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의 치매가 슬프다"
        2009년 05월 19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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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에 있어서 대오각성은 오랜 수련의 결과 얻게 되는 숭고한 깨달음이지만, 정치에 있어서 대오각성은 변절자의 자기 변론, 즉 범죄자의 목청 높은 자기 정당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황석영은 다시 한 번 입증하여 주었다.

       
      ▲ 황광우

    흔히 말하는 변절자의 범주에 황씨를 넣어줄 경우, 변절은 세 가지 공통된 양상을 보여준다.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깨달음을 얻는 구도자의 모습’이요, 다른 하나는 "너희들은 다 틀렸다. 나를 따르라"는 ‘구원자적 확신’이요, 또 다른 하나는 ‘생을 정리하기 위한 팔순 노인의 치매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김문수와 신지호의 경우

    김문수도 그랬다. 평생을 노동자와 함께 살고, 공장 현장을 나의 무덤으로 삼겠다며 후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던 노동운동가가,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다 집어 치우고 한나라당 들어가는 게 살 길이라 떠들었다. 조용히 혼자 살 길 찾아가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지 않겠는데,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며, 오히려 훈계하는 것이다. "광우, 너,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

    신지호도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소련이 무너진 것이다. 당시 신지호는 볼세비키 혁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철의 규율을 자랑하는 지하운동가였나 보다. 일단의 무장한 노동자들을 앞세우고 청와대를 점령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을까. 그 혁명의 롤 모델이었던 레닌이 밧줄에 목을 묶인 채 헐리우고 있다. 지호는, 떨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신지호는 선언한다. "혁명은 환상이다."

    황석영의 행보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당혹케 하는 이유는 그의 행보가 갑작스럽다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문호가, 엊그제까지 현 정권을 좀비 정권이라 비난하던 그가, 왜, 어느 날 갑자기, 좀비의 옆에 나란히 서 있냐는 것이다. 황석영씨가 어느 날 갑자기 김일성 주석과 악수할 땐,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사연이 있겠지, 시청자들은 자못 진지했지만, 이번의 깜짝쇼엔 그런 진지함을 느낄 수 없다.

    지도자의 직업병

    변절하시는 분들이 보여주는 두 번째 공통된 특성은 “너희들은 틀렸다. 나를 따르라”는 지독한 독선이다. 지금 황석영은 자못 진지하다. ‘민주 대 독재’의 구도가 한물간 구도이듯, ‘보수 대 진보’의 구도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흑백이분법으로 세상을 볼 것이냐는 그의 힐책이 생생하게 들린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의 중도통합론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의 혀에 있지 않고, 그의 발에 있다.

    나는 황석영의 변절에서 우리의 내부에도 반성할 게 있지 않나, 돌아보았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특정 영역에서 나름의 지도자, 혹은 전문가가 된다. 조선소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면 노동자들이 근골격계통의 질병을 얻듯, 지도자가 되어 존경받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면, ‘너희들은 다 틀렸어. 나 아니면 안 돼’라는 독선을 일종의 직업병으로 얻나 보다. 지난 10년간 민주노동당의 발걸음을 회고해 보더라도, 몇몇 지도자들의 구세주적 언행에서 사람들은 다 이 지도자병을 확인했을 것이다.

    김문수의 변절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함께 운동하는 김근태가 앞장 서 김문수를 죽이려드는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 길은, 한나라당에 있었다. 잘 갔다. 신지호의 변절은 희극적이었다. 지가 무슨 혁명운동가였다고. ‘잘못 길을 들어선 한 파시스트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 흔들어댄 깜작쇼’였었지.

    한나라당의 늙은 파시스트들이 젊은 신지호를 얼마나 귀여워하겠는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황석영의 변절은 김문수의 애절한 맛도 없고, 신지호의 배꼽 잡는 재미도 없다. 그냥 슬프다. 어쩌다 사람이 이렇게 망가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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