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의 꿈은 보편적 복지국가다"
        2009년 05월 04일 1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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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경제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세계의 석학들은 최근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을 꼽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것은 감세, 규제완화 그리고 민영화인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경제사조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정책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정책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지난 30년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였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파고가 대단히 강력하여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의 사회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유럽 복지국가들은 연금개혁 등의 복지개혁을 통해 복지지출을 삭감했던 것이다.

    DJ 시대, ‘보편적 복지국가’ 틀 만들어져

    이들 복지국가 사회정책의 일부에서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민영화의 추세까지 나타났다. 의료와 보육 등의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때 본인부담금을 더 크게 하고 급여의 혜택을 줄였다. 이렇게 신자유주의는 경제정책의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을 관장하는 보편적 사회정책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정책 분야의 신자유주의는 유럽 선진국들과는 다소 다른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강력하게 시장주의 사회정책이 추진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복지가 국가복지로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시기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였고,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의 보편적 틀을 마련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가복지의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이 때 외형적으로나마 보편적 복지의 틀이 만들어졌고, 그 가능성을 열었다. 특히, 2000년 통합의료보험으로 출발한 국민건강보험의 성과가 가장 돋보이는데, 국민건강보험은 지금까지 보장성 수준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당시 의료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고작 48%에 그쳤는데, 2007년에는 64%까지 상승하여 16% 포인트나 증가하였다.

    이렇게 일부 사회보장제도의 획기적 진전과 함께 국가복지가 제도화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우리나라의 사회정책 분야도 예외 없이 공격했다. 참여정부 시기에 의료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의료민영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MB의 역주행

    의료민영화 정책은 의료서비스를 산업으로 보고, 정부 영역이 아닌 민간의 자본 투자를 통해서 필요 재원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은 비영리기관과 의사 개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 병원은 설립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는 내국인이 설립하는 주식회사 병원의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는 외국인에게 국한하여 인천 등의 경제특구에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였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외국인이 영리법인 병원을 설립한 사례는 없었다. 별 성과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노골적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자마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비롯하여 국민건강보험의 기능을 축소하려 했다. 그리고 내국인에 의한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려 했고, 국민건강보험과 사실상의 경쟁관계에 있는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의료서비스 분야뿐만이 아니다. 교육과 보육 등의 여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도 시장과 경쟁을 강화하는 시장주의 정책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의료와 교육을 비롯한 사회정책 분야에서 영리자본의 진출을 허용하고 시장주의 경쟁 원리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정책 의도는 심각한 국민 불안을 야기하였다.

    국민 불안케 만드는 MB 정부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더 이상 나와 내 가족의 생활상의 위험을 사회적 수준에서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에 내 맡기려고 하는구나!’, ‘나와 내 가족의 생활상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내가 알아서 경제사회적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서민 가계의 부담과 불안이 커지게 된 것이다. 우리 국민은 현재의 경제사회적 위험을 국가와 사회가 보편적 기준에서 제도적으로 책임져 주길 바란다.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경제 질서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위험을 개인과 가족이 개별적 수준에서 모두 감당하기도 어렵고, 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민생의 불안과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지 않은 국민들의 삶이 아직 가난하고 불안하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권이지만, 국민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0개국 중 24위이고, 빈곤율은 6번째로 높다. 전체 인구 중 빈곤계층의 비중도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 정도도 매우 심각하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촛불의 저항이 시작된 것은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에서 정부가 나서서 진보적 사회정책을 통해 불평등의 문제와 생활상의 위험을 해결해주지 않고, 개인과 가족의 삶을 자본 주도의 시장에 방치하려 한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 시민사회와 진보개혁 진영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사회정책의 성과들이 해체되어 자본주도의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촛불과 의료 문제

    한편,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이 촛불 집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된 계기는 2007년 연말 대통령 선거 이후부터였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완화하겠다거나 폐지하겠다는 당선자 측의 입장이 알려졌고, 이것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나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청원이 올라오게 되었다.

