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 '광주=영국 발언' 사실과 달라
        2009년 05월 18일 0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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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나가서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1970년대 영국 대처 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고, 큰 틀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유라시아 문화 특임대사’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중앙일보> 15일자) 소설가 황석영씨가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수행 중, 광주 민주화항쟁을 언급하며 빗댄 ‘영국 대처정부의 시위진압’ 부분이다. 그런데 황씨가 언급한 이 같은 사실이 잘못된 정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가 1970년 대 대처정부를 지목한 것은 1979년, 공공부문 파업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마가렛 대처는 79년 5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에 취임해 파업을 불법화하고 공격적 시위진압을 시작했다.

    대처는 이후 1984년 생산성 없는 탄광 20개를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전국광산노동조합(NUM)이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당시 파업은 노조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행되어 ‘비민주적’이란 공격을 받았으며, 이에 대처정부는 노조를 봉쇄하고 강경진압에 나섰다.

    중요한 것은 “대처정부가 시위군중에 대해 발포했다”는 황씨의 발언이다. 결론적으로 대처 정부는 발포를 한 적이 없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과 시위대 내부의 갈등, 사고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에 의한 시민에 대한 발포’라는 충격적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황씨는 부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인용함으로서 정부가 자국민을 총으로 사살하는, 비극적인 광주민주화항쟁을 일종의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폄하해 버린 셈이다.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며 사회가 커나간다"는 그의 발언은 ‘인명 경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장석준 진보신당 미래상상 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10여 명의 사상자가 나긴 했지만, 그 중에서 경찰 발포로 죽은 사람은 없다”며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과정에서 돌에 맞아 숨지거나 아이들이 파업 중인 광산 작업장 주위에서 사고로 죽은 경우들로, 발포로 누군가 죽었다면 더 큰 일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이어 황씨의 발언에 대해 "기본적으로 인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영국이라고, 프랑스라고 해서 쉽게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기가 잘 모르는 사실을 너무 무책임하게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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