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텍스트
    작품엔 경의를, 작가에겐 야유를
        2009년 05월 18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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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구, 조세희, 황석영

    황석영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문학사에서 그의 존재감은 묵직했다.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때에,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곤 했다. “작가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면, 누가 그 대상작가일 수 있을까?” 그 때 내 뇌리에 떠오른 작가는 이문구, 조세희, 황석영이었다.

       
      

    이들은 1960~70년대에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었고, 존경받던 지식인 작가였다. 나는 요즈음에도 작고한 이문구 선생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억압적 근대화시기에 농촌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하게 ‘다른 근대’를 상상했던 이문구 선생의 도도함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더욱 돋보이게 느껴진다.

    이문구 선생의 『우리동네』는 촛불집회 이후 ‘농촌과 생명’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성찰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근대산업화시기에 ‘농본주의’를 외친 이문구의 모습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보수주의’로 내비췄을 수 있지만, 내게는 ‘근본주의자’의 면모로 읽혔다.

    조세희 선생은 어떠한가? 최근 용산참사에 당혹스러워하면서,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읽었다. 1970년대나 2000년대나 도시공간의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가권력의 폭력은 어찌 이리 변화 없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난쏘공』은 한국의 도시공간에서 반복되는 재개발의 폭력을 그 뿌리에서부터 성찰하게 한다. 조세희 선생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위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진 적도 있었다. 조세희 선생은 더 이상 작품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몸으로, 삶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서사화하고 있지 않은가? 조세희 선생은 삶의 현장에 서서 여전히 짓밟히고, 싸우고, 그리고 다른 세상을 희망하는 민중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황석영의 옛 작품에 경의를 표한다. 「객지」에서 동혁이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라고 외쳤을 때, 도도한 대결의식에 매료되었었고, 「한씨연대기」에서 절절히 펼쳐 보인 한영덕의 파란만장한 삶에 가슴 아파했다. 어디 그뿐이랴. 『무기의 그늘』에서는 문학언어가 어떻게 금기를 넘어 ‘역사의 속살’을 헤집는가를 충격적으로 깨닫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무기의 그늘』에 그려진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그 시대와 연관해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논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그간 황석영의 작품을 충실히 따라 읽어온 문학연구자이며, 2000년대 이후에는 『손님』가 『바리데기』에 대해 분단문학이라는 적극적으로 의미부여를 하고, 『심청』과 『개밥바리별』에 나타난 대중성에 대한 강박에 대해 비판했던 현장 평론가이다.

    그래서 그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으로 규정한 일련의 행보가 ‘실연의 아픔’처럼 아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황석영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부르지 못할 것 같다.

    황석영의 내면세계와 불안의 징후들

    작가는 작품으로 세계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존재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과거의 성취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문학적 명성의 낙수(落穗)만을 수확할 뿐이다. 이는 모든 글쓰는 이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 어떤 작가가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개척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모든 작가는 노년을 맞이하게 마련이며, 그 시기가 되면 세계 속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자세를 터득하게 된다.

    독자들도 한 때 존경했던 작가에게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기보다는 ‘삶의 지혜’를 얻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겸손해지고, 몸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자적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황석영은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듯하다. 그는 오히려 최근에 일종의 ‘사회적 노출증’이 도드라져 당혹스럽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개그본능’을 표출하는가 하면, 갑작스럽게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해 충격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민심을 자극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규정했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고언을 드리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 논리적 근거로 그가 제시한 것이 “현 정부를 씹더라도 나라는 잘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발언의 이면에는 ‘자신의 참여로 나라가 잘 될 수 있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태도는 어디로부터 연원한 것일까?

    황석영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간간히 내뱉는 ‘불안의 징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2008년 9월, ‘이제 그만 촛불을 꺼야 한다’면서 “헌정질서 거부하고 박살내면 군인 나올 명분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군부의 무력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 자신이 나선 것이라고도 했다.

