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 '존엄사' 받아들일 준비 됐나?
    By 내막
        2009년 05월 22일 05: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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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80.1%는 법원의 존엄사 판결에 찬성했으며, 본인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에 처할 경우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응답도 77.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만큼 ‘존엄사’에 대한 국민 여론은 긍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압도적인 긍정여론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자기결정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확정판결이 있었던 21일 밤 방송된 <MBC 100분 토론> ‘존엄사, 자기 권리인가 생명경시인가’에서 신동일 국립 한경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 의료 현실이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개개인이 지는 의료비 부담이 적지 않고, 말기환자에 대한 통증완화 치료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자기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이라기보다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한 ‘자살 강요’에 가깝다는 말이다.

    사회경제적 조건 의한 ‘자살 강요’ 되어선 안돼

    ‘인도주의실천을 위한 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는 지난 3월 24일 ‘존엄사 제도화 이전에 필요한 것들’이라는 주제로 월례포럼을 가졌는데, 여기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김정범 인의협 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존엄사에 대한 전반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부족하고 오판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족들이 경제적 동기 등으로 인해 (무의식) 환자 본인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높고, 환자 본인도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법제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존엄사법의 남용가능성을 최소화할 방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건강보장성의 부족(보장율 60% 이하)으로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생명 연명 중단'(25.5%), ‘장기 매매 등 상업적 악용 가능성'(14.5%), 그리고 생명경시풍조의 확산 등의 우려가 크게 제기되었다.

    특히 1998년에는 사망원인 7위였던 자살이 2008년 자살자 1만 2174명으로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4위를 기록(2008년 9월 9일 통계청)한 것은 생명 경시풍조가 확산되어 존엄사가 남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게 만드는 지표이다.

    김정범 "의료보장 확대·호스피스 도입 전제되어야"

    김정범 위원장은 "존엄한 죽음에 대한 법제화는 필요하지만 존엄사법이 남용되지 않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존엄한 인간다움 삶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며, "의료보장이 지금보다는 획기적으로 넓혀져서 적어도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생명 연명 중단’이 존엄사로 남용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존엄사와 관련한 국회의 입법은 필요하지만 죽을 권리에 대한 합법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고통 경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존엄사 선택을 부추길 수 있고, 또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고 있는 것처럼 존엄사를 합법화하기 전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호스피스 완화 치료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며, "말기에 이른 환자들을 고통이 덜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제도가 도입이 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의 문제가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적어도 이 제도가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차별 없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제공된다면 이 제도를 바탕으로 치료 중단 여부에 대한 결정 절차라든가, 그 판단에 대한 주체, 환자 본인의 의사 등 존엄사법의 의미 있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우리사회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획기적으로 확충이 되어 최소한의 존엄한 삶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진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에 대해 가장 먼저 환영 논평을 냈던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레디앙>과의 전화통화에서 "존엄사 제도화에 수반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논평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며, "특별법 추진 과정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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