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광대들의 슬픈 코미디는 그만
        2009년 05월 20일 08: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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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수록 점입가경이긴 한데, 갈수록 힘은 더 빠진다. 그들이 입을 벌릴수록 우리의 심증은 더욱 확실한 형상으로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황석영이 한 발언들과 그가 벌인 일들 가운데 놀라운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화들짝 놀란 척하는 진중권이 더 놀라운 지경이다. 작가 황석영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그의 ‘자유로운 주둥이’를 통해 조금씩 흘러나와 주변 사람들은 죄다 그의 내면을 알게 된 지 오래다.

    황석영과 노벨상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지난 수년 주목받았던 고은의 대외적 행보를 겨냥하며 “노벨상 캠페인은 그야말로 아이들 말로 쪽이 팔려서 벌린 적이 없다"며 신랄한 조롱을 날렸던 그가 지난 수년간 영국과 프랑스에 머물며 출판계 인사들을 접촉하고 다녔던 일은 그의 노벨상을 향한 포석이었음은 한국 출판계가 공유하는 정설이다.

    2007년, 파리에 머물다가 일시 귀국하여 손학규를 중도 주자로 내세운 대선 바람몰이에 김지하와 함께 나설 것을 천명하면서, 그는 세상을 바삐 휘젓고 다녔다. 그 때 문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오늘은 <중앙일보> 사주를 만났고, 얼마 전 <조선> <동아> 사주도 만났지. 한국문학의 발전, 아니 세계문학의 부흥을 위해 큰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유했지. 예컨대 노벨문학상 상금이 현재 100만달러인데, 당신들이 나서서 300만 달러의 상금을 주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프랑스의 르 끌레지오 같은 작가를 제1회 수상자로 하고, 나를 2회 수상자로 한다면 노벨문학상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권했지. 그러면서 나는 <조선> 사주에게 내가 이름 팔 일이 생기면 이제 글을 써주겠다고 했어."

    노벨상을 타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탈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이 이런 식으로 분출된 걸까. 세상에 그 어떤 제 정신 박힌 작가가 자신을 포함하여, 직접 수상자의 수상 순번을 거명하면서 언론에게 문학상 제정을 제안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상금을 노벨문학상의 3배로 늘이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이 된다는 발상을 그 누가 감히 할 수 있단 말인가. 김지하는 이 또한 작가적 상상력이며 바람같은 사내의 자유로움이라고 말할 것인가.

    자유로운 주둥이와 황구라

    그가 북에 갔을 때에도, 그는 김일성을 7차례에 걸쳐 만나면서 적잖은 돈을 요구했고, 결국 상당한 액수의 활동비를 북으로부터 받아낸 사실로 남에서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이 대목에서는 북에서조차 ‘자본주의 사회의 작가들은 다 저런가’ 하며 그의 돈에 대한 밝힘증에 진저리를 쳤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개성공단까지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북과의 관계에서의 난국에 처한 이명박이 황석영을 대북용 열쇠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어쩌면 현실은 이 점에서도 반대일 수 있다.

    통일에 대한 열망, 혹은 작가적 호기심이 그를 북에 가게 했을 수는 있지만,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신의 가문을 우상화하며 세습 독재권력을 구축한 김일성을 한반도의 영웅적 인물로 치켜세웠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진실성과 거리가 먼 황구라로서 존재할 뿐이다.

    김지하는 말한다. “작가·예술가들에게는 주둥이의 자유를 줘야 한다고.” 자유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고 누리는 것임을 그는 알 것이다.

    글쟁이들인 이 두 사내는 누구보다 더 폭넓은 ‘주둥이의 자유’를, 자유가 지나쳐 ‘주둥이의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자유의 색깔에 대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촌평 정도할 권리가 있다. 웃기는 건, 그들은 자유를 가졌으되 그들의 선택은 예술가도 뭣도 아닌, 속물들과 같은 방향이란 것이다.

    나그네의 발길 닿는 곳, 왜 계속 오른쪽일까

    “작가는 언제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자이며, 저의 장기는 바로 월경(越境)이기 때문에 행동자체가 논의의 출발” 이라고 황석영은 말했다.

    그들이 예술가의 자유, 월경이란 거창한 수식을 빌어 감행한 행동은 우리가 지난 세월 숱하게 보아왔던 (김문수, 이재오, 손학규 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행렬에의 동참일 뿐이다. 둔탁해져가는 그들의 눈빛은 일찌감치 정치권에 들어가 스타일을 구겨주고 있는 그들의 오랜 동지들을 닮아가고 있다.