    이 청원은 하루만에 5천 명이 서명할 정도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고, 서명한 사람의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 이 사건과 더불어 당시 개봉되었던 미국 영화 ‘식코’도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실감하도록 도와주면서 촛불 집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는 데 일조하였다.

    정부는 제주도를 시험지역으로 삼아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였는데, 2008년 6월 3일 국무총리가 주관한 회의에서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제주도 당국은 영리병원 도입을 치밀하게 추진하였다. 영리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 논리를 만든 후 관변단체를 동원하여 찬성을 조직하였고, 관제 반상회를 열어서 여론몰이도 했다.

    이에 맞서 제주의 시민사회는 영리법인 병원 저지투쟁에 들어갔다. 결국 7월 26일 제주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대 39.9%, 찬성 38.2%로 제주도 당국이 패배했다. 이렇게 제주도 의료민영화 시도가 저지된 데에는 촛불의 영향력이 컸다. 촛불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2008년 촛불이 의료정책에서 원했던 것은 국민들이 아플 때 진료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였다. 그리고 국민들은 건강과 교육을 자기실현과 행복한 삶을 위한 권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이러한 권리의 보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의료와 교육과 같은 사회서비스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시장에 맡겨 놓으면 시장실패로 인해 비효율과 불평등을 초래한다. 지금까지의 세계적 경험으로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유럽형 사회정책이 시장을 강조하는 미국형 사회정책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이고 형평적인 결과를 낳았다.

    공공성과 보편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성과가 좋은 모델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사회서비스의 제공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크다(‘강한 공공성’)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들을 포괄하는 ‘보편적 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는 국가가 소득분배는 더 평등하고, 빈곤이 훨씬 적으며, 삶의 질과 건강수준도 가장 우수하였다.

    성과가 좋은 사회서비스 국가 모델의 첫 번째 조건인 ‘강한 공공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 부담과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이를 통해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민간공급자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와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정책조합을 구사해야 한다.

    성과가 좋은 사회서비스 국가 모델의 두 번째 조건인 ‘보편주의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인구를 포괄한다는 외형적인 보편성과 함께 질적으로도 사회서비스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야 한다.

    가령,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의 급여가 모든 국민을 포함하더라도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낮거나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보장성 수준이 낮으면, 외형적으로는 보편성을 가지지만 내용적으로 보편주의의 원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①공공성이 강하면서도 ②보편주의 제도를 채택한 공공서비스 국가 모델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득보장제도 위주로 짜여진 우리나라의 사회정책은 저출산․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분야의 대폭적인 개편과 확대를 통해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즉 보육, 출산․양육휴가 등의 복지정책이 대폭적으로 확대되어야 여성 노동력의 활용과 노인․아동에 대한 케어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보장성을 OECD 국가들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보육, 교육, 노인 돌봄 등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도 보편주의 원칙을 최대한 견지할 필요가 있다.

    ‘안티 촛불’ 정권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지금까지 사회정책 분야의 시장화가 끊임없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는 2009년 1월 28일 내국인 영리병원을 재추진할 계획을 밝혔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영리병원과 영리학교의 허용 등 주요 사회서비스 분야의 자본주도 시장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20년 간 국민적 지지 속에서 시민사회와 민주개혁 진영이 성취해 놓은 성과를 획기적 재정 확충과 공공성 강화를 통해 더욱 발전시켜 나가느냐, 아니면 의료민영화를 통해 미국식 시장주의 의료제도로 바뀌느냐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교육 등 여타의 사회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의 전문가 집단과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결같이 주장해 왔듯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정책 분야의 자본주도 시장화는 우리의 길이 아니며, 우리나라는 더 많은 사회공공성과 이를 위한 공적 재정의 획기적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작년 이맘 때 촛불의 항쟁을 불러왔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들을 똑같이 시도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영리학교의 도입, 입시지옥 교육까지 모든 것이 작년 촛불의 전야와 닮았다. 게다가 경제위기까지 겹쳤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민생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면, 그리고 사회정책 분야에서 자본주도의 시장화 전략을 계속해서 추진한다면, 장차 더 큰 제2의 촛불에 직면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www.welfarestat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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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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