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흡혈에도 윤리와 정도가 있다"
        2009년 05월 11일 07: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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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어렸을 때 엄마젖 빨아먹은 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엄마의 피와 살이 만든 젖을 빨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엄마를 빨아먹고 큰 셈이다.

       
      ▲ 영화 <박쥐>의 포스터

    이안젤라님께서 <레디앙>을 통해 영화 ‘박쥐’를 ‘찌질한 남자영화’로 평가하셨다. 자세히 보니 그런 평가가 가능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흡혈의 의미

    다시 피 빨아먹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커서 소 젖을 빨아먹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의 피가 만들어낸 하나의 변형태를 빨아먹는 것이다. 굳이 남의 젖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생태계 안에서 살다보면 고기라든가 풀이라든가 하는 우리가 다른 존재의 양분을 빨아먹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좀 더 생각해 보면 소 젖이나 엄마 젖 빨아 먹는 것은 약과다. 예전에 진보정당운동을 하던 일군의 집단들 중에는 ‘마피아족’ 이라는 집단이 있었다. 여기서 마피아족이란 ‘마누라 피 빨아먹는 족속’들의 약칭이었다. 우리는 결국 다른 존재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존재들인 셈이다.

    사회적인 의미에서도 우리가 결국은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라는 점은 명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회전한다는 것도 다르게 말하면 서로가 서로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피를 빨아먹기도 하지만 피를 빨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돈을 주고 받고 한다는 뜻인데, 이 돈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일종의 ‘피’이다.

    화폐를 흔히 자본주의의 혈액에 비교하는데 이 혈액 순환이 왕성한 상태가 경기 호황기이고, 이 순환이 지체되는 상태가 바로 경기침체기 이다. 각 경제주체들은 서로 화폐라는 사회적 혈액을 누군가로부터 빨아먹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도 꾸준히 피를 빨리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사회적 혈액, 즉 화폐가 순환하는 것이다. 이 순환이 빨라질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그래서 나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피를 빨아먹고 동시에 피를 빨리는 장면에서 거대한 자본의 순환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남녀 두 주인공은 서로 피를 빨아먹고 피를 빨리는 피의 ‘순환’ 혹은 ‘회전’을 통해 서로 살아난다.

    흡혈과 자본주의

    우리는 뱀파이어라는 가상의 존재를 우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악의 화신처럼 그리고 살지만 사실 이 세상에 남의 피 빨아먹고 사는 존재는 뱀파이어뿐 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어찌보면 결국은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서로 타인의 피에 의존하며 살 수 밖에 없다.

       
      ▲ 영화의 한 장면

    물론 서로가 서로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을 ‘지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에서 누가 누군가를 지옥에서 데리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잘 발행하는 ‘공수표’에 불과하다. 어차피 그 지옥이라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극복해야하는 현실일 뿐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남녀주인공 중에 한 주인공이 다소 절제된 욕망으로 그려지고 또 다른 주인공은 절제 없는 욕망의 발산체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결국 어떤 스스로에 의해 제한되는 욕망을 지향하고 있다.

    왜 영화는 모두가 욕망을 품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절제된 욕망을 지향하는가? 그것은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욕망’의 순환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흡혈

    영화는 피를 다 빨아먹고 죽이는 상황보다는 되도록 죽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피를 빨아먹는 절제된 욕망, 혹은 고도화된 욕망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지속가능한 순환을 지향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지속가능의 원칙을 벗어나는 순간 뱀파이어는 햇볕 아래서 죽는 길을 택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어차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고 살고 있으며, 다른 피를 먹고 싶은 잠재 욕망의 지배 아래 사는 존재임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최소한의 흡혈의 윤리와 정도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엄마 젖을 빨아먹는 것과 실제 남의 피를 빨아먹는 것의 차이는 그것이 지속가능한 흡혈인지, 아니면 1회용 흡혈인지라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의 창작물을 빨아먹는다는 뜻이다. 물론 그 대가로 박찬욱 감독이 우리의 뭔가를 일부 빨아먹었겠지만, 하여튼 나는 박찬욱의 새로운 창작물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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