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별세, 죽음을 부르는 마음
        2009년 05월 01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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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른 아침에 잔화 한 통에 놀랬습니다.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살고 계셨던 아버님이 숙환인 심장병이 악화돼 뇌졸중(insult)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주었던 여동생의 목소리는 아주 흥분됐어요.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돼 구급병원에 실려 갔을 때에 거기에서 "별 게 아니라"고 하여 안 받아주었는데, 그 몇 시간 뒤에 바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 필자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분노를 느낀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 풀리고 말았어요.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 대접을 못 받는 가난한 노인이란 제 아버지뿐입니까? 제 아버지에게 거절을 한 그 병원 의사도, 나중에 연금생활자가 되고 죽게 되면 똑같은 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 아버지의 별세

    다른 중생들에게 악업을 짓고, 본인도 그걸 그대로 받고… 사람 보기 전에 돈을 보는 게 오늘날 러시아인지라 아버지 역시 그 세상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이제 빨리 러시아 입국 비자를 받고 하루 장례식에 가야 합니다.

    장례식을 빨리 하지 않으면 제 어머니는 시신 보관소에다가 하루에 시신 보관비 5천 루불을 내셔야 하는데, 그게 한 달 연금보다 큰 돈이지요. 시신을 놓고 돈을 버는 것도 좀 재미있는 풍경인데, 저는 이미 이런 일에 대한 분노도 없어요. 사람이란 이제 없고 돈 버는 인간 모양의 기계들만 남은 세계에서 누구보고 분노합니까? 로봇보고 분노하는 것은 어리석음이겠지요.

    대상인데 장남인 저는 많이 슬퍼야 합니다. 저는 사실 슬프긴 하지요. 제 자신에 대해서는요. 이제 아버지의 목소리를 제가 죽기 전까지 못 들을 것이기에 슬픕니다. 뭐, 제가 빨리 가면 되니까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게 불효막심인지 모르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제가 기쁘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수면 중에 고통 없이 돌아가신 것도 천행이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소원대로 된 게 좋은 일입니다. 사실, 아버님은 약 15년 전부터 "죽음을 원한다"는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지만, 요즘 2~3년 간 통화할 때마다 그게 주된 주제이었어요.

    죽음을 손꼽아 기다리신 아버지

    아버지는 죽음을 손꼽아 기다리셨어요. 금년에 72세 되니 꼭 금년에 죽고야 말겠다고 제게 맹세하기도 하셨어요. 이제 본인의 소원대로 됐으니 "가서 쉬십시오, 그리고 되도록이면 여기로 돌아오지 마십시오"라고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님은 언제부터 "죽음"을 부르시기 시작했느냐면, 1990년대 초반에 그 직장이 망하고 나서였습니다. 평생, 30여년 간 하나의 설계소에서 발전소 변전기 설계해오셨는데, 그 직장은 ‘직장’ 이상이었지요. ‘일’은 인생의 전부이었고, 동료는 가족 이상 가까웠습니다.

    한 달이나 되는 소련 시절의 휴가 때에 직장을 못 가셔서 오히려 심심하시고 답답해 하셨던 모습을 많이 봤어요. 하루 빨리 동료들을 보고 ‘일’을 하고픈 욕심이 컸습니다. 그 직장이 소련이 망한 이후에 망하고, 그 건물은 무슨 부동산업자에게 팔리고 동료들은 다 흩어졌을 때에 아버님은 다행히 연세가 많아 바로 연금생활자가 됐지만, 그 뒤로는 인생에 대한 관심을 잃으셨습니다.

    일도 없고 동료도 없는데 왜 사느냐 이것이었습니다. 사실, 자녀 두 명이 외국에 있고 해서 그렇게까지 궁핍하신 것도 아니고 음식과 의복에 부족함이 크게 없으셨는데, ‘직장’ 없는 생활에는 ‘의미’,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그 ‘뜻’이 없어 소련 시절을 회상하거나 죽음을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것이 ‘일’이 됐습니다.

    제 여동생이 사는 핀란드로 몇 번 가셨지만, 외국 여행에도 역시 끝내 무관심하셨더랍니다. ‘직장’이 어차피 거기에서도 없는데 왜 공연히 피곤하게끔 다니느냐 이것이었어요.

    최근에 유선TV에서 한국 등 ‘이국적 나라’에 대한 교양 프로그램을 보시는 재미로 사셨는데, 이제 본인의 소원대로 시신보관소에서 돈을 갈취하는 이곳을 떠나시니 어찌보면 인연에 감사드려야 하는지도 모르지요. 뭐, 감사하든 저주하든 인연은 인연입니다. 우리 감정으로는 우리 업이란 바뀔 일은 없겠어요.

    "북조선이 갑자기 남한의 식민지 되지 않기를"

    제가 이제 며칠 간 장례식 등으로 정신없겠지만, 이 이야기를 한글로 적은 뜻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부처님께, 알라신께 북조선이 제발 갑자기 무너져 남한의 내부 식민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비는 뜻입니다.

    ‘직장’, ‘동무들 사이’를 떠나서 다른 인생을 살 수 없는 제 아버지들은 거기에서 수 백만 명쯤이나 사시는 걸로 압니다. 나라가 없어지고 이 분들의 공업소가 남조선 토지투기꾼들의 차지가 되면 이 분들의 죽음을 부르는 염원은 어느 정도 강하겠습니까?

    스탈린주의를 어떻게 보든 간에, ‘평생 직업’, ‘온정’, ‘직장의 가족들과 같은 동무들’로 돌아가는 사회에 다 적응된 사람은, 국가 혼자서만이 아니고 각자 모두가 자기 몸을 알아서 파는 작은 자본가가 돼야 하는 사회에 다시 적응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사회가 바뀌어도, 좀 천천히, 느슨한 속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북에서 사시는 나이 드신 분들은 남의 땅이 된 자기 나라에서 제 아버지처럼 뜻을 잃고 사시는 모습을 안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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