    김지하는 그들의 이토록 방자한 자유에 대한 변명을 이렇게 늘어놓는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독재에 저항할 수밖에 없던 미션을 가졌던 예술가·작가의 굴레를 벗겨주고, 상상력의 자유를 줄 때가 됐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광범위하게 목격되는 이 현상. 이 자본의 독재는 정치, 군사적 독재와 그 형태를 다소 달리하여, 많은 어제의 전사들은 이제 무언가 극복되었다고 착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한심하긴 하지만 저항의 대상이라고 보진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용을 표방한 이 정부는 단지 효율을 향해 질주하는 경제적 독재를 행할 뿐 아니라, 상습 시위 참여자 2,500명을 색출하여 “우선 검거”하겠다는 대단히 부지런한 신공안정부이다.

    김지하는 말했다. 황석영은 나쁜 놈이 아니라고. 내가 그를 잘 안다고. 마치 자신은 신이고 그의 판단은 그 어떤 입증 논리도 필요없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듯. 진중권은 백치이며, 이문열의 작품 가운덴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도 했다.

    우리가 이문열의 노골적으로 추한 말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적어도 이문열의 초기 작품들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김지하야 말로 <오적> 이후 그 어떤 작품으로 시인이라는 자신의 공식 타이틀을 입증해왔는지 말해야 할 것이다.

    김지하의 생존방식

    꾸준히 책을 펴냈으나, 그의 글과 말은 시대를 꿰뚫지 못하고 겉돌았고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다. <조선일보>에 뜻밖의 말을 던지는 식으로만 그는 격렬하게 생존해 왔을 뿐이다.

    진중권이 이번 사건에서 좀 웃기긴 했으나, 그건 선배 김지하의 격한 발언에 잠시 꼬리를 내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이며, 황석영의 행보를 비판한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카피들을 제대로 뽑아냈다.

    한때는 격렬하게 증오의 대상으로 삼던 미국을 방문하며 김지하가 “미국 땅을 밟으니 만성 두통이 싹 사라졌다”며 그 나라에 헌사를 바친 행위는, “반미면 또 어떻습니까”라며 객기를 보여주던 후보 시절의 노무현이 미국을 공식 방문하여 조지 부시를 만나면서 미국과 형제가 된 것을 감격해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현상에 대한 파렴치한 아전인수격의 해석에서도 김지하와 황석영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그들은 손학규를 중도로 규정하더니, 이젠 이명박을 중도라고 말한다. 차마 그 말을 담지할 수 없었던 김지하는 황석영의 실언을 “중도이길 바라는 희망일 것”이라고 친절하게 해석까지 해준다.

    자신들과 말을 섞어주고 만나주면 다 중도로 보이는 걸까. 당내 경선에서 씨알만한 가능성도 안보이자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오기 직전까지 손학규는 “내가 곧 한나라당이다.”라며 호언해 왔던 사람이다.

    광주를 사태라고 불러서 구설을 불러왔던 이명박과 가까이 하면서 황석영은 급기야 광주를 사태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의 궁색한 해명은 “내가 곧 광주다”라는 손학규식의 과대망상적 문장을 카피하는 것에 머문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명박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의 진보 세력에 대한 가차없는 폄하에서도 둘은 닮아 있다. 지난해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 별>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독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오고 간 한 독자와 황석영 사이에 오고 간 대화이다.

    "선생님.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의 몫이라고 단테는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항상 서 계셨는데 이번 촛불집회를 보면서 작가 황석영이 아니라 이 땅의 개인 황석영으로서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이 대답했다. "이 땅에 진보가 어디 있나. 제대로 된 진보는 본 적이 없다. 촛불은 시위가 아니라 문화적 코드로 풀어야 하는데 그 뜻은 이미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그러니 이제 기다리고 지켜봐야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명박과 이야기를 하는데 잘 알고 있더라. 그러니 우리는 이제 눈을 멀리 돌려야 한다."

    그러고선 몽고에 식량기지를 만들고, 우랄 알타이 계열을 연방으로 묶어 우리가 맹주가 되자. 몽고는 뭐 거의 동의 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어쩌고….하는 이야기. 그 자가 이명박을 홀렸다는 그 이야기를 이미 그 때부터 독자들한테 설파했다.

    91년,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은 김지하의 생경한 꾸짖음 “죽음의 굿판을 멈추라”는 학생들을 죽음으로 모는 세력을 탓하지 않고, 죽음으로 저항하는 자들에 대해서만 엄중한 목소리를 가장 반동적인 언론을 통해 내질렀다는 면에서, 그의 말 자체가 크게 그르지 않음에도, 김지하 변절의 분기점으로 기록된다.

    그 후 대한민국 좌파에서 김지하는 낯선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촛불 정국에서 김지하는 그 동안의 피해의식을 모조리 쏟아내고 만다.

