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직 정보력과 생산직 투쟁력의 조화
        2009년 05월 08일 11:4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우리나라는 마치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학원과 같다. 정권만 잡았다 하면 그 교본대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리가 성공의 비결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게 마련이다. 많은 경쟁자 중에서 승자는 딱 한 사람이고 패자는 얼마든지 많다. 여기서 경쟁이란 자기발전의 계기일 수는 있으나 그에 따른 승패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격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발상에서 본다면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다. 각자의 차이를 바로 알고 이해하며,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 상호간의 차별적 시각을 피해야겠다. 우리 모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역할이 반드시 있고, 승패를 떠나 모두가 사회구성원임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봐야겠다.

    사무직들이 금속노조 가입한 사연

    대우자동차 시절 사무직들의 조직은 사우회와 직장발전협의회(직발협)를 거치면서 회사가 만든 조직에서 점차적으로 자주적 성격의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무직노동자직장발전위원회(사무노위)를 완성하면서 비로소 조직이름에 ‘노동자’란 이름을 넣고 자주적 조직을 구성하게 되었다.

       
      ▲ 대우버스노조는 176일간의 파업을 통해 회사로부터 ‘구조조정 철회’를 이끌어냈다 (사진=대우버스노조)

    IMF 직후 금속산업연맹 시절 대우차노동조합에 사무직 노동자들이 함께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 그러나 주변의 대내외적 요인들로 인하여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대우자동차는 사업부별로 찢어져 각기 다른 회사에 매각되었다. 대우버스는 영안그룹에 매각 되었다.

    영안그룹은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신인사제도의 기치 하에 개별연봉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임금저하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 2005년 성과급을 사무직과 생산직에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등 실로 사무직(비노조)과 생산직(노조)을 차별화하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우리는 긴급히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즉각 사무노위를 벗어나 노조로 전환하기로 결의했다. 그리하여 총회를 거쳐 2005년 12월 8일 금속노조에 가입하게 된다. 바로 이 때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대우버스사무지회(이하 대우버스사무지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생산직 집중공략에 분노한 생산직들

    대우버스는 영안그룹에 인수된 이후 적자를 본 해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2004~2005년 연속해서 임단협 교섭과정에서 생산직 노조가 파업만 하면 직장패쇄를 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해 왔다.

    2005년 이전에는 생산직 노조의 교섭결과를 사무직도 함께 적용받았었다. 그런데 2006년부터는 새로 구성한 대우버스사무지회도 별도 교섭을 요구하게 된다. 이때 회사는 “사무직과 생산직이 별도 교섭을 요구하니 어렵다”며 공동요구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이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두 조직을 이간질하는 태도였다. 정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공동요구안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기대심리가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회사의 전술은 처음에는 먹혀들었다. 그러나 교섭을 여러 차례 하면서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사측은 기업별노조인 생산직의 대표자들만 집중적으로 공략해 모든 노사관계를 마무리하려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였다. 이에 생산직 조합원들마저 분노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뛰어넘어 산별노조를 택하게 되었다.

    이참에 노조무력화 해보려던 회사

    회사의 구조조정 배경은 대우버스 인수회사인 영안모자(회장 백성학)의 과거를 잘 봐야 한다. 영안모자는 국내에서 모자공장을 해서 모은 돈으로 해외에 공장을 짓고 그 이후 국내공장을 없애고 해외공장만 돌리는 경영을 해 왔다. 대우버스는 국내 부산에 3개 공장(정규직), 울산 1개 공장(비정규직)을 가지고 있으며 해외에 8개의 법인을 가지고 있다. 2005년에는 부산 3개 공장을 부산 시내로 통합이전하고 고용을 보장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대우버스 경영진들은 해마다 울산공장으로 이전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는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변수를 이용해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대우버스사무지회는 판단했다. 또 우리는 그 속내가 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공장으로 이전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비교해 가며 노동강도를 높이고 유휴인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 결국 비정규직만 남긴 공장을 가동하고 싶은 것이라 판단했다.

    나아가 그 이후에는 해외공장을 더 늘려 국내공장을 완전히 없애려 한다고 판단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매번 울산으로의 공장이전이 노사간의 쟁점이었다. 이에 자기 의도가 무산된 회사가 아예 노조를 무력화시키고자 경영악화를 핑계삼아 구조조정이라는 초강수의 카드를 빼 들게 된 것이다.

    사무직의 높은 정보력

    사무직은 대부분 조합원들이 회사의 정책에 따른 기초자료들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국내외 정세와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보니 회사의 거짓말이나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가끔 사측은 “사무직과 말싸움해서 득 볼 것이 없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생산직과 사무직의 업무상 차이에 따른 것일 뿐 사람의 차이는 아니다. 무엇을 배웠느냐, 무엇을 하고 있냐의 차이일 뿐이다.

    사무직이 높은 정보력이 장점이라면 생산직은 강한 투쟁력이 장점이다. 이것은 승리하는 투쟁을 이끌어 내기에 더 없이 좋은 장점들이다. 공동투쟁의 성공적 완성이 있기까지 처음에는 공동투쟁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와 서로의 입장차이로 할 말 다 못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대표자들과 간부들의 강한 의지와 자신감, 그리고 명확한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에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대표자 회의 후 반드시 그 내용을 보고대회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투명성을 조합원들에게 인정받아왔다. 이로써 생산직과 사무직 할 것 없이 전 조합원들이 일치단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사측으로부터 구조조정 철회와 관련한 합의서를 받을 수 있었다.

    생산직과 사무직은 함께할 게 많다

    이번 대우버스 구조조정분쇄 공동투쟁을 경험하면서 생산직과 사무직이 과연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고민에 대한 극복방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첫째, 공동의 의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것, 둘째, 각자의 업무상 차이를 이해하고 사람들 간에 차별을 없애 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셋째, 함께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공동투쟁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면 된다고 본다.

    금번 공동투쟁을 통해 1사1조직 문제에 대해 대부분 조합원들은 큰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조합원들은 교육을 통해 자신이 느낀대로 움직이며, 지도부의 지침이 특별히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면 그대로 따른다.

    그러나 조직에서 이탈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 중 많은 비율이 바로 이해관계자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충분히 좋은지 아닌지보다 자신의 위치와 조직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된다.

    1사 1조직이 모두에게 다 좋을 수는 없다. 큰 투쟁을 만들어내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낮은 요구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만들어가는 계획은 조합원들과 꾸준히 공감하고 같은 꿈을 꿀 때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조직별 대표자들부터 핍박받는 민중의 선봉에서 싸우겠다는 희생정신과 대승적 차원에서 무엇이 조합원들을 위한 선택인지 그 목표부터 중지를 모아가는 과정들을 만들어 가보자. 그 과정에 미래를 향한 길이 있으니.

    * 위 글은 현장노동자회(http://nodong.nodong.net) 소식지 <노동운동동향> 26호에 실린 글 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