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으로 달려오시라! 누구든지!”
        2009년 05월 19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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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쥐>라는 영화가 개봉되었고, 이번 주에 우체부 아저씨가 던져놓고 간 <씨네21> 703호를 보니, 「<박쥐>를 보는 세 가지 시선」이라는 특집기사도 실렸다.

    그런데, 화장실에 앉아 이 제목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요새 초딩들 사이에 유행하는 줄임말이 머리에 떠올랐고, 혹시 ‘박쥐’라는 영화제목은 실은 ‘박=쥐’, 즉 ‘이명박은 쥐 같으신 *(분)’의 줄임말이 아닐까, 진보적 성향의 영화감독 박씨는 작년 내내 촛불시위를 통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외쳤던 메시지를 한 단어로 명쾌하게 집약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불경스런 생각이 들어 혼자 킥킥거렸다.

    음, 조심해야 한다. ‘저런 행동이 죄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해도 기어이 재판에 회부해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대한민국 검찰이라면 또 국가원수 모독죄나 명예훼손죄 어쩌면서 들이댈지도 모르는 일이라… 손사래 치며, 저는 아녜요, <박=쥐>라는 영화 제가 안 만들었당게요.

       
      ▲ 필자(맨 오른쪽)

    그러나 세상 일은 참 복잡하다. 지금은 MB씨가 맘에 안 든다고 쪼개고 있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이명박씨와 내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떻게 하면 쫌 더 생태주의적으루다가 사는 것처럼 보여 볼까 고민하느라 머리를 쥐어뜯고 사는 나야 여전히 녹색 쪽 언저리에 있을 듯 헌데, MB씨 역시 본인 스스로 퇴임 후에 아 글쎄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선언하시지 않았나.

    MB와 영산강가에서 깡소주 까다가…

    머 꼭 전에 대통령질 해먹던 사람은 환경운동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 어쩌면 영산강가에 나란히 앉아 4대강 정비사업을 막아내자고(혹은 콘크리트 다시 파내자고?) 밤새 깡소주를 들이부으며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게 될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될 텐데. 술김에 나도 모르게 이게 다 잘난 너 때문이라고 그 냥반 면상이라도 칠 것 같으면 큰 일이지 않겠는가.

    이번에 나온 <녹색평론>을 읽어 보니, 장성익 계간 <환경과 생명> 주간께서 「녹색성장에 침을 뱉으마」라는 글을 쓰셨는데, MB씨가 보통 분은 아닌 것이,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엄청시리 많은 ‘녹색’ 일들을 추진하시었다.

    “…도시의 마지막 녹색보루인 그린벨트 해제, 환경파괴는 물론 지역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권 규제완화, 환경영향평가 간소화를 비롯한 각종 환경규제 완화, 건설경기 활성화와 1퍼센트의 극소수 상위계층만을 위한 부동산규제 전면철폐, 토목공사 위주의 광역경제권 구상, 새만금지역의 산업용도 중심으로의 개발, 거짓과 무리수로 점철된 경인운하사업의 일방적 강행, 명목은 ‘살리기’이지만 실질은 ‘죽이기’에 불과한 4대강 하천정비사업 계획 따위…”

    “…경제위기를 극복한답시고 내놓는 조치들은 또 어떤가. 예컨대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집중되는 재정투자 확대, 종합부동산세의 실질적 폐지 등이 상징하는 부자 위주의 대규모 감세,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 및 법인세 인하 등과 같은 재벌 중심의 기업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특혜부여 등을 보라….

    최근 들어 논란 속에 추진되고 있는 다주택자 양도세의 중과세 폐지, 서울 강남3구의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 재건축시 소형주택 건축의무비율 완화 등은 경기부양 차원을 넘어 아예 ‘투기 촉진책’이라 불러야 마땅한 것들…”

    그렇다, 답답허다. 헌법 제1조가 바뀌려나. ‘대한민국은 토목공화국이다’로? 내가 살고 있는 구례에서도, 읍내라고 해 봐야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기껏해야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군소재지인 이 곳에서도 몇몇 지리산권 사람들의 이른바 ‘MB씨 씹어 자빠트리기’가 가끔 벌어진다.

    4대강 정비사업에 섬진강을 끼워주기로 결정나면서 더욱 그렇다. 지리산 숲길사업 예산을 95% 삭감하겠노라는 MB정부의 방침에 열받은 데서부터 슬슬 시동이 걸린 사람들은 저마다 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사자후처럼 토해냈다.

    지역구 출신 서울시의원 102명 전원이 한나라당

    그의 건설회사 시절부터 시작해서, 여자를 고르는 법 어쩌고 하는 말실수들까지 차례차례 짚어 가다가, 급기야는 지난 대선 때 그를 찍은 손가락들을 어떻게 해부러야 된다는 둥.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충분히 공감하는 얘기들이지만, 뭔가 허전해서 질문을 하나 던졌었다. 서울시의 시의원이 비례대표 4명 빼면 102명인데, 이 사람들 정당별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냐는 것.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습게도 102명 전원이 한나라당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구청장도, 서울시장도 역시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어머, 진짜? 묻지 마시라. 사실이니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고 물으신다면, 오늘 대통령인 MB씨는 중국도, 베트남도, 일본도 아닌 바로 이 나라 국민들이, 그를 욕하는 우리들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는 거다. 꼭 한나라당이라서가 아니다. 시장, 구청장 전원, 시의원 전원을 특정 정당으로 몰아 뽑아 놓구서 ‘본질상 세력대결’인 정치가 얼마나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니겠는가.

