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마케팅은 유죄인가?
        2009년 05월 21일 02: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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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초에 언론에 보도된 중국 윈난성의 일이다. 현의 임업국이 채석장으로 쓰이던 라오서우산의 절개 부분 수천 평방미터에 녹색 페인트를 칠했다. 인부 7명이 45일 동안 작업한 이 해괴한 ‘녹화사업’에 47만 위안(약 5,640만원)어치의 페인트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한 주민은, 이런 돈이면 5~6개의 산에 묘목을 심을 수 있다고 했다.

       
      ▲ 중국 원난성의 라오서우산. 채석장으로 쓰이던 산에 녹색 페인트를 칠했다.  

    ‘녹색분칠’, 즉 그린워시(greenwash)의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새만금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한다거나 한강 르네상스에 풀이 우거진 둔치를 조성한다든가 하는 용례를 보면 그저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린워시는 기업 혹은 정부가 친환경 혹은 환경 보전에 기여한다는 사업이나 상품을 내놓으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다른 부분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업이나 상품이 기업의 수익 모델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고, 기업이나 관공서의 이미지 제고 즉 PR을 위하여 친환경 사업 또는 상징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자신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든 것을 활용하여 이윤을 창출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게 자본주의이고 보면, 그린워시가 발전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다국적기업 감시단체 기업감시(CorpWatch)는 매년 지구의 날에 대표적인 그린워시 기업을 선정해 상을 주고 있다. 자동차 회사 포드는 환경 콘서트를 후원하고 환경친화적인 신차 광고를 실었지만 수상자의 불명예를 비껴가진 못했다. 물론 이런 기업 행태의 사례들은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녹색성장’ 선언 이후에는 청와대를 필두로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도 그린워시에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사실 친환경이나 녹색 같은 말 자체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한 말은 이런 의미에서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불황 속에 각광받는 그린마케팅

    업계에서 더 많이 쓰는 용어는 그린마케팅(green marketing)이다. 그린마케팅은 그린워시의 경우를 일부 포함하고 있거나, 부정적인 면 대신 보다 적극적인 기업활동 측면을 강조하는 경영학과 광고학 용어라고 볼 수 있겠다.

    유한킴벌리의 유명한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슬로건은 한국 그린마케팅의 고전으로, 기업의 리더를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들어주었다. 최근에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평가의 주요 항목으로도 환경 관련 부분이 포함되어 기업들은 그린마케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어쨌든 많은 경우 그린마케팅과 그린워시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요즘 흥미로운 것은 경제 불황 속에 그 탈출구로서 ‘그린’ 키워드가 주목받는다는 사실이다. 경기 침체로 인한 경영 압박과 에너지 가격 상승,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논의라는 배경 속에 대기업들이 그린마케팅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지난 십수 년 간 소비자들의 녹색 상품 수용성이 높아지고 체감할 수 있는 그린 아이템들이 많아진 것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난 해부터는 가장 큰 광고 시장 중 하나인 아파트 분양 광고에까지 그린마케팅이 펼쳐지는 게 인상적이다. 기존의 아파트 광고들은 그린마케팅을 하더라도 이미지 광고 혹은 단지 내 조경시설 홍보 정도였지만 최근의 사례는 경탄을 자아낼 정도다.

    “자연이 에너지가 되는 세상”을 내건 대림 e-편한세상의 CF을 보자. “신선한 아침햇살로 켜는 가로등/ 어제 내린 소나기로 만든 분수/ 한 차례 돌풍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아름답고 감각적인 문구다.

       
      ▲ 대림 e-편한세상의 CF

    “오늘 부는 바람도 에너지가 되는 세상”,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아파트 옥상마다 바람개비 터빈을 설치하여 외부조명에 활용하고 남은 전력은 한전에 되판단다. 물론 어느 정도 판매가 가능하고 온실가스 저감이 가능할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추상적이고 단순한 그린마케팅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녹색성장으로 물만난 녹색광고

    그렇지만 아무리 친환경 설계를 하고 설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초고층아파트 단지는 환기와 태양광선에 취약해 잦은 냉방을 요구하고, 엘리베이터 가동 전력이 많이 들고, 자동차로 이동하는 거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멋진 광고는 그러한 걱정이나 비판을 잠재울 뿐 아니라, ‘친환경적 실재’에 근거한 만족감을 제공한다.

    그린마케팅을 선포한 국내 항공사들이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항공유 문제를 없앨 수 없고, 녹색바람을 이야기하는 에어컨 광고가 원자력발전의 비효율과 도심 열섬효과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이런 그린마케팅은 뻥만이 아니다. 연료와 에너지 효율화라는 사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MB정부의 녹색성장 홍보 쪽으로 가보면 이건 그냥 뻥일뿐 아니라 거의 몰염치에 가깝다. 4대강 정비 등 녹색성장으로 선진한국을 이끈다는 식의 소위 공익광고들이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수산부 등에서 제작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공중파를 타고 있다.

    “경인 아라뱃길”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주장하는 서울시의 경인운하 광고를 비롯해서 지자체들의 녹색성장 마케팅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광고 문구 이렇다. “경제를 살리는 에너지 원자력/ 환경을 지키는 에너지 원자력/ 원자력, 안전하게 관리하겠습니다/ 녹색성장의 힘, 원자력”. 녹색성장 드라이브가 없었다면 이런 광고가 공공연히 방송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린마케팅은 유죄인가?

    정부의 기만적 행태, 기업의 얄팍한 상술은 미운 일이다. 그러나 저들의 담론은 허위이고 우리의 진실을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또는, 그린마케팅을 부정하고 열심히 공격하는 것만이 다일까?

       
      ▲ 필자의 얼굴 그림

    공정무역(혹은 민중무역이라 하더라도)과 녹색소비가 세상을 일거에 바꾸지는 못한다. 소비자들에게 뭔가 환경에 기여한다는 자존감만 주는 한편 산업주의의 더 무서운 동학을 수수방관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태계의 순환과 생산-소비자의 관계에 대한 감수성과 인식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린마케팅은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한 의제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 친숙하게 만들고,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자신의 선택이 상품 생산과 에너지 순환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을 체험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녹색담론의 전장에서 헤게모니의 문제다. 사람들은 경제적 합리성과 환경적 또는 인권적 윤리성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식과 관점 속에서 스펙트럼을 차지한다. 그린마케팅의 본질적 성격을 환기하는 것과 동시에, 녹색 생산과 소비에 참여할 수 있는 차별적 선택지를 주고 가능한 한 급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저감이라면 전력효율을 높인 에어컨 광고 앞에서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환기와 주택 개량 및 생활 패턴 변화와 같은 여러 실천 아이템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동양 최대 세계 최대의 재생에너지 발전단지 계획 앞에서 무력해 할 것이 아니라, 대신 지역단위 소규모 발전 설비를 직접 도입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강제할 수 있는 세부 실천의 방안들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적 녹색 기획이 갖는 사회정치적 의미를 상징화하고 끊임없이 일깨워주어야 한다. 대안적 녹색 헤게모니는 무척 길게 걸릴 일이지만, 당장의 의미있는 대안 없이는 진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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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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