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규 집행부, 관리형 '안주'하면 안돼
    By 나난
        2009년 05월 12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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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어려운 가운데서 임성규 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상황의 엄중함을 반영하듯이 산별위원장과 지역본부장들이 합의 추대하는 형식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7명이 정원인 부위원장을 4명밖에 선출하지 못한데서 보여주듯이 전체가 흔쾌하게 동의하는 가운데 선출된 지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임성규 지도부 소임 막중

       
      ▲ 필자

    그래서 일을 하는데 있어 이런 저런 한계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임기마저도 12월까지로 짧아서 많은 일을 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위기 상황에서 선출된 지도부이기 때문에 그 소임은 막중하다.

    민주노조운동이 빠른 기간에 위기 국면에서 탈출할 것인지 아니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인지의 여부는 임성규 집행부의 역할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번 지도부는 어떤 지도부보다 부담을 크게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

    과중한 책임감과 지나친 의욕으로 인해 좌충우돌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답답한 나머지 무기력한 상태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 둘 다 반드시 경계하여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구조조정과 같이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급한 현안도 있고 지도부가 결합하여야 하는 투쟁과 행사들도 많이 있다. 또 비정규직 법 개악과 같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잘 하려고 하다보면 모든 것을 다 잘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족한 역량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드시 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망을 열어나가는 대안을 만드는 일이 그 중에 하나이다.

    새로운 전망과 대안 만들기

    노동운동이 위기에 직면하였다는 진단이 도처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위기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모두가 위기임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위기의식이 비록 성폭력 문제로 촉발되기는 하였지만 이미 노동운동 전반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를 맞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는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고, 단위사업장에서도 복수노조가 허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가 노동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래서 병으로 치면 합병증으로 인한 중증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위기의 진단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것, 이념과 노선이 부재한 가운데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이 통일되지 못했고 따라서 전략적 목표도 없이 그냥 흘러왔다는 것,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형성에 실패하였다는 것.

    산별노조 운동으로 제대로 전환하지 못하면서 자본에 종속적인 기업별 의식을 극복하는데 실패하였다는 것, 정치적 노선도 정책도 없는 정파운동이 과도하게 대중운동을 지도하려 들었지만 도리어 갈등만 증폭시키고 결국에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패권주의적 기풍만 만연하게 만들었다는 것 등등은 오늘의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진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위기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0년 동안 한국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임에 틀림없다.

    위기 극복 기본방향은 나와 있어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흔히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기라고 하여도 그냥 기회로 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위기로 마치면서 노동운동의 종말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는 많이 있다. 모든 사물의 질적 전환은 스스로 존재를 부정해야 시작되듯이 노동운동진영의 뼈아픈 반성과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창조적 건설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때 위기는 곧 기회가 된다. 새가 하늘을 날기 전에 반드시 깃털을 다듬고, 높고 멀리 날아가려고 하는 새일수록 뼈 속까지 비우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느 누구도 대중이 흔쾌하게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명료하게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가야 할지 좌표를 설정하는 것, 노동운동의 원칙을 튼튼하게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변화된 환경을 능동적으로 접목시켜 나가는 것, 노동계급 내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비정상적인 조직구성의 한계를 극복하여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노동운동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일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동안 적지 않은 대안들이 제출되어 있다.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은다면 짧은 시간에 예상보다 많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결론을 도출하는데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

    조급한 결론보다는 진지한 모색을

    이 모든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체계 그리고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구성하여야 하는 것만큼의 큰 문제이기 때문에 조급하게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하기 보다는 차분하고 진지한 모색이 대중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행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성규 집행부는 단순한 관리형 집행부로 안주해서는 안 되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노동운동이 위기의 상황에서 선출된 집행부인 만큼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번에 선출된 지도부들에게 거는 대중들의 기대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노동의 지평> 01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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