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보수-진보로 분당하라"
        2009년 05월 18일 0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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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이 뉴민주당플랜 초안을 발표하였다. 당내 토론에 들어간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집안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집안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마을 전체를 다시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기에 한 마디 아니할 수 없다.

    뉴민주당플랜 초안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잘못된 길을 걸어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사진=마들연구소)

    2007년 12월 대선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에게 패배하였다. 그냥 패배한 것이 아니라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실시된 대통령선거 중에서 1위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차(580만표)로 대패한 2위가 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역사적 참패’

    게다가 이 1위 후보가 1987년 이후의 대선에서 1위를 한 후보 중에 전체 유권자 대비 가장 적게 득표한 후보라는 점까지 감안할 때 ‘역사적인 참패’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진보정당 역시 이 선거에서 참패를 했으며 근본적인 혁신없이 한발자국도 나아가기 힘들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참패는 정동영 후보의 잘못이 아니다. 노무현 전대통령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도 아니다. 1998년 이래 10년간 정권을 담당한 민주당 노선에 대한 국민적 평가라 보아야 한다.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가?

    이 10년 동안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부족하나마 진전을 보았다. 남북관계는 획기적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폄하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역사는 이 10년 동안 이뤄진 정치적 성과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줄 것을 믿는다.

    문제는 경제였다. 특히 서민경제의 파탄이었다. 한국의 노동자, 서민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강요받고 있지만 이들의 소득은 상위계층과의 격차가 해마다 늘어나는 사회양극화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민주당 정권이 10년 동안 한 일

    민주당 10년 동안 비정규직노동자는 두 배로 늘어났다. 정부예산으로 월급을 주는 폴리텍대학의 비정규직교사들이 정규직 교사 월급의 48%밖에 받지 못하는 비인간적 차별을 시정하지 않고 방치한 것도 민주당 정권이었다.

    약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강자 위주의 노동시장정책을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명분 아래 강행한 것도 김영삼 정부의 노동시장정책을 계승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니었는가? 선거 때마다 왼손으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오른 손으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없애온 것이 민주당 정부 아니었나?

    무분별한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으로 국가적 차원의 일자리 시스템 붕괴가 일어나자 풍선효과처럼 자영업자가 급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제 한국의 자영업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면서 OECD 평균의 2~3배, 미국의 6배 이상이라는 위험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에서 신장개업한 음식점의 70%가 일년 이내에 폐업신고를 하고 있는 것처럼 자영업이 한국 중산층 붕괴의 일선 현장이 되어버린 것도 민주당 10년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특히 순금융자산이 백만불 이상 되는 백만장자 증가율이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세계 1위에서 7위 사이를 기록하는 동안 이 나라는 애를 낳고 기르기가 가장 힘든 나라, 노인이 생활고로 가장 많이 자살하는 부끄러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정부 하에서, 가장 서민적으로 보이는 대통령을 선출하고서도 한국의 가난한 국민들이 받은 선물은 부자를 위한 희생과 고통전담이었다.

    대국민 사과와 역사적 단절부터 하라

    민주당이 진정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는 새 길을 걷겠다면 서민경제파탄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과거 노선에 대한 철저한 단절을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 양산을 포함한 일자리 파탄정책, 부와 가난이 세습되게 한 교육양극화정책, 경제주권을 반납한 한미FTA 추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불행히도 뉴민주당플랜에서 고백하는 반성에서 우리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합리화와 현실에 대한 호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도예정 수표만을 발견할 뿐이다. 이것이 뉴민주당플랜의 실체라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잘못의 반복’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뉴민주당플랜은 그래서 깜박이를 모두 끄고 우회전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좌파 신자유주의를 추진하였다면 뉴민주당플랜은 중도 신자유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우파 신자유주의인 한나라당에 한 발 다가서는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국산 쥐약이든, 일본 쥐약이든 미국쥐약이든 성능의 차이가 있을 뿐 쥐약이긴 매한가지 아닌가?

    더욱 가관인 것은 중도 신자유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보수와 진보의 낡은 이분법’을 뛰어넘겠다고 하는 점이다. 우리는 묻는다. 귀당이 언제 ‘진보’였던 적이 있었냐고. 이른바 제 3의 길이라 하여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서유럽국가들조차도 용인하지 않는 비정규직에 대한 심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며 수용한 것이 민주당 10년이었다.

    짝퉁 진보를 팔아 제끼면서 진품까지 의심받게 만든 것도 노무현 시대의 일이었다. 진품 진보가 그렇게 주장한 ‘기회의 균등’을 훼손시킨 당사자들이 반성은 커녕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낡은 진보를 넘어서겠다’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귀당이 언제 ‘진보’였던가?"

    뉴민주당플랜 초안대로 민주당이 나아가겠다면 차라리 민주당은 둘로 쪼개지는 게 국민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기본노선으로 하는 세력은 한나라당과의 보수대연합으로,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일자리, 교육, 의료 주택문제에서 서민 중심의 복지를 강화하려는 세력은 진보대연합에 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차피 민주당을 정치적으로 존립 가능하게 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는 역사적 시효가 소멸되었다. 지역주의로 회귀하여 목숨을 부지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진보와 보수라는 새시대의 경쟁구도 앞에서 자신을 분할하는 것이 옳다.

    한나라당은 이미 독재라는 문신을 지우고 ‘국민을 먹여 살릴지도 모르는 보수’로 성형수술을 마쳤다. 이런 ‘보수’ 앞에서 민주당의 ‘민주’는 국민들에게 철지난 낡은 프레임의 산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MB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이 절대 다수인데도 왜 반MB연합에 국민들이 감동하지 않는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격이 애매모호한 반MB연합은 국민들에게 철지난 반독재연합을 연상시킬 뿐이다. 시대와 국민은 제대로 된 진보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뼈를 깎는 자성을 하면서 거듭나야 하고, 정체불명의 민주당은 이질적인 정체성을 분별정립으로 해결해야 한다.

    1차선이든 2차선이든 도로에선 차선을 지켜야 한다. 중도랍시고 두 개 차선을 걸치고 운행하다가 사고 난 차 한 대 때문에 도로가 몇 km씩 정체되는 경우가 바로 오늘 한국 정당정치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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