 필수유지업무 제도 도입 등 철저한 노동배제 정치를 선도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혼란은 더 크다.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에 대한 좀 더 차분하고, 넓은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87년 6월 항쟁으로 만들어 낸 소위 YS, DJ의 ‘민주주의 정부’는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노동자, 학생, 시민이 함께 투쟁하여 쟁취한 ‘민주주의’였지만 그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로 확장되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결국 참여정부를 끝으로 과거 군부독재가 만든 민정당의 피를 이어 받은 이명박이 집권함으로서 87년 6월 체제가 만들어 낸 ‘노동자를 배제한 그들만의 민주주의’는 허망하게 끝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에 대한 정치적 상징이다. 87년 7,8,9월 노동자 투쟁이 지향했던 정치체제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시대의 전략적 방향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림수

    보수 세력은 ‘국가 기록물 유출’을 시작으로 왜 그토록 집요하게 노무현 죽이기에 몰두해 왔는가? 칼날은 소위 민주화 운동 세력 전체를 겨누었고,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소환조사를 마치고도 20여일이 지나도록 검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잡아 놓고, 가지고 노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 일부에서 ‘정치적 타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광장 폐쇄’는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며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MB 정권의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사진=손기영 기자)

    이명박 정권은 두 개의 전선을 치고 있다.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고리로 하여 소위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을 철저히 고립, 왜소화함으로서 이후 안정적인 집권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언론 장악을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지금의 이명박 정권을 정치적으로 규정하면 바로 ‘파쇼’다. 파시즘을 “국가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개인 생활 전반을 정치·사회·문화·경제에서 통제하려 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할 때 지금의 한국사회가 바로 그렇다.

    바야흐로 시계는 군부독재와 싸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87년 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 선 것은 군부 파시즘을 대체한 민간 파시즘이다. 따라서 이에 맞서는 보다 광범한 범국민적 저항 전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역사, 즉 소위 민주화된 정부에서의 지속적 노동자 탄압의 경험은 단순한 ‘반 MB 전선으로의 결집’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쇼에 맞서 ‘민주주의를 넘어선 전망’을 만들어야

    우리는 이 정국에서 어떤 길을 찾을 것인가? 현재 저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과 노동자의 만남을 차단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시청 앞에 차려진 빈소를 철통같이 방어하고 장소를 서울역 등지로 옮기려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꾸로 그들과 결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추모 때문만은 아니다. 용산 철거민과 택배 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죽음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비록 다른 이유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결국 이명박 정권의 ‘사회적’ ‘정치적’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촛불 정국을 돌아보자. 우리는 당시 광범하게 불렸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 이상의 전망을 주지 못했다. 거기에는 ‘누구를 위한, 어떤 민주공화국’인가는 없다. 시계는 딱 거기에 멈춰서 있다. 이걸 넘어서는 전망과 동력을 만들 수 있도록 현재의 추모정국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삶이 보장되는 공화국에 대한 ‘전망’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또 다시 투쟁은 노동자가, 결실은 보수 야당이 차지하는 지난 과거가 반복될 뿐이다. 박종태 열사의 “사회적 타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을 하나로 모으되 전망을 더 길고, 멀게 보아야만 한다.

    추모 대열 속에서 “용산철거민에 이어 노동자 박종태 열사, 이제는 전직 대통령까지!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고 함께 외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자. “대한민국은 MB와 부자만이 살 수 있는 나라다!”라는 광범한 선전을 전개하자.

    특히 힘 있는 권력 앞에 한없이 비굴하면서도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의 행태에 일침을 가하자. 5월 16일 대전 투쟁을 빌미로 지도부 7명에 체포영장 발부 운운하고, 공공연맹 위원장 등 에 대해 소환장을 남발하는 검찰의 노동자 죽이기 음모를 대중적으로 폭로하자.

    이미 친박연대가 ‘공권력에 의한 타살’로 규정하고 검찰총장퇴진과 중수부 해체를 요구하고 나선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재 투쟁 중인 화물연대의 투쟁을 엄호하는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결정적인 한 방을 준비하자

    조직되지 않은 대중이 멈칫할 때 조직된 노동자가 이번에는 반드시 길을 뚫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추모를 넘어 분노를 조직하자. 지난 촛불이 보여주었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잘 조직된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투쟁을 앞당겨야 하고, 쌍용자동차 투쟁, 용산투쟁, 박종태 열사 투쟁, 공공부문 선진화 반대투쟁, 언론노조의 투쟁 등 모든 가능한 투쟁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다. 모든 화력을 집중하자.

    열사정국이 만들어 낸 5~6월 투쟁에서 많은 것이 결정될 수 있다. 장례가 치른 후 다음날인 5월 30일은 바로 그 승부를 두는 날이다. 현장에서부터 더 많은 조합원의 참여를 조직하자.

    * 이 글은 공공운수현장조직(준)에서 펴내는 <공공현장> 준비 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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