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귀하게 만드는 건 노벨상 아니다
        2009년 05월 18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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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남조선의 임금님과 같은 가마를 타시고 먼 실크로드 나라 군주를 방문하는 길에 동행한 황석영 작가 ‘해프닝’을 보면서, 좀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삼포 가는 길>을 읽은 뒤로 저는 황석영을 좀 사랑했습니다. 작가로서, 지식인으로서…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중에 한국학 교수 생활하면서 <무기의 그늘>을 갖고 월남 파병 관련 수업도 하고 그랬습니다. 한국 문인 중에서 숭미주의를 극복하여 월남인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먼저 노력을 하고 가장 많은 성과를 일찍 얻은 분이 바로 황석영 선생이라는 말을 늘 해왔습니다.

    하여간 오랫동안 ‘황석영의 팬’이었던 저는, 이제는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기의 그늘>을 갖고 수업하면서 "세월이란 신들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더욱더 사람보다 세월이란 강하다. 세월은 월남도 바꾸고 황석영도 바꾸었다"고 이야기하면 되겠나요?

    이제 황석영 선생님은 조정 중신의 귀하신 몸이 되신지라 저로서 접근하기가 쉽지도 않겠지만 혹시나 어디에서든지 만나뵙게 된다면 그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일 없이 가출해서 머나먼 철도역에서 죽은 톨스토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생활하면서 소련 정부의 외교적 노력 끝에 노벨상을 따낸 숄로코브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가요?

    답이야 명확하지요. "죽이지 말라"고 외치면서 죽은 톨스토이와, 반정부 재야가 된 동료 작가 시냐브스키를 보고 "저런 인민의 적을 1920년대에 붙잡았으면 즉결심판해서 황천에 보냈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던 말년의 숄로코브를, 아예 비교하기조차 힘들 지경입니다.

    작가를 귀하게 만드는 게 노벨상은 아니고, ‘지구’라는 이름의 정신병원에서 얼마만큼 정신 멀쩡한 사람의 노릇을 해냈는가, 미쳐버린 지 오래된 인류를 약간이라도 ‘치료’해줄 수 있었는가라는 부분이지요.

    톨스토이와 숄로코브 

    황석영 선생은 특히 1970~80년대의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치료’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바 이미 있으니 굳이 세상의 그 어떤 상에도 욕심내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방면에서의 한국 정보의 ‘노력’은 잘못되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을 저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하여간 이 일을 계기로 하여 하나쯤을 배웁시다. ‘양심적 지식인’이란 사실 이 세상에서 기린 같은 신수보다 더 드문 존재라는 부분을. 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식인이란 결국 자신의 교환가치(지명도)를 늘 높이도록 노력해야 하고, 자신을 부단히 ‘팔아야’ 하는 일개 ‘지식 장사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술인’ 부류의 지식인 – 예컨대 정부 연구 기관의 연구원이나 이공계 교수들 등 – 이 물론 ‘관료’나 ‘사업가’ 타이프에 더 가까울 수도 있지만, 문인이나 인문계 명망가는 확실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갖고 ‘자영업’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 세계 밖에 있는 분들은 짐작 정도 하겠지만, 이 자영업자 삶의 ‘속’이란 어디까지나 ‘책 판매 부수’와 ‘인기도’, 그리고 (최고의 스펀서가 될 수 있는) 정부와의 ‘관계 관리’를 그 핵심로 합니다. 물론 시작을 할 때에 ‘양심’으로 시작하는 경우들도 많겠지만, 그것이야 재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김성수와 김연수가 <동아일보>와 경방을 시작했을 때에 민족주의적 동기 등이 전혀 없었겠어요?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면 그 사업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을 받게 돼 있으니 달라집니다. 경방 여공들이 파업할 때에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일본 경찰을 부르는 ‘민족기업’의 추태를 보게 되지요. 그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일 뿐입니다…

    하여간, 나중에 지금 저와 같은 심경을 경험하지 않으시려면, 부디 (저를 포함한) 글쟁이들을 과신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본주의 세계의 글쟁이가 제대로 된 인간 노릇을 하는 게 – 톨스토이 경우처럼 – ‘보편’보다는 ‘예외’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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