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눈엔 왜 비닐하우스만 보였을까
        2009년 05월 13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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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근교 그린벨트엔 비닐하우스만 가득차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해야 한다. 국토부 장관은 헬기를 타고 이곳을 둘러보라”

    지난 2월 26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이다. 그로부터 두 달 반 만인 5월11일 국토부는 이들 그린벨트 지역에 신도시에 버금가는 대규모 아파트촌을 짓겠다는 대형 개발정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보금자리 주택 시범지구다.

    그린벨트엔 정말 비닐하우스만 있을까

    대통령이 지시한 대로 국토부 장관이 헬기를 타고 이곳을 둘러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곳에 비닐하우스만 가득하다는 대통령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진 않은 듯하다.

    국토부가 그린벨트를 파헤쳐 아파트촌을 건설하겠다는 강남구 세곡동, 서초구 우면동과 경기도 과천, 고양, 하남시 일대 해당 지역의 거주상황을 보자.

    통계청이 2005년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는(물론 정교한 동의 지번 등이 발표되지 않아 추정이기는 하나) 모두 3만여 가구 9만여 명이 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해당 그린벨트 지역에 사는 사람 중 자기가 소유한 집에서 사는 집있는 사람은 36%인 반면 61%가 셋방에 사는 집없는 사람들이란 점이다. 심지어 서울 서초 우면지구에 포함된 과천동(주암동의 법정동)은 주민의 71%가 셋방에 살며, 하남시 덕풍2동과 3동은 67%가 셋방에 산다.

       
      

    서울과 경기도의 자가점유율은 각각 45%와 53%이고, 전월세에 사는 사람은 54%와 44%인 것과 비교하면 개발예정지는 셋방사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하겠다. 셋방 중에서도 월세와 사글세방에 사는 가구 비중은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21%와 17%인데 비해, 개발예정지는 28%에 달하는 점을 봐도 서울과 경기도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보지 못한 ‘그린벨트 사람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에 발표한 개발예정지가 유독 지하방, 비닐집 등 열악한 곳에 사는 극빈층들의 보금자리란 점이다.

    서울 강남구 세곡지구에 사는 사람의 35%가 지하방에 살고 21%가 비닐하우스·판잣집·움막에 사는 등 58%가 지하방이나 비닐집 등에 산다.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망월동,풍산동,선동의 법정동) 사람의 40%는 과천동에 사는 사람의 39%도 비닐하우스·판잣집·움막이나 지하방 등에 산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도동(원흥동과 도내동의 법정동)에 사는 사람의 27%, 경기도 하남시 덕흥1,2,3동 사람의 19%도 같은 처지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개발예정지에서 비닐하우스나 지하방 등에 살고 있는 사람은 7,278가구 1만8,314명으로 전체 가구의 23%에 달한다.

    이같은 처지에 놓인 가구 비중이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12%와 6%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개발예정지는 서울경기도 일대에서도 비닐하우스나 지하방 등에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2배에서 4배 높은 곳이다.

       
      

    결국 비행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비닐하우스는 봤지만, 비닐하우스 안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 셈이다.

    도심엔 뉴타운, 그린벨트엔 ‘개발’벨트

    저소득층의 주거불안을 해소하고 무주택 서민의 내집마련을 촉진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훼손하면서까지 대규모 아파트촌을 건설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그 곳에는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저소득층과 무주택 서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농작물이나 키우는 비닐하우스, 곰팡이 끼는 눅눅한 지하방으로 밀어 넣은 것은 다름 아닌 역대정책의 각종 개발정책이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밀어붙인 뉴타운 사업이 가난한 사람들을 살던 동네에서 내쫓고 그 가운데 가장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비닐하우스나 지하방으로 밀어 넣는 구실을 했다.

    정부가 발표대로라면 이곳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용역깡패를 앞세운 철거반이 들이닥칠 것이다. 수많은 재개발 현장과 용산참사 현장에서 겪고 있듯이 갈 곳 없는 세입자들이나 집주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대신 미분양 아파트 때문에 일감이 없는 건설재벌들은 서울 도심에서는 서민주택을 쓸어버리는 뉴타운으로, 외곽에서는 그린벨트를 ‘개발’벨트로 바꾸는 변형된 신도시 개발정책으로 큰 공사판이 벌어지니 돈 벌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정부는 분양가를 주변시세 보다 15%이상 낮추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지는 의문이다. 서민을 위한 공영개발이 아니라 건설재벌이 주도하는 민영개발과 선분양제 등 과거의 개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개발의 결과 또한 투기를 부채질하고 다주택자들을 이롭게 하는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늘어난 주택의 절반 이상을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집부자들이 사들임으로써, 그동안 신도시 등 개발정책은 무주택 서민의 내집마련 보다는 집부자들의 집 사재기에 악용돼왔다.

    건설재벌 위한 개발정책 보다 서민 위한 주택정책을

    우리나라의 공식 주택보급률은 2007년 말 이미 108%를 넘어섰고 지금은 110%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국민 모두가 가구당 한 채씩 내 집을 장만하고도 100만 채 이상 집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1인가구와 주거용 오피스텔 등을 포함시킨 새로운 주택보급률 역시 서울과 전국이 모두 100%를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집이 남아도는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집이 남아도는 데도 불구하고 국민 열 중 넷 꼴로 셋방살이를 떠도는 이유는 부동산 거품 때문에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쌀 뿐 아니라, 최고 집부자가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하는 등 국민 1%에 불과한 집부자들이 집을 최소 세 채 이상씩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어 집이 남아도는 시대의 주택정책은 과거와 같은 양적인 공급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질적인 주거복지정책이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집이 남아도는 데도 불구하고 40%의 국민이 셋방살이를 떠돌고, 그 가운데 절대다수가 전월세보증금 5천만 원 미만의 열악한 자산상태에 놓여있는 현실에 걸맞은 정책이어야 한다. 특히 굳이 내 집을 사지 않아도 괜찮도록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서울의 녹지공간을 파괴하고 극빈층과 가난한 서민을 내쫓을 게 뻔한 무분별한 개발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건설재벌을 위한 지원정책이자 부동산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목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미 해당지역에 투기조짐이 이는 등 부동산 가격 안정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 눈에 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비닐하우스만 보였는지, 그래서 사실상 그린벨트를 삽과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라는 지시를 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린벨트를 파괴하고 가난한 서민을 내쫓을 무분별한 개발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택정책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미처 보지 못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오마이블로그 ‘손낙구의 세상공부‘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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