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시켜봐야 성적 안오른다”
    2009년 05월 11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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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에 나왔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추진’ 발언이 일단은 하나의 해프닝처럼 되었습니다. 한나라당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교과부에서도 그러더니, 관련 대책 발표가 연기된 상태입니다.

최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기관간 협의, 당정협의, 관련 연구 등을 좀 더 거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부에서는 5월 말 경에 ‘사교육 종합 대책’을 발표하지 않을까 이야기하는데,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방안을 묶은 종합대책을 브리핑하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하나 따로따로 조용히 추진하는 형태도 있기 때문입니다.

형태야 어떻든, 내용에 학원규제 방안이 들어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정부는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규제 완화’의 양날개를 펄럭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합대책이라면, 교원평가 하고 방과후 하고 학교에서 사교육 흡수하기 위해 뭐 하고 등의 방안들을 묶어서 모듬메뉴를 내놓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식재료를 적당히 버무린 재활용 수준 말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은 지켜보죠. 다만, 그냥 기다리기 뭐하니까 사교육에 대해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교육의 원인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가 있어야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 대책을 보고 바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는 동어반복이니까 생략하고 말씀드립니다.

사교육의 효과는 없습니다

사교육의 성적 향상 효과는 없습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그렇게 나오는 걸 어떻게 할까요. 사교육의 순수한 효과를 알아보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물어보는 겁니다. “학원 보냈더니 성적 오른 것 같으세요?”라는 식으로요. 이렇게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을 조사하는 연구에서는 대체로 사교육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긴 사교육을 믿지 못하거나 성적이 오른 경험이 없으면 학원에 보낼 이유가 없겠지요. 그러나 키가 자란 것 같은 느낌과 키가 정말로 자랐는지의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탐색하는 겁니다. 성적을 종속변수로 놓고, 가정배경, 학생의 특성, 사교육 등 여러 독립변수들의 효과를 살핍니다. 이런 연구들에서는 사교육의 순수한 효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드물게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예컨대 세 과목 중에서 수학은 조금 있네 등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교수님이나 연구자들이 작업을 해보면 사교육의 효과라는 게 없거나 적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마치 ‘하향평준화’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그런 증거를 발견한 연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설마라구요?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하든 교육학을 아는 분이 주변에 계시면 물어보십시오.

사교육의 효과가 없거나 적은 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학원비만 날린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교육의 효과가 없는 건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양질의 사교육은 극소수이고 나머지 사교육은 그저 그런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평균적으로 사교육의 효과는 적게 나오겠지요. 곧, 양질의 극소수 사교육을 받는 사람들만 학원비를 제대로 낸 셈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가정배경이나 아이의 특성 등과 사교육을 제대로 결합시킬 때 효과가 나오는 경우입니다. 아빠나 할아버지가 돈이 많고 부모의 학력이 높고 엄마가 전업주부이면서 영어가 되고 아이의 자신감과 집중력이 뛰어나고 공부도 좋아하고 등의 그런 상태에서 사교육을 만나면 성적이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과 함께 한다면 전체적으로 학습시간을 늘려 줍니다. 그러면 성적이 오를 수 있습니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만 있어서는 어려운데 말입니다. 곧, 가정배경이나 아이의 특성이 따라오지 않는 가운데 학원만 보내면, 학원의 매출만 늘려준 셈입니다.

하긴 교육비 지출은 다른 소비 지출과 조금 다릅니다. 돈을 주고 크레파스를 사면 자기 것이 됩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어떤 학원을 수강한다고 그 교습내용이 자기 것이 될까요? 지출하고 소비하는 건 교육과 다른 상품이 유사해보이지만, 똑같은 건 아닙니다.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은 아무 관계 없습니다

사교육은 크게 보육, 특기적성, 입시 등 세 가지로 보면 무난합니다. 맞벌이를 하는데 아직 학교에 갈 나이가 아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어디 맡아줄 데가 필요합니다. 동네에 또래 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학원에 보내기도 합니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학원을 가야 합니다.

이런 보육과 특기적성 사교육은 공공서비스가 열악한 게 원인입니다. 동네에 국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으니까 다른 곳에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영유아 교육이나 보육 시스템을 잘 만들든가, 학교나 방과후 공간 또는 지역문화센터 등에서 특기적성교육프로그램이 잘 갖추는 등 공공서비스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교육 수요 중 약 20% 정도는 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입시 사교육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입시 사교육대책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하면, 공급 규제와 공급 대체입니다. 과외금지나 학원비 상한선은 공급 규제이고, EBS 수능강의나 방과후 교과보충수업은 공급 대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과연 수요를 줄일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재밌는 점은 ‘과외’의 개념 변화입니다. 지금은 학교의 보충수업을 과외나 사교육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 밖의 것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60~70년대에는 정규 수업 이외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보충수업도 ‘과외’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공급규제와 공급대체로 입시사교육의 수요를 줄일 수 있을까요? 이건 왜 입시학원에 가는지와 연관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가 주류였습니다. 학교가 충족시켜주지 않으니까 학원을 간다고 본 겁니다. 소위 ‘공교육 부실론’이나 ‘공교육 보충론’이 되겠습니다. 이 견해에서는 학교가 뭔가를 충족시켜주면 수요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공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을 없애겠다”라고 말하는 ‘공교육 강화론’이 대표적입니다.