    외롭고 억울했던 김지하

    촛불정국이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 그는 좌파들이 촛불을 정권탈취를 위한 횃불로 만들려 한다고 분노하며, 프레시안 기고(직후 조선일보가 1면을 통해 보도했던)를 통해 이렇게 토로한다.

    “(좌파들)그들은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의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

    소설가 김훈이 아직 청년기자이던 75년, 그는 석방되는 김지하를 취재하려 영등포 교도소 앞에 언발을 녹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날의 표정을 김훈은 이렇게 묘사했다.

    “고은, 천승세, 조태일, 김광협 들이 목이 터져라고 만세를 불렀고, 학생들이 김지하를 무등 태워서 캄캄한 교도소 앞 광장을 미친 듯 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김지하는 그 때 무등 위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종신형을 받았다. 이제 풀려나니 세월이 미쳤는지 내가 미쳤는지 아니면 둘 다 미쳤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부패한 정권, 무능한 권력과 끝끝내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김지하가 무등을 타고 기세를 올린 후, 그의 지지자, 찬양자들의 무리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승용차에 올라타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지하는 외로웠고 두려웠고 억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석방될 때의 풍경을 보건데, 그는 자신의 진영으로부터 감옥에서 죽도록 사주된 자는 아니었다.

    황석영 또한 비슷한 원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음을 2007년 기고를 통해 토로한 바 있다. “나의 방북을 결정하고 지지해 주었던 벗들이 뒤늦게 제도 정치권에의 입문으로 뿔뿔히 흩어져 갔다. 나는 마치 헹가래를 받다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채 경기장에 불이 꺼지고, 선수와 관객들도 모두 사라진 어둠 속에 홀로 누워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했다.”

    김지하, 황석영 그리고 손학규

    헹가래를 받고 무등을 타던 그들은 그 아래로 내려왔고, 더 이상 영웅이 아닌 자신들. 땅에 내려온 그들은 이후 정치권으로 흡수되어 한 자리씩 차지하던 옛 동지들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위 생명사상에 대한 심취로 또 한세상을 건너왔던 김지하는 세계적인 생태운동가, 학자들을 불러 토론하는 ‘세계평화생명포럼’이란 걸 개최해 오기도 했다. 이 우아하고 어찌보면 호화로워 보이기까지 한 포럼이 4년간 개최되어 온 데에는 당시 경기도지사 손학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생태와 생명과 환경을 전 세계 석학들과 함께 논하는 가운데, 바로 옆에서는 그 이름도 낯뜨거운 한류우드(韓流-wood) 사업이 2조5천억 원이란 예산을 들여 진행되고 있었다. 한류스타들을 테마로 하고,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한 테마파크 조성이다.

    손학규 스스로가 작명했을 정도로 그의 정성과 야심이 담긴 이 사업은 그 명칭부터 적나라하게 식민지적이며, 이명박의 전매특허라고 알려져 온 맨땅 파서 경기부양하는 식의 건설 프로젝트였다.

    또한 배용준 거리, 최지우 동산으로 펼쳐지는 한류우드의 구상은 김지하, 황석영이 극찬한 손학규의 문화적 감수성의 수준이란 걸 제대로 보여준 바 있다. 손학규의 모순에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김지하는 그가 내미는 단물을 고맙게 받아 마신 바 있다.

    조선일보나 한나라당 말대로 소위 좌파정권이라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심하게 시달렸던 것 같다. 누군 정부의 지원으로 계속 노벨상 캠페인을 벌이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데 누군 자기돈 써가며 그 짓을 해야 했다. 누군 장관도하고 하다못해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라도 하는데, 목숨 바쳐가며 싸웠던 자신은 아예 판에 끼워주지도 않으니 그 심정이 참 억울했을 법도 하다.

    이명박 정권의 공적

    그나마 젊은 시절, 같이 연극을 하고 운동하던 옛 동지 가운데 한나라당의 탈을 썼을지언정, 그들과 여전히 교유하고 때론 재정적 지원도 해준 손학규가 상당히 멋져 보였던 것이고, 자신이랑 말을 섞고자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명박은 가짜 좌파정권보단 쓸 만하다고 기대들 하셨던 것 같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 황석영은 <어둠의 자식들>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실제 저자에 대한 자기 고백까지 해야 하는 궁지에 단단히 몰리셨다. 이 의심스런 두 작가들을 잔인하게 커밍아웃하게 해준 것까지 어쩌면 이명박 정권의 뜻하지 아니한 공적에 올라가게 될 듯하다.

    그러나 심사가 심하게 뒤틀린 두 늙은 광대들의 슬픈 코미디는 이제 이쯤에서 막을 내려주었으면 한다. 슬픔이 너무 무거워지면 우울로 번지고 인간에 대한 좌절로 확대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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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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