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교육감 투표소에 세번 갔어요
    촛불, 이웃에 관심갖고, 투표하게 해
        2009년 05월 02일 09:08 오전

    Print Friendly

    꼭 1년 전 이맘 때 시작돼 몇 달 동안이나 달뜨고 뜨거운 밤을 지새우게 했던 촛불은 무엇이었을까? 또는 그것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이나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인구집단을 일거에 변화시켰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바라는 바가 법이나 제도로까지 귀착되지는 못했지만, 공유하고 공감하는 장(場)이 국회나 제도언론이 아닌 길거리와 인터넷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그 참여자들이 ‘운동권’이 아니라, 어린 여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금 누군가는 촛불이 다시 타오르기를 염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다시 재연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년 5월 촛불을 들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해 촛불의 나날이 이어질 때 유모차 ‘부대’가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촛불집회의 주역 중 하나였던 이른바 ‘유모차 부대’의 카페지기 ‘일루’를 <레디앙>이 만났다. 노동절 점심녁에 분당 한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일루’와 함께 나온 세 살배기 아들의 간섭과 방해 속에서, 근처 식당으로 옮겨지며 계속됐다. ‘일루’는 유모차 엄마들의 촛불을, 그리고 그 후의 1년 동안을 다음처럼 말한다.

                                                            * * *

    “언니, 촛불집회 같이 가요”

    – 카페 이름이 ‘촛불 유모차와 함께 하는 촛불 가족(http://cafe.daum.net/Umom)’이던데?

       
      ▲유모차 카페지기 ‘일루’씨와 아기. 

    = 처음에는 ‘유모차 부대’였다. 언론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카페 처음 만든 분이 그렇게 달았다. 그 이름을 바깥 사람들이 부르기는 좋겠지만, 카페 안에서는 어감을 안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런데 아기 엄마들이 하는 일이다 보니, 서로 의견 나눌 짬도 안 나고, 막상 바꾸려니 카페 대문 그래픽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시간이 꽤 오래 걸리더라.

    – ‘유모차 부대’의 시작이랄까,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지 대강 이야기해 달라.

    = 제가 촛불집회에 제대로 나간 것은 5월 29일이 처음이었다. 아는 동생이 “언니, 같이 가자” 그래서 나갔다.

    그 때 그 동생이 무선인터넷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민미술관 앞에 ‘유모차 부대’가 모여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리 가보니 여경들이 유모차를 막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있었는데….

    5월 31일부터 제대로 모이기 시작했다. 5월 31일 집회 때는 교통경찰들이 유모차 부대를 호위해주는 분위기였다. 6월 10일 대회 때 유모차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모였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형성 과정에서 혼란도 조금 있었다.

    – 유모차 부대 카페가 생기기 전에 일루님은 어느 곳에서 활동했었나?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디서 모인 분들인가?

    = 저도 82쿡이나 레몬테라스 회원이기는 했지만, 별다르게 활동하지는 않았고, 아기 엄마들이 백 명 정도 모여 노는 커뮤니티에 있었다. 아기들 옷, 장난감 세일 정보 교류하고, 시어머니 흉보거나, 아기옷 산 거 사진 찍어 자랑하고 그런 곳이었다. 그 카페 동생이 같이 가자고 그래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것이다. 다른 유모차 엄마들은 굉장히 여러 곳에서 모여들었다.

    저는 월드컵도 맹숭맹숭해 할 정도로, 원래 피가 뜨겁지 않기 때문에 집회장에서 여러 가지 일 하기가 사실 귀찮았었다. 많은 엄마들이 구호도 외치고 그러는데, 저는 그 정도까지 열성적이지는 못했다.

    아기 옷 세일 정보 교류하다가…

    – 촛불집회 당시에 폭력-비폭력 논쟁이 있었고, 양쪽 모두 나름 일리 있는 주장들이었는데, 아기 데리고 나온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집회가 지나치게 위험하거나 꺼려지지 않았나?

    = 8월까지는 유모차 엄마들끼리 닉네임만 알지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기들까지 데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다른 뉘앙스가 있기는 했다.