비주류이지만 점차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견해는 “공교육이 경쟁적이어서 사교육을 시킨다”입니다. 친구를 이기려고 하니까 학원을 간다고 보는 겁니다. 이 견해에서는 공교육을 강화해도 사교육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친구를 이겨야 하는 경쟁 압력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견해에서 생각하는 해법은 공교육에서 경쟁을 줄이거나 방향을 바꾸는 겁니다. 친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친구와 소통하면서 자신과 경쟁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어느 게 맞을까요? 판단은 읽는 분들의 몫입니다. 전자라면,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에 무조건 반대하시면 안 됩니다. 학교로 학원을 끌어들이는 형태는 공급대체이고, 그 너머에는 공교육 부실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야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공교육 부실론이나 보충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사교육비 지출 형태입니다.

[그림] 2008년 성적별 월평균 사교육비(만원)
   
  ▲ 통계청(2009), 2008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 2009년 2월

우리나라는 그림처럼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비가 많습니다. 상위 10% 학생은 한 달에 31만 5천 원을 지출하는데, 하위 20% 학생은 12만 9천 원입니다. 그림에는 없지만 사교육 참여율도 비슷합니다. 상위 10% 학생 중 87.7%가 사교육을 받는데, 하위 10%에서는 51.6%입니다.

특이한 현상입니다. 만약 공교육 부실론이나 보충론이 맞다면 정반대의 그림이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위권 학생일수록 사교육비나 참여율이 높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와도 다릅니다. 한국, 태국, 그리스, 일본 정도만 그럴 뿐, 다른 나라들은 공부 못하는 학생의 개인교습 참여율이 높습니다.

공교육 부실론이나 강화론이 맞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 징후가 포착되어야 합니다. 즉 질이 높다고 인정받는 학교일수록 사교육비가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중에서 이런 학교는 특목고입니다.

하지만 기대와 다릅니다. 직업능력개발원의 한국교육고용패널(KEEP)를 분석하여 2009년 2월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특목고생의 평균 사교육비는 한 달에 33만 5천 원입니다. 일반고생 21만 2천 원보다 12만 원 정도 많습니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만 놓고 보면, 특목고생 41만 4천 원, 일반고생 32만 9천 원입니다. 사교육 참여율도 특목고생 81.5%, 일반고생 64.8% 하여 특목고생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특목고생이 일반고생보다 사교육을 많이 받고 비용도 많이 지출합니다. 상대적으로 질이 높다고 인정받는데, 학원을 더 많이 갑니다. 이건 공교육 부실론이나 강화론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공교육 부실론에 따른다면, 특목고생의 사교육비가 많으니까 특목고가 일반고보다 부실하다는 결론을 내야 하니까요.

이런 이유로 사교육의 원인은 경쟁 압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특목고생의 사교육이 많은 것도 초창기 특목고와 지금 특목고를 둘러싼 환경이나 경쟁 압력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2007년과 2008년 사교육비 인식 조사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학벌사회와 대학서열구조를 사교육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처럼 말입니다. 국민은 사교육을 일자리와 대학에 대한 경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나올 정부의 사교육 대책에는 초중고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더불어 일자리와 대학과 관련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건 또 다른 관점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국민의 관점과 이명박 정부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나에게 당신은 그들이고, 당신에게 나는 그들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경쟁교육’이라고 흔히 칭합니다. 사교육의 원인이 경쟁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현 정부 교육정책은 그 자체가 사교육 수요를 불러 일으킵니다. 당연히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라는 공급 규제와 맞지 않습니다. 한 쪽은 사교육 수요를 확대하고, 한 쪽은 사교육 공급 규제를 하니까요.

이러면 확대된 수요가 규제 없는 공급을 찾습니다. 밤 10시 이후에 오프라인 학원을 갈 수 없으면, 온라인 학원이나 개인과외를 받으면 됩니다. 새벽에 문 여는 오프라인 학원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되겠습니다. 교과부가 사교육 모듬 대책이나 개별 메뉴를 언젠가는 이야기할 텐데, 그 내용들이 얼마나 상충될지 또는 전반적인 교육정책의 기조와 얼마나 맞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그런데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엇박자 정책 이외에 다른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있거나 앞으로 보낼 예정인 우리 자신입니다. 사교육은 전형적인 ‘죄수들의 딜레마 게임’, 일명 ‘옆집 엄마’ 효과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이든 불안이든 뭐라고 칭하든 간에, 사교육을 시키는 사회심리는 ‘당신들 때문’입니다. 옆집 엄마가 학원을 보내기 때문에 나도 보냅니다. 물론 공교육의 경쟁 압력이 가장 큰 이유이나,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심리는 ‘당신들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옆집 엄마가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난 아이를 보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옆집 엄마와 만나지 마라”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녀는 옆집 엄마이지만, 한편으로 그녀에게 나 또한 옆집 엄마입니다.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하지만, 우리 스스로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교육을 줄이려면 공교육의 경쟁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 옆집 엄마가 되지 않는 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미 부자들이 이기는 게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경쟁하려면 공정해야지 왜 가진 자에게 유리한 경기장에서 하냐”라며 “우리 모두 사교육 받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어볼까”라고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림자 교육(shadow education)

사교육을 영어로 뭐라고 할까요? private education? private tutoring? 게으른 성격 탓인지, 재작년 2007년에 발표된 논문을 최근 읽었는데, 재밌는 용어를 발견했습니다. 새도우 교육(shadow education)이라는 말을 소개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이유로 사교육은 공교육이 존재하니까 존재하고, 공교육이 바뀔 때 따라서 변화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공교육이 주요 관심사라는 세 가지 특성도 언급합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오’하는 감탄사와 ‘하하하’라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멋진 말입니다. 하지만 shadow education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기보다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며 과거지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요. 한동안 교육열이나 사교육 등 우리의 독특한 풍습을 영어로 뭐라고 칭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정도로, 사교육이라고 하는 게 전세계의 일반적인 풍경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해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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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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