    젊은 얘들은 한국의 군사력이 50만이나 되고, 그것도 서울 지척에 그 군사력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군부가 등장하는 순간 그간의 민주주의적 성취들이 한꺼번에 무화된다는 그 나름의 불안의식이 촛불시위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이데올로기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을 군부와 연결시킨 그의 내면에는, 1980년 서울의 봄과 전두환의 등장을 연상한 것이다. 근 30여년 전의 사건이 그의 의식 속에서 절대화된 영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불안의식이 그의 발언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규정하고, 실질적으로 정권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이면에는 어떤 불안의식이 자리하고 있을까. 그의 불안의식이 가 닿은 지점은 남북관계의 악화로 인해 한반도 내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그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호명한 것은 국내정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대북정책’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대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임기 내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남북대립이 고착화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순방에 동참하게” 된 것도 “대북정책을 돕겠다”는 의지에서라고 밝혔다.

       
      ▲ 중앙아시아 순방 중 사마르칸트 역사 유적을 시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황석영씨 (사진=청와대)

    소명의식인가, 과대망상인가

    실제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한반도에서 불안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을 타개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이 이뤄져야 하고, 현재에도 민중운동 진영과 시민운동 진영, 그리고 지식인 사회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실천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6․15 남북 공동선언의 합의를 이명박 정부에 환기시키면서 대화와 협력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남북 대결국면은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면서 형성되었다.

    PSI 참여방침 발표와 같은 대북 압박 정책을 과잉되게 펼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개성공단 마저 좌초 위기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도 황석영은 이명박 정부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쇄락해도 정치적 상상력은 무성한 풀처럼 자라나보다.

    이른바 ‘몽골+투코리아’ 구상이라는 것을 통해 유사제국주의적 발상을 펼쳐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무기의 그늘』에서 성숙한 자세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파악해냈던 젊은 시절의 황석영은 사라지고, 국가주의적 발상으로 무장한 유사제국주의자 황석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낯설고 안타깝기만 하다.

    이러한 황석영의 인식 이면에도 자신의 역사적 경험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징후로 읽으려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89년 방북 이후 남과 북을 아우르는, 혹은 남과 북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작가로 자처해왔다.

    이러한 과장된 자아의식이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설사, 그의 구상이나 의도에 진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정치권력에 알리바이를 제공한 그의 거래는 부당하다.

    그는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호명했고, 용산참사를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라고 보았으며, ‘촛불집회’ 또한 ‘꼬인 일’ 정도로 취급했다. 그는 민주주의적 질서를 억압하는 이명박 정부를 감싸면서 그래도 “나라는 잘돼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적 요구를 억압했던,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려내는 발언이다.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국가는, 민주적 질서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황석영은 이명박 정부의 비민주적, 반민중적 행태를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의 아집과 루쉰의 고집

    현재 황석영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세계를 규정하고,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의 발언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의 내면세계가 어떤 강박증 속에 파묻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옳다는 강박적 태도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가 한국의 좌파에게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러한 조증(躁症)의 징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게 일관된 논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는 이미 자신의 세계에 갇힌 ‘아집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다.

    황석영의 이번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그는 현존하는 작가가 아닌, 문학사 속의 과거에 존재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여전히 경의를 표하자. 하지만 그의 현재에는 야유를 보내자. 그리고 그의 발언의 의미를 깃털처럼 가볍게 날려버리자.

    중국의 혁명적 문학가 루쉰(魯迅)은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라는 글에서 “만일 젊은 후진들이 정말 사닥다리를 밟고 더 높이 오를 수만 있다면 우리들이야 밟히운들 원한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루쉰은 “중국에서 사닥다리가 될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사실 몇 명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절박한 말을 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의견과 젊은이들의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때에는 기꺼이 자신의 의견을 되돌아보며 젋은이들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석영은 젊은이들을 철부지들로 간주하고, 자신의 판단이 올바르다고 강변한다. 심지어는 스스로 권력에 굴종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청년들의 정치적 건강성을 짓밟고 위로 오르려는 강박증적 태도마저 내비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곁자리를 내주려고 했던 루쉰의 고집은 자신만이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황석영의 아집과 대비된다. 황석영에게서 루쉰의 겸허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래도, 자신이 뒷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정도의 현명함 정도는 여전히 그에게 기대하고 싶다.

    황석영이 부재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세계는 존재할 것이므로, 늦게나마 그에게 조용한 은둔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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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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