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참 차갑고 딱딱한 곳”
    By mywank
        2009년 05월 21일 07:1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21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더위를 잊게 해주는 ‘단비’였지만,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으며 수행하는 오체투지 순례단에게는 그리 반가운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장대비 속에 오체투지

    지난 3월 28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2차 순례(1차는 지난해 9월 4일~10월 26일)를 시작했던 오체투지 순례단은 공주, 천안, 평택, 과천 등을 거쳐 49일만인 지난 16일 서울에 입성했다. 서울을 찾은 이들은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아 고인들을 추모하는 108배를 올리고, 명동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순례단은 하루 4km씩 ‘전진’해 49일만인 지난 16일 서울에 입성, 다음달 6일 임진각 망배단에 도착하는 것으로 총 230km에 이르는 오체투지 순례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1차 순례까지 포함하면 이날로 108일째를 맞게 된다.

       
      ▲21일 오전 오체투지에 나선 문규현 신부(왼쪽),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가 도로에 몸을 눕히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사진=손기영 기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위한 이들의 순례는 이날에도 계속되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본질’을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일깨우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 9시경 수경 스님, 문규현 전종훈 신부를 비롯한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이날의 출발지인 명동 가톨릭회관 앞을 떠났다. 오체투지에 맞춰 간간히 들리는 징소리가 이들의 ‘바람’을 세상에 알렸다.

    오체투지 순례단은 이날 을지로 등 서울 도심을 지났다. 속도를 내 지나가는 차량들 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미미한 움직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커다란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세, 가장 느린 움직임으로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의 중요함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낮고, 느리게

    검게 탄 피부, 길게 자란 수염, 간간히 들리는 거친 숨소리…. 순례단 선두에 있던 수경 스님, 문규현 전종훈 신부의 얼굴에는 지난 108일 간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은 채, 자신의 몸을 다시 바닥에 눕혔다.

       
      ▲오체투지에 참여한 한 시민의 발바닥에 ‘백일출가’란 글씨가 적혀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오체투지 참가자들 중에는 맨발로 순례를 나선 이들도 있었다. 그 중 한 아무개 씨는 자신의 발바닥에 ‘백일출가’라는 문구를 새기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 씨는 “휴학을 하고 절에 가서 수양을 하고 있는데 좀 더 새로운 성찰을 하고자 잠시 출가해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위한 오체투지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맨발로 느끼는 서울이란 곳은 참 차갑고 딱딱했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보면서 삭막했던 서울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보였다”고 말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오체투지에 참여한 정중규 씨는 “이명박 정부의 생명파괴 정책에 대해 아직 대다수 국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몸은 좀 불편하지만 이를 알리고자 대구에서 올라왔다”며 “물질적인 정권 하에서 인간에 대한 가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침묵으로 말하는 법 배워"

    이날까지 3차례 오체투지에 동참한 배명숙 씨는 “오체투지를 통해 ‘침묵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며 “제 몸의 가장 높은 곳을 세상의 가장 낮은 곳과 함께 함으로써, 파괴되는 생명에 참회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데, 정부는 돈벌이․보여주기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서울C40 세계도시 기후정상회의’ 상징물인 ‘지구의 모래시계’ 주변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손기영 기자) 

    오전 10시 반, 참가자들이 오전 순례의 마지막 장소인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자, 경찰은 황급히 주변을 차벽으로 둘러쌓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광장 안쪽으로 오체투지를 벌이겠다’고 밝히자, 다시 광장을 열어주었다.

    광장 한편에는 ‘서울C40 세계도시 기후정상회의’ 상징조형물인 ‘지구의 모래시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아래는 “지구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모래시계로 형상화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과 행동의 변화가 우리의 소중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작품설명이 적혀 있었다.

    순례 중 잠시 휴식을 취하던 신현호 씨는 “이명박 정부와 그 추종세력들은 지금 경제논리를 앞세우면서 대운하 등 환경파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그들이 더 이상 ‘녹색성장’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는 ‘녹색’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오체투지 순례단은 이날 오후 청계광장을 거쳐, 법회 참여를 위해 조계사를 찾았다. 이들은 오는 25일까지 서울지역 순례를 마치게 된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