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소거' 처리된 노동자 목소리
    By 나난
        2009년 05월 14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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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삭감과 정리해고 등 경제위기로 노동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소음과 질서유지를 이유로 비정규장기투쟁사업장의 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나섰다.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이 땅에 노동자 목소리 낼 땅이 한 평도 없다”며 집회 시위 자유를 요구했다.

    14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진보신당,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 비정규없는세상은 서울 경찰청 앞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당국의 초헌법적 공권력 남용을 규탄하며 경찰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폭력적으로 말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최근 경찰청장 주재 경찰서장 연석회의에서 장기투쟁 사업장에 대한 대책이 논의되며 이른바 ‘문제 있는 사업장’들에 대한 집회 불허와 농성장 철거 방침이 내려진 것과 관련,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강희락 경찰청장이 직접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경찰서장 연석회의, ‘문제 사업장 집회 불허, 농성장 철거’

    또 이들은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모든 기본권이 압살당하고 있다”며 “경찰은 권력에 도전하는 일체의 행위를 법의 이름으로 짓밟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4월 동희오토 이백윤 지회장과 박태수 조직부장이 이미 수사가 종결된 사건을 빌미로 구속된 것과 그 과정에서 7~8명의 경찰로부터 폭행과 인권유린을 당한 사실을 지적하며 “검찰과 경찰이 권력의 주구로 전락하여 장기투쟁 노동자들의 투쟁 자체를 말살하려 한다”며 비정상적인 기소와 구속에 대해 규탄했다.

       
      ▲ 14일 진행된 비정규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집회 시위 자유와 노동자 생존권 말살하는 경찰당국 규탄 기자회견’.(사진=이은영 기자)

    3년에서 5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투쟁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 그 자체다. 그들에게 집회와 시위란 자신들의 처절한 요구를 세상에 전하는 최소한의 통로이며, 수단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 경찰은 노동자들의 집회와 시위에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보이며 농성장 침탈은 물론 기본권마저 박탈하는 일을 빈번히 자행하고 있다.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 탄압은 최근 500여 일의 투쟁을 전개해온 천막 농성장을 철거당한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와 민원을 이유로 확성기 사용조차 제한당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유명자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은 “집회는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을 할 수 있는 통로”라며 “혜화경찰서는 지난 4월17일부터 집회신고 불허 통보를 내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난 4월 28일 구청에 의해 철거 돼 임시로 세워졌던 천막 농성장까지 또 다시 철거했다”고 말했다.

    재능교육지부는 지난 8일 고 박종태 화물연대본부 광주지부 1지회장의 추모제를 올리는 과정에서도 경찰에 의해 방송차량을 탈취당했다. 이날 방송차량 안의 개인 소지품을 꺼내려 던 한 조합원이 연행돼 14일 현재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상태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해고통지를 받은 뒤 1300일이 넘는 투쟁을 전개해온 기륭전자의 사정도 그리 다르진 않다.

    지난 4월 9일 기륭전자분회가 신대방동 신사옥 앞 집회시고를 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피해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방송차량, 엠프, 자가 발전기 사용을 금지했고, 소형 확성기만을 사용하되 주택가 소음기준 주간 65db, 야간 60db를 넘지 말 것을 제한했다.

    소음기준 주간 65db, 야간 60db

    기륭전자분회의 설명에 따르면 주민들이 제출했다는 ‘확성기 사용제한 진정서’는 아파트 앞 인도가 아닌 기륭전자 앞으로 집회를 옮긴 이후에 제기된 것으로, 경찰이 주민을 핑계로 투쟁사업장의 집회 자체를 차단하려는 술수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김소연 분회장은 “1300여 일을 투쟁하면서 요즘처럼 집회하기 힘든 적이 없었다”며 “평소에 데시벨이 60~65db이 나오는데 (65db를 넘지 말라는 것은) 집회를 하지 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월 경찰은 소음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륭전자분회를 집시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에 김 분회장은 “자본 측의 탄압에 맞서 힘들게 투쟁하는 우리의 요구,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공권력이 짓밟고 있다”며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금지의, 처벌의 법률이 아니며 집회와 시위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경찰청 앞 인도 위에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장 주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는가 하면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자 “기자회견 중에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자제해 달라”며 기자회견장 옆으로 전경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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