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준 떨어지는 MB식 생태주의
        2009년 05월 20일 04: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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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지축 U턴 프로젝트 전문 상담 환영’. 컨설팅 업체 광고일까? 정답은 해방촌 부동산 중개업소 입구에 씌여진 문구다.

    서울시가 남산 그린웨이 조성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용산 동북부권 용산동 2가와 후암동 일대가 들썩이고 있다. 내용인즉슨 용산의 해방촌을 헐고 녹지대로 변신시켜 남산에서 한강을 잇는 생태축을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올 초부터 투기 예정지였고, 강남과 해외 교포들의 돈이 들썩이고 있다는 뉴스도 보인다.

       
      ▲ 사진 왼쪽은 해방촌의 현재 모습이며, 오른쪽은 남산 그린웨이를 조성한 뒤의 예상 모습이다. (자료=서울시)

    부동산 투기에 딱히 관심이 없더라도 용산이 요즘 속칭 ‘뜨는’ 동네라는 것은 대충 안다. 사람이 죽기까지 했다질 않는가. 용산구 땅값에는 거품이 없다던가. 최고의 위치, 최고의 가치라는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최고의 가치 해방촌?

    미군기지 자리에 들어선다는 용산민족역사공원, 한강르네상스, 국제업무단지, 33만 평 한남 뉴타운 등등 용산은 ‘노른자 중 노른자’란다. 그 중에 절대 거품이 없다고 장담하는 곳이 바로 해방촌이다. 몇 달새 평당 3~400만원이 올랐단다. 물론 투기는커녕 오르는 물가가 걱정인 이들에게는 딴나라 이야기지만.

    철거되는 해방촉의 가옥주는 379세대다. 이에 대한 이주대책으로 인근 후암동 지역 특별계획지구의 고밀도 개발을 통해 이주시킨다고 한다. 문제는 세입자다. 730세대의 세입자는 재건축 방식으로 개발되면 조합원과 세입자간 협의를 통해야 한다. 서울시는 여전히 세입자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방촌에 대해 정혜정은 『서울생활의 발견』에서 ‘서울의 나이테’라고 불렀다. 용산에 군사시설이 있었던 까닭에 모여 살았던 일본인 마을을 거쳐 해방 이후 남한으로 내려온 오갈 곳 없는 자들이 머리에 판자 하나 이고 살아온, 세월의 시간이 오롯이 남아있는 공간은 이제 사라질 예정이다. 살 부대끼며 살아온 근현대의 손때가 고스란히 잠자던 마을은 추억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여기에 녹지를 만들고 개발을 한다고 한다. 해방촌 허리를 잘라내고 나무를 심고 녹지 축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녹지축, 생태축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도심에서의 녹색공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이로움을 선사한다.

    북한산의 너구리가 먹거리를 찾아 성균관대학교에도 내려오고 종로로도 내려온다는데 그들도 도시에 살아가는 생명으로 살 공간이 필요할 것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런 방법인가. 세입자들의 주거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녹지를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살던 사람이 이리저리 걷어 채이는 형태라도 좋으니 녹색이 우선이라고 말한 적 없다.

    덩실덩실 춤춘 사람은 누구?

    청계천 ‘건설’계획이 발표 된 후 인근 부동산 가격은 올랐다. 오죽하면 서울시 부시장의 뇌물 수수 문제까지 터졌을까. 뚝섬에 숲이 생기고 인근 아파트 가격도 올랐다. 북서울 꿈의 숲이라는 드림랜드 인근 아파트 가격도 뛴다. 돈이 없으면 나무 많은 동네 인근에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환경 부정의가 생긴다. 쾌적하고 질 좋은 환경일수록 지불해야 하는 댓가가 크게 된다. 물좋고 공기좋고 전망좋은 펜트하우스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혜택을 누리는 자들은 우리가 아니다.

    여기에 과정에서의 원주민의 삶의 형태를 파괴하는 형태로라면 더더욱이 아니다. 환경재가 누구의 소유가 아닌 누구나 평등하고 동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환경정의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공염불이다.

    “우리 모두가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청계천 상인 때문이요, 희생을 감내했던 노점상 때문이요, 상인이나 노점상 이분들에게 저는 영원히 오랫동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께서 2005년 10월 1일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서 하신 말씀이다.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 일대를 노점상 절대 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경찰 4200여 명, 철거용역 2500여 명, 시구청 직원 1000여 명을 노점상 철거에 투입했다. 그리고 900여 명의 노점상은 난민수용소 같은 동대문 운동장으로 수용되었고, 다시 신설동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하루 몇천 원의 수입에도 아직까지 어떤 대책도 없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 사업을 진행하면서 4200여 차례나 노점상 상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설득하고 지지자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8000여 명을 동원해서 철거했는지 모르겠다.

    후암동 정비사업도 마찬가지다. 구역별 주민설명회는 3차례 열었지만 정작 철거되는 해방촌 주민들에게는 사업추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왜일까. 그들은 그곳의 부동산 투기할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아닐까. 주민 설명회는 부동산 투기 설명회와 다름없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그들에게 ‘녹색’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말하던 ‘환경미화’와 다르지 않다. 청계천 황학동의 곱창집, 잔술을 팔고 500원짜리 고기튀김과 까치담배를 팔던, 시간의 결계를 뚫은 듯한 끼걱대는 고물 카메라가 있던, ‘청계천 8가’의 노래 가사 그대로였던 공간은 이명박 시장님의 ‘녹색’ 분수대 건설 뒤로 사라졌다.

    녹두전 지짐이 냄새와 늘 그 자리에 있어왔을 것 같던 생선구이집이 있던 아기자기한 골목을, 살아 숨쉬는 피맛골을 그럴싸한 대리석으로 포장해야 한다고 믿는 이놈의 나라는 초가집 개량사업의 새마을 운동과 너무도 흡사하다. 한 마디로 수준 떨어진다.

    일류 시민만 살 수 있는 도시, 녹색 서울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녹지 계획이 아니다.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형태로의 녹지축 ‘건설’은 서울에는 1등 신민만 살게하겠다는 의지에의 표명이다. 뉴욕의 샌트럴파크가 부러운가? 공원 주변으로 즐비한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적어도 센트럴파크를 보전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부’라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서울시장 재임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도시의 교통체계를 저탄소형으로 바꾸고 청계천의 물길을 열고 숲과 공원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며 "’녹색서울’의 경험과 성과는 우리 대한민국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의 토대가 됐다"고 소개했다.

    ‘주민’이 ‘철거민’이 되게 하고, 세월의 손때는 지저분한 흉물이 되고, 곡선은 직선이 되어야 하는 계획은 폭력이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대통령이나 시장의 몫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녹색서울, 부동산 투기 광풍으로 한 해 평균 1000여 곳이 철거되는 서울, 일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고급 도시 녹색 서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녹색으로 뚫린다고 생태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 따위를 배우지 못한 대통령과 시장 때문에 여러모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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