    어쨌든 아기들 특성상 한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기 힘들어 행진이 필요했고 아무 것도 안하고 가기엔 허전해 구호도 외쳐보고 했지만, 유모차 엄마들이 직접 폭력적 상황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아기들을 데리고 있으니 해지기 전에 돌아가야 했고.

    “청와대로 가자”는 주장이나 ‘가투’가 경찰에게 빌미를 줬을 수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 하는 결과적 평가이지 그 때로 돌아가서 보면 꼭 그렇게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 때 저도 “너무 싸우면 우리 같은 사람 못 나와요”라고 말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던 것 아닌가.

    앞에서는 싸우는데, 뒤에서는 논다고 비판하는 것이 인터넷에서 주된 분위기였으니만치, 지금에 와서 그 때 논쟁 되돌이키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촛불집회 자체가 중산층의 것이었다는 평가도 있고, 그 참가자들이 중산층이었다는 평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그런 이슈까지 눈이 닿으려면 아무래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할 테니까, 그런 지적이 맞을 것이다. 특히 촛불에 참가한 아기 엄마들은 그런 성격이 보통의 촛불 참가자들보다 더 강했을 것이다. 직장 다니며 아기 보느라 정신없는 분들은 촛불에 참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중산층’이어서 더 유리

    – 그렇다면 촛불 유모차 엄마들이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 제약이라든가, 문제점이 있었나?

       
      ▲인터뷰 중 아이와 식사하는 ‘일루'(사진=이재영) 

    = 그런 것 전혀 없었다. 오히려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적었다고도 할 수 있다. 중산층이라는 점이 여론이나 사회적 지지를 받기에 좋았다.

    중산층까지 거리로 나올 정도로 정부가 잘못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쁜 의미의 ‘데모질’이 아니라, 촛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일 정도의 분위기가 됐었다.

    집회 나가는 데 차비만 드는 게 아니다. ‘유모차 부대’ 호위해줬던 ‘예비군 부대’와 함께 고생들 한다고 같이 밥도 사먹고 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내는 게 당연한 거고, 실제 그렇게들 했다.

    – 집회에 참가하고, 카페지기도 하고 하는데 남편은 이해해주는 편이었나?

    = 남편이 차 태워다 주고 그랬다. ‘기사’ 노릇 한 다음에는 근처 커피숍에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저는 그동안 대선 때에도 투표를 안했었는데, 남편은 노무현을 찍었었다. 그래서 남편한테 “네가 나를 물들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 작년 9월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대표를 만나지 않았는가?

    = 저는 그날, 다른 일이 있어서 나가지 못했고, 다른 엄마들이 두 분을 만났었다. 우리 엄마들은 그냥 ‘유명한 사람들’이라고만 아는 정도였다. 저는, 노회찬씨는 TV에서 재밌는 이야기도 하고 그래서 얼굴은 알았는데, 심상정씨가 여성인줄도 잘 몰랐었다.

    ‘날라리 진중권’은 좋은데, 진보신당은…

    – 지켜보기에 진보신당은 어떤가?

    = 촛불집회 처음에는 인기 좋았는데, 나중에는 인기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촛불 참가자 중에 노무현 지지자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한테 꼭 “노무현 나쁘다”고 따라다니며 말하더라. 그리고 언제나 가르치는 식이다. 진보신당 가입할 뻔도 했는데, 그건 진중권씨가 나처럼 ‘날라리’였기 때문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보신당 전체적으로는 너무 무겁더라.

    – 촛불집회 이후 유모차 카페에서 정치 이야기도 하고 그러는가?

    = 정치 이야기라 할 정도는 아니고 “재보선 5:0이라 기분 좋아요, 경기도 교육감 돼서 좋아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수준이다. 1만 원짜리 값싼 유기농 아기옷 찾았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도 하고 그런다.

    – 미국산 쇠고기가 결국 정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해결도 정치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 앞에서 얘기한대로 저는 투표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도 교육감 선거 때는 이웃 아줌마들에게 투표하러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고 그랬다. 그러다 보니 투표소에 세 번이나 갔다.