    물론, 나는 진짜 안 찍었어, 임마아~ 하시는 분은 빼 드리겠다. 현대 대의정치의 허점들을 논하는 것도 여기서는 논외다. 요지는, 누구 탓하지 말자는 거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힌트 정도는 나오지 않겠나 싶다.

    예를 들면, 뭐 주식이나 펀드가 오른다더라 하면 없는 살림에 신문 경제란 기웃거려 보고(통큰 분들은 한 10주 정도 사 본다든가), 내 아이만큼은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환경에서 키워보려 은근히 입시에 강하다는 학원정보도 알아보고, 개똥이도 소똥이도 다 학원 간다니 뭐 잘 모르겠지만 ‘내 새끼만 안 보낼 수 없잖아’ 일단 보내 보고, 우리 동네 뉴타운은 어찌 되어 가는지 귀를 쫑긋하거나, 내 아파트값, 자동차값, 몸값 조금이라도 올려보려고 아등바등 애쓰시지는 않았는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적절한 비유처럼,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그에 기반한 평화로운 사회적 합의보다 서로 물어뜯고 죽여야 사는 ‘동물의 왕국’의 룰이 우선적으로 적용(동물들은 결코 인간처럼 탐욕스럽지 아니하지만)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살자니 할 수 없이 강요되는 측면이 크다 해도, 내가 너를 쬐끔만 이겨보고 싶다는 경쟁주의,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럭저럭 잘 먹고 윤택하게 살 수도 있겠다라는 희석된 성장주의에 은근히 한 발 올려놓은 적은 없으신가.

    그러는 너는 짜샤, 얼마나 잘 났냐? 그런 적 없냐? 고 물으신다면, 당근 있었다고 말씀드린다. 수없이 많다. 지난 주에도 로또 오천 원어치 긁었었다.

    저도 지난주에 로또 긁었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정치권력이 무언가 이건 아닌데 삐뚤어져 간다고 생각하신다면, 우리 스스로 역시 방조범은 아니었는지, 우리 안의 성장주의가 소수의 부유층과 기득권세력을 위한 법제도와 정책에 조금씩 박자를 맞추지는 않았었는지, 나이 들어가면서 공부나 사색과는 담 쌓은 지 오래, 20년 전에 가졌던 생각에서 한 치도 진보하지 못한 채 관행과 타성에 젖어 ‘에라~ 모르겠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눈과 마음이 녹슬고 무뎌지는 것도 묵인하거나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근본적인 지점부터 다시 찬찬히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말씀드리는 거다.

    오늘 오체투지로 자벌레가 되어 서울땅에 들어가신 수경스님도 말씀하시지 않는가.

    “자본주의가 득세한 이 세상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자양분으로 굴러갑니다. 사람다운 삶, 함께하는 삶을 위한 ‘공분’은, 나도 악착같이 벌어서 저들처럼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뒤집힙니다. 국민 모두를 부자 만들어 주겠다는, 품위라고는 찾아볼 데 없는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을 우리 스스로 준비한 것입니다. … 오로지 돈, 돈, 돈을 외치면서 우리 스스로 사람다운 삶을 내팽개쳤습니다. … 그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가. 본론을 말씀드려야겠다.

    ‘지리산 초록배움터’라는 곳이 5월 23일(토) 오후2시에 문을 연다. 춘향과 이도령의 외설스런(!) 사랑이 넘쳤던 남원 땅에서. 일단, 대안에너지 교육센터로 출발한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자전거발전, 태양열조리, 바이오 가스 등 친환경 대안에너지의 원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일단’이라고 한 것은, 이 곳이 다른 모습으로 조금 더 진화할 가능성을 초록배움터의 추진위원들 모두가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 대안에너지만으로는, 녹색만으로는, 적색을 제외하고는, 이 두 가지 영역의 조화로운 융합 없이는 바람직한 대안사회에의 유의미한 꿈을 꾸기가 대단히 벅차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는가.

    일단 대안에너지부터 시작, 그 다음은?

    그러나 역으로, 녹색도 제대로 못하면 안 될 일이다. 일단 초록으로 시작하되, 지역과 농업, 교육문제 등으로 텃밭을 넓혀 갈 것이라는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오시라! 뭐, 녹색으로부터 시작될 작지만 의미있는 실험의 현장에 굳이 안 오셔도 참을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기름 때워 가면서 지구 온난화를 부추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내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만 하는 부모라면, 식구들 먹거리 문제로 고민하다가 주름살 늘어간다고 울상인 분이라면, 우리네 인간들의 화석연료 사용과 이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나는 탓에 해마다 25,000마리의 북극곰이 익사하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나는 분이라면, 지역이라는 화두

    – 예를 들면, 비정규 노동자의 지역조합으로의 조직화 구상 등에 관심이 있는 활동가라면, 진보정당이 잘 되기 위해서는 환경투쟁의 현장에서 100명이 구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장비 같은 분이라면, 농사짓는 일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노동자라면, 환경문제와 생태주의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시리 몸과 마음이 살포시 땡겨서 자다가도 죽비처럼 뒷머리를 때리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오시라. 배움터의 들꽃들이 환영할 것이다.

    다만, 와서 말씀들 주시라. 생각의 끝자락들 조금씩 남겨두고 가시라. 첫 술에 배 부르겠는가마는, 어쩌면 배움터의 개교식은 우리들 가슴 속에 막 상추싹처럼 터오기 시작한 생태주의에의 관심과 그 크기를 허허로이 내보이면서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하는,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아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우리의 녹색담론구조의 활성화에 샘물처럼 목을 축여줄 작은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촉촉히 내리는 늦봄 빗속에서, ‘지리산 초록배움터’는 그렇게 여러 동지들과 함께 복닥거릴 풍성한 세월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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