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존엄사 인정 정치권 환영
    By 내막
        2009년 05월 21일 06: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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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사’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해 진보와 보수 양쪽 정치권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한나라당은 원내대표 경선, 민주당은 제주도 워크샵으로 인해 관련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현실 정치권에서 최양극단에 있는 진보신당과 자유선진당은 각각 논평을 통해 대법원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히고 관련 제도 마련에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진보신당·자유선진당 "환영" 입모아

    진보신당은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은 우리나라 최고법원이 인간답고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의미 있고 진일보한 판결로, 이를 환영한다"며,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새로이 확립하게 되길 바라며, 정치권에 ‘존엄사 특별법 제정’ 논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존엄사는 ‘안락사’와는 다른 것으로 통증 완화치료만으로 환자가 고통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인데, 이제 환자와 가족의 동의 아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보신당은 "대만과 일본 등 아시아와 미국,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관습보다 법이 너무 뒤쳐져 있었다"며, "각종 여론조사결과로도 존엄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시대흐름에 적합하다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도 "생명은 무엇보다도 존귀하지만 ‘인간답게 죽을 권리’도 소중하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이번 존엄사 허용판결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자유선진당은 "이미 서울대병원은 지난 18일 암환자나 가족의 동의가 있다면 환자의 존엄사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서울대병원은 2007년에 말기 암환자 656명중 85%인 436명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관련자료도 공개했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은 "지난해 9월 국립암센터 조사에서도 존엄사에 대해 국민의 87.5%가 찬성했다"며, "이는 현실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는 사례들"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은 "우리나라에서 연명치료 중단은 환자가족이 고소할 경우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된다"며, "이번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을 계기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연명치료 중단 등에 관한 요건과 기준, 절차 등에 관한 법제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선진당은 특히 "본격적인 사회적 공론화의 장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존엄사로, 안락사와 혼동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실제로 존엄사 허용이 소극적 안락사의 범위를 벗어나 적극적 안락사까지 인정되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는 현대판 고려장으로 변질되는 사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법제화 필요성 논란…전제희 장관·법제화 반대

    반면 자유선진당 소속인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변웅전 위원장은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이 치료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살인면허로 오인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중요함을 원칙하에 존엄사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와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10일 이번 ‘존엄사’재판에 대한 판결에서 존엄사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면서 "연명치료 중단 등의 문제를 아무런 기준의 제시 없이 당해 의사나 환자 본인, 가족들의 판단에만 맡겨두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회에 관련 법을 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고법은 "개개의 사례들을 모두 소송사건화하여 일일이 법원의 판단을 받게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므로 사회 일반인이나 의사 등 이해관계인의 견해를 폭넓게 반영해 연명치료 중단 등에 관한 일정한 기준과 치료중단에 이르기까지의 절차, 방식, 남용에 대한 처벌과 대책 등을 규정한 입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의 판결에 앞서 지난 2월5일 ‘존엄사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최근 서울대병원도 말기 암환자나 그 대리인이 연명치료의 중단을 원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며, "이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료현장과 환자, 환자 가족들의 현실적 요구가 공식화 된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전제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지난 3월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존엄사 문제는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요. 섣불리 법을 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전 장관의 입장은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밝히고 있는 입장과 비슷한 것으로, 천주교측은 국내 종교계 중에서 유일하게 ‘존엄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법제화를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주교, 기계장치 생명연장도 나쁘지만 존엄사 법제화는 반대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봉훈 주교는 지난 3월 19일 김수환 추기경이 존엄사를 선택했다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 반박하면서 "인간의 존엄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자연적 죽음의 순간에, 법률적 잣대로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장 주교는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결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장 주교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의 존엄사법 입법 움직임에도 이러한 안락사 허용 의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며,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존엄사법 입법에 대한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법제정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의협, ‘판결에 공감’‥경실련 ‘판결에 경의’

    한편 그동안 존엄사 관련 법제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경실련도 21일 논평을 내고 "오늘 대법원은 존엄사 인정 확정 판결을 통해 우리사회의 존엄사 논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매듭짓는 전환기를 마련했다"며,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경의를 표하며,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존엄사의 법제화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환자의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회생 여부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존중해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대법원에서 최초로 허용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논평했다.

    의협은 “금번 대법원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개략적 요건만을 판단하고 있으므로,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 인정 범위 등에 대한 조속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로 생명윤리적 및 의학적 판단 등에 대한 논란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사회적 화두가 될 것이므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체계적이고 구체화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의사윤리지침에 연명치료 중단 기준 마련

    의협은 지난 2001년 의사윤리지침에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의료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확실한 의사표시에 의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다.

    좌훈정 의협 대변인은 “환자 및 환자 가족의 정신적?육체적 고통 해소 및 의료진과의 갈등 해결의 근거를 마련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의사표시가 불분명한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 여부 등 환자의 존엄성과 권리가 훼손되지 않고,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시 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과제로 남은 만큼 의협은 의학계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과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좌 대변인은 “이번 판결로 인해 무의미한 연명치료와는 관계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이런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이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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