    주경복 후보가 떨어졌을 때는 비통했다. 그렇게라도 한나라당 따라잡았던 게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의 순진한 촛불 참여자들은 그 때 크게 낙담하고, 더 이상 그런 괴로움 당하기 싫어서 많이들 떨어져 나갔을 것 같다.

    – 촛불집회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어떻게 다른가?

    = 아기와 남편이 알레르기가 있어 예전부터 생활협동조합을 했었다. 그런데 그 때는 소비자운동으로서가 아니라, 마켓이라 생각하고 혼자 사 쓰는 거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넉넉치 않은 사람들은 제일 싼 중국산 사 쓰고, 넉넉한 사람들은 제일 비싼 유럽 것 사 쓰고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양적으로는 이미 과잉 소비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래서는 국산 중소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

    유기농이라고 하면 일부에서는 ‘돈지랄’이라 비판하기도 하는데, 불필요하게 과잉 소비하며 반은 버리는 게 아니라, 좋은 생태 상품을 찾아 알뜰히 소비하는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생협을 통해 너무 비싸지 않은 친환경상품을 찾아 쓰며 그런 물건 만드는 중소기업을 살리거나, 멀리 유기농 면이 나오는 인도 땅이라도 살릴 수 있다.

    아이 운동화 살 때, 나이키가 아니라 르까프 사는, 엄마들이 하는 그런 소비운동이 필요하다. 예전의 제가 ‘혼자 좋은 것 먹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같이 좋은 것 먹자’라고 주변에 제안하고 있다.

       
      ▲촛불 당시 유모차 시위대. 손을 든 아이와 ‘아빠’의 동참이 재미있다. 

    이제는 생협 전파자, 하지만 백분토론은 여전히 지루해

    그래도 아직 저는 <PD수첩>, <백분토론>은 지루해서 못 보는 사람이다. 손석희씨가 하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새벽에 인터뷰 하자길래,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거절했었다. 결국 인터뷰하기는 했는데, 그 새벽 라디오 ‘손석희’는 밤 TV ‘손석희’랑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인터뷰에서 잠 덜 깬 목소리로 깔깔 웃고 했더니, “유모차 부대는 한총련 여학생들이 결혼하고 하는 짓”이라던 비판이 쑥 들어가고 “진짜 아무 생각 없는 아줌마”라고 인정해주더라.

    – 이제 촛불1주년이다. 어떤가?

    = 언론에서 자꾸 연락해와서, 요즘에야 1주년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대통령이 바뀐 것도 아니고, 세상이 바뀐 것도 아닌데, 1주년이 무슨 상관이냐.

    – 어떤 사람들은, 촛불이 아무런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헛지랄’이라고도 말한다.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호 외치는 게 목 아파서 싫었던 제가 이제는 정치 이야기도 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미국산 쇠고기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하나 알면 또 하나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고, 실타래처럼 이어지더라.

    며칠 전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촛불 토론회에 참석하신 우익단체 할아버지들이 자신들 ‘알바’ 시간 다됐다고 발언기회 달라고 하다가 말리는 젊은 아가씨 머리채 잡아채고 그랬는데, 그 자리에 있던 정보과 형사들은 몰랐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이렇게 불공정한 법 집행도 이제는 눈에 보인다.

    관심 갖지 않던 사람들에게 관심 갖게 하고, 투표 안 하던 사람들이 투표하게 한 게 촛불이다.

                                                            * * *

    촛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영영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큰 분수령이 대개 그렇듯 촛불은 이제 여러 정치세력과 이념 집단이 다투는 ‘해석 투쟁’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 해석이 어떻든, 지난 1년 사이 ‘일루’는 개인 소비자에서 소비자운동의 전파자로 변모했다. 투표 같은 걸 왜 하는지 의아해하던 그녀가 이웃 아줌마들을 부추겨 투표소로 이끌 만큼 촛불은 전진했다. 그녀가 점점 ‘진화’하는 것과 함께 ‘일루’의 촛불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