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가 쓰러진 곳에서 시작하다
        2009년 05월 07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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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하영식의 『남미인권기행』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짙푸른 오월이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광주시민의 저항과 죽음의 달이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었을는지도 모른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문득 역사교과서에 숨어버리고 거대한 기념탑 속에 갇혀버린 5월 항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영식의 『남미인권기행』이 무엇보다도 기억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필자는 2006년 9월과 2008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니카라과,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 5개국을 방문하였다. 그가 이 나라들을 굳이 선택한 이유가 분명히 적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어떤 곳을 찾았고 누굴 만났는지를 보면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라이게라라는 오지를 방문해 현지 농민들과 만난다. 그곳은 40여 년 전 라틴아메리카 연쇄 혁명의 꿈을 간직하고 도착한 혁명가 체 게바라가 살해된 곳이다. 거기서 그의 남미기행은 시작된다.

       
      

    라이게라에서 시작하다

    독재정권 시기에 3만여 명이 살해된 반인륜 범죄의 나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지금은 폐허로 변한 엘올림포 정치범 수용소를 방문하고, 모두가 공포로 침묵하던 시기에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던 5월 광장 어머니들을 만나 인터뷰하기도 한다. 콘도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남미 군사독재들의 국제적인 반인륜범죄 공조 행위와 미국의 공모도 고발한다.

    또한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독재자 피노체트가 사망하던 2006년 말 칠레를 방문해 독재자 지지자에서부터 독재정권의 희생자들,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공산주의자까지 두루 만나 아직도 채 아물지 않은 환부를 살핀다.

    그리고 산디니스타 혁명의 니카라과를 방문하여 혁명 투쟁의 무대를 직접 방문하고 과거의 혁명가들을 면접한다. 뿐만 아니라 바나나 농장의 살충제인 네마곤에 의해 피해를 입은 농업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혁명 이후에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니카라과 민중의 참상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 혁명운동의 모델이었던 쿠바를 방문해 서서히 빈부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한 아바나의 현실을 관찰하다가 이제까지의 여행 중에서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아내의 성을 팔려드는 한 쿠바 남성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그의 여행은 라틴아메리카 혁명운동의 상징 체 게바라가 쓰러진 볼리비아에서 시작되어 그 혁명가가 탄생한 쿠바에서의 최악의 경험과 함께 끝이 난다. 그는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과거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보인다. 그의 기록 전반이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와 게릴라혁명 시대의 기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록에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든 대신에 현재의 투쟁을 독자적으로 다루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볼리비아에서 2006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탄생한 뒤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취재하기도 한다. 공기업 소속과 사기업 소속으로 나뉜 광부들 사이에 발생한 유혈사태를 보도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토지개혁에 대한 농민들의 기대도 전하며, 볼리비아를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자치주 운동을 심층적으로 취재한다.

    하지만 기행 전반에 걸쳐 지속되는 과거에 대한 추적의 힘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이 대목은 흑백 사진 속에 끼어든 칼라 사진처럼 낯설게 여겨질 정도이다.

    민주주의…그러나 삶은 그대로

       
      ▲ 책 표지

    그가 라틴아메리카 5개국에서 독재와 혁명의 시대를 되살리는 이유는 희미한 옛 기억을 추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는데도 민중의 삶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는 1980년대 이후 집권한 민주정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삶은 독재와 혁명의 시대보다 더 불평등해지고 더 가난해지고 말았다.

    즉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민중들이 민주화에 대해 느끼는 데셍깐또(desencanto, 실망)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눈에 확연히 보이는 독재에 맞서서는 영웅적인 투쟁을 벌이던 혁명가들이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장만능주의라는 적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변질되어버린 현실도 전하고 있다.

    한때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들려오는 민중들의 저항과 혁명 소식에서 희망을 얻었을지 모를 지은이의 논평에서도 진한 실망감이 묻어난다.

    “이전에 책자에서만 접했던 위대한 산디니스타 혁명의 주인공들인 중남미 민중들의 삶은 혁명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 니카라과에 머물던 짧은 기간 동안에 나의 눈은 항상 슬픔의 눈물에 젖어 있었고, 밀물처럼 밀려드는 절망의 파고에 나의 심장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실망 그리고 남미와 한국의 차이

    파란곡절의 민주화 투쟁을 거친 한국 민중이 민주화 이후에 느끼는 감정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5월의 기억을 더듬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해 5월 전남도청에 모여든 서민들의 저항군이 독재정권에 맞서 결사항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며 죽음까지 불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불평등을 폐지하고 차별을 시정하고 빈곤을 없애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민주화투사라는 신흥 권력 집단을 만들고 자멸하고 말았다. 민주 정부 시대에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빈곤은 더욱 확산되었으며 실업은 더욱 증대되었다.

    바로 이 민주정부들에 대한 민중의 짙은 실망감은 결국 이명박 정부라는 시대착오적 괴물을 탄생시켰다. 바로 이 괴물의 숙주는 지난 20년의 민주화 시대 동안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된 불평등과 빈곤이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가 다시 돌아온 이유도 바로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동일한 이유가 시대착오적 극우파의 부활로 이어졌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지은이의 몫이 아니라 고스란히 우리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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