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By 내막
        2009년 05월 12일 05: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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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2일 여야간 극적 타결을 봤던 미디어관계법 처리 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3월2일 합의에 명시된 절차만 이행하면 국회에서 표결처리하겠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합의의 내용이 충실히 이행되지 않는 한 국회 통과를 결사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천정배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주당 MB언론악법저지특별위원회(이하 언론악법특위)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 뜻을 따르는 언론관계법을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언론악법특위는 이날 성명서에서 그동안 정부여당의 언론관계법 졸속 제출 및 강행처리 과정에 대해 정리하고 "결국 지난 3월2일 민주당과 제 시민단체, 학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수용해 3월13일 출범식과 함께 활동에 들어갔으나, 현재 한나라당은 매우 무성의하고 시간 떼우기 식의 자세로 위원회 활동에 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민주당은 언론관계법에 대한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사회공론 조사 등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

    언론악법특위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의 발족의 주목적은 언론관계법의 개선을 위해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여 입법에 반영하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여론조사 수용 거부는 결국 국민의 여론수렴은 뒷전이고, 형식적 논의과정만 거친 후 다수의 힘으로 강행 처리하겠다는 저의"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6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여야 원내대표 합의로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미디어관련법을 표결처리한다고 분명히 합의했다"며, 민주당이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절대 통과 불가’를 외치고 있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3월2일 합의안에 대한 동상이몽

    동일한 합의내용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렇게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월2일 국회 3개 원내 교섭단체가 발표한 합의안 원문을 보면 ‘미디어 관련법’ 중에서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4개 법안은 3월초 문방위에 자문기구인 여야 동수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 문방위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친 후,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합의안에 대해 한나라당의 입장은 △여야 동수의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문방위에서 100일간의 여론 수렴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른 표결처리라는 과정을 문자 그대로 이행하면 된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두 번째 ‘여론 수렴’ 과정이 내용적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언론관계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간의 갈등은 사실 3월2일 합의안이 나올 때부터 예상되었던 것이기는 하다. 정부여당이 갖은 무리수를 두면서 추진해온 언론장악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언론관계법 개정을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힘이 부족한 야당이 겨우 통과 시한시기를 늦추는 것에 불과해 보이는 합의를 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6일 논평에서 "합의한 대로, 절차대로, 차근히 대화하고 논의해 나가자"며, "토론과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무엇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이다. 민주 절차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고 주장해, 합의안에 따라 자신들이 명분을 쌓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3월 합의안 취지가 "지금은 안된다"였나?

    한나라당의 이렇듯 느긋한(?) 입장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을 심각한 곤경에 빠뜨렸던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는 두 개의 문장이었다. 교섭단체의 합의안이 내용과 상황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는데 처리 시기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합의가 그렇게 나왔다는 식의 해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9일 이명박 대통령은 후쿠다 당시 일본 수상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당시 두 사람이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는 문제에 대해 비공개로 나눴다는 대화내용이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7월14일자 신문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후쿠다 수상이 ‘타케시마(독도)를 (교과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통보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며, 이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요미우리신문>도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기사를 삭제하면서도 결코 오보가 아니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운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떳떳하다면 요미우리신문을 고소하라’는 청원이 인기를 끌었으나 결국 청와대가 추가 대응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던 것을 보면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한 이 대통령의 발언 자체는 사실일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미디어관계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현재 논리를 이 사안에 그대로 적용하면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용인했다(지금은 안 되지만 기다리면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고, 이는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나라당의 "합의한 대로, 절차대로, 차근히 대화하고 논의해 나가자"는 6일자 논평의 논리를 일본 정부가 활용한다면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고 해서 기다릴만큼 기다렸으니 이제는 독도를 내놓으라"는 주장을 언젠가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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