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사회
        2009년 05월 06일 07: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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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노동절 119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곳곳에서 각계 각층의 집회가 산발적으로 열렸다. 이 군중들 가운데 가냘픈 여학생들이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삭발한 머리로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절규의 가까운 외침이 귀에 꽂혀왔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그리고 88만원 세대” 그 가녀린 손에 들린 한 여 학우의 피켓문구를 보니 미쳐 선봉에 서지 못한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른다.

    지난달 우리는 한 여대생의 죽음 앞에 숨 막히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등록금 때문에 사채까지 써야했던 이 여대생은 악덕 사채업자가 누르는 고리와 협박에 못 이겨 유흥주점에까지 흘러들어갔고 이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손에 그녀는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이 지경에 이른 현실을 통탄하며 아버지마저도 죽음을 택한 사건이었다. 한 여대생을 이처럼 비참한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은 그 사건을 접한 모든 이의 목을 졸라 숨이 막히게 한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딸

    지금은 자칭 대한민국의 CEO라고 말하는 그 분이 대선 후보 시절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이 오래전부터 주요정책목표로 걸었던 무상교육 플랜과 비슷한 차원의 반값 등록금을 경쟁적으로 당의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그러나 그 분은 지금 뽑아준 유권자들을 뒤로 하고 “내 입으로는 반값등록금을 공약한 적 없다”라고 밝혔다. 심히 유감스러운 발언이다. 네티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는대로 우리는 정말 용량이 2MB에 불과한 구형 PC를 메인 컴퓨터랍시고 청와대에 들여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절망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그 절망이 학생들의 손에 책 대신 피켓을 쥐게 하고 거리를 향해 내몰고 있다.

    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고 슬로건뿐인 공약에 그치기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교육이 가지는 의미와 사회에 기여하는 비중만큼은 정치적 이유로 손바닥 뒤집듯 바뀔 만큼 가볍지가 않다.

    학부생으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교육은 엄연히 경제에 기여하는 공공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배웠다. 즉, 교육은 생산된 그 순간부터 구성원 모두가 소비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인 셈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교육에 있어 공공재적 성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입학생의 수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진 지금에 와서도 돈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하는 일이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제대로 된 공교육이 확립되지 않아 그 기능을 사교육 시장에 빼앗긴 기형적 시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육시스템의 운영이 사회내부의 투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가정경제에 의존하는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되는 것들이다. 아이의 미래를 인질로 잡고 부모의 지갑에서 소위 말하는 ‘슈킹(갈취를 뜻하는 은어-편집자 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질로 잡혀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해방시켜줄 비용을 사회 내부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우리사회가 공공재로서의 교육의 기능을 확립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슈킹 권하는 사회’

    지금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다. 우후죽순 늘어난 전국의 대학들은 학력사회라는 칼을 휘둘러 학생들을 위협해 머릿수를 채워 등록금 장사를 하고 있고, 다시 금융권은 이 등록금을 빌려주어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으며, 이런 미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한해 30조 원을 학원비에 쏟아 붓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데 14~5조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비용을 우리사회는 가정에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대학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린 취업은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었고 이 악순환 속에서 피해자는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는 셈이다.

    지금 거리로 나온 대학생은 그 악순환이 지긋지긋하도록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한 가운데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을 인질삼아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는 악질적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우리사회의 교육정책의 방향을 수정해달라고 외치는, 피를 머금은 절규를 이제는 각계각층의 논의와 검토를 통한 공공재로써의 교육의 기능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정권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집회는 모두 폭력집회로 규정해버리는 이상한 잣대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연행하고 시위장소를 봉쇄했다. 정부가 막아야 할 것은 학생들의 진실된 목소리가 아니라 상식을 넘어 살인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등록금의 인상과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고리대금을 방불케 하는 학자금대출의 이자율이다.

    곤봉을 내리치면 칠수록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극렬하게 바뀔 것이다. 정부는 정치논리로 대응하는 것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지금 생존을 걸고 싸우고 있음이 그 근거일 것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고 거북하다면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낼 묘안을 제시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정부가 머리 싸매고 전경을 어디에 배치할까 논의하는 것보다는 효과적이며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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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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