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대국 건설과 광명성 2호
        2009년 04월 30일 04: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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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연구소’에 쏟아 부은 열정

    북한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한 여인의 회상에서 시작된다. 이 여인(미연)은 셋째 아들을 과학자로 키워냈다. 아들은 자신만만한 패기로 넘쳐나고,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미연은 이를 대견해 하면서도, ‘은근한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 불안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소설은 바로 이 부분에서 리준성에 대한 미연의 회고가 겹쳐진다. 리준성과 정미연은 대학 학과경연대회에서 나란히 1등을 한 사이였다. 특히, 준성은 ‘현미경연구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희망과 정열’이 넘쳐 있었다. 그런데, 촉망받던 준성이 갑자기 연구소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지방에 있는 ‘토끼연구소’에서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미연은 ‘이미 토대를 닦은 이곳을 떠나 새 출발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만류한다. 이 부분에서 북한사회에서도 ‘평양’의 특권적 지위가 얼마나 강한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가급적 평양에 남으려고 하고, 지방으로 가면 주류에서 밀린다는 강한 의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준성은 막무가내로 지방에 있는 ‘토끼연구소’로 떠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아직 가정이 없고 이곳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은 내가 가는게 제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더불어 준성은 “나야 아직 연구분야를 바꾸어도 다시 내달릴 여유가 있지만 나이 많은 연구사들에겐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고려도 포함된다. 일종의 자기 희생이 준성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준성은 지방의 이름 없는 연구사로 연구에 몰두하러 떠난다. 3년후, 미연이 준성을 다시 만난 것은 내각에서 소집한 ‘긴급협의회’에서였다. ‘××닭공장에서 터진 《ㄱ》전염병’으로 인해 속수무책일 때, 준성이 또 다시 결단성을 보인다. 그는 ‘비록 토끼와 말 밖에 다루어보지 못했’지만, “배워서라도 예방약을 만들겠다”고 주장해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준성의 연구는 성공했고 닭 전염병도 씻은 듯이 나았다. 그 준성이 바로 과학자로 성공한 셋째 아들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미연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힌다.

    이 소설은 《조선문학》 2008년 8월호에 실린 배경휘의 「세월의 물음 앞에」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셋째 아들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준성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는 기법을 활용했다. 이 소설은 지금의 북한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현실과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강성대국건설과 광명성 2호

    1998년 8월 22일자 《로동신문》에 정론 「강성대국」에 관한 글이 실리면서, 북한문학은 ‘과학(환상)소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강성대국건설’과 ‘과학소설’의 비중 강화는 북한사회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 5일 발사한 로켓(은하 2호)와 인공위성(광명성 2호)은 북한사회의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쳐 인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주창해온 ‘강성대국건설’이 인공위성을 통해 그 열매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에서는 그 의미를 폄하하기에 여념이 없다. 4월 5일, 실제로 발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인공위성 발사를 미사일 발사로 지칭했다. 어떤 의미에서 로켓과 인공위성 발사는 북한정권의 이중적인 포석이었다. 내부와 외부에 동시에 과학적 성과를 증명하는 것, 이를 통해 북한 체제의 실제적 힘을 과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북한은 <로동신문> 2009년 4월 6일자 1면 사설을 통해 ‘강성대국건설에서 승리의 첫 포성을 울린 위대한 력사적 사변’으로 인공 위성 발사에 의미 부여를 했다. 4월 9일자 <로동신문>을 통해서는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의 성과적 발사를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가 10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8일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4월 17일에는 평안남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함경북도, 량강도에서 군중대회가 개최되었고, 4월 19일에는 시, 군 단위에서 군중대회가 인공위성발사를 축하하는 군중대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은 이번 광명성2호 인공위성 발사를 내부 결속의 중요한 계기로 삼고 있다. <로동신문> 2009년 4월 20일자 1면에 따르면, 북한은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 그간 담론으로만 존재해 왔던 ‘강성대국건설’이 ‘광명성 2호’로 실체화되었음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반면 이를 받아들이는 남한 정부의 태도는 너무 민감하고 적대적이어서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남한에서 이번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남한 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광명성 2호’를 인공위성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을 주권국가로 대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남북관계의 긍정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한 사회가 ‘광명성 2호’ 발사를 자축하는 축제분위기인데, 남한 사회는 전쟁이 임박한 듯한 위기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제반 분야의 협력, 교류 활성화를 통한 서로의 신뢰 회복’에 대해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겼으면 한다.

    현재의 북한 사회는 ‘강성대국건설’ 담론을 ‘광명성 2호’ 발사를 통해 실체화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남한에서 나서서 이를 남북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건으로 만들고 있어 우려스럽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의 PSI 전면 참여에 대해 ‘노골적인 대결포고, 선전포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조선> 2009년 4월 19일자 3면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의 PSI 전면 참여 논의가 ‘6자회담 합의에 구속되지 않고 핵억제력을 포함한 방위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특히, 북한 군부의 반응이 강경하다는 사실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군사대결의 예각화는 또 다른 파국에 대한 전조로 읽힐 수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6자 회담’이 지향하는 바도 군사대결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6자회담은 지속될 필요가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도 남북이 함께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혁명적 낭만주의에 비친 북한의 이면

    북한문학은 북한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북한문학을 읽으면서, 이번 은하-2호 로켓 발사와 광명성 2호 인공위성 발사의 의미를 반추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독 1990년대 후반, 즉 ‘고난의 행군’ 이후에 북한문학에서 ‘과학(환상)소설’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눈에 띤다.

    북한문학에서 ‘과학(환상)소설’은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자연을 정복해나가는 인간들의 활동과 투쟁을 환상적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지칭한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을 통해, 인간이 자연과 사회의 ‘주체적 존재’임을 내세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문학에 나타나는 ‘과학(환상)소설’의 의미를 파악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앞에서 제시한 「세월의 물음 앞에」에서 핵심적 사건은 준성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ㄱ》 전염병’을 퇴치한 것이다. 이는 ‘과학(환상)소설’의 한 특징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과학(환상)소설’에는 혁명적 낭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준성이 한직이나 마찬가지인 지방의 ‘토끼연구소’로 자진해 가는 것이나, 토끼와 말밖에 다루어보지 못한 그가 ‘닭 전염병’ 퇴치를 이뤄낸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과연 세상 일이 인간의 의지, 즉 혁명적 열정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혁명적 낭만주의는 현실적 상황을 간과해 객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주체의 고통을 강요하기도 한다. 주체에게 인간의 의지만을 최우선적인 것으로 제시했을 때, 그 주체는 ‘항상 자신의 의지 결여’를 탓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 낭만주의는 밝은 미래를 예언한다기보다는, 북한 사회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증언한다. 더불어 셋째 아들에 대한 미연의 불안감, 혹은 못미더움이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 사회에 내재해 있는 세대 간의 차이에 대한 기성 세대의 우려를 반영한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우려를 갖기 마련이다.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북한 사회가 객관적 현실 보다는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을 때, 새로운 세대에 대해 갖는 불안의식은 막연한 것이기보다는 실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혁명 1세대와 2세대의 자발적 자기희생에 비해, 제3세대는 ‘과학적 성과’를 산출해도 ‘못 미더운 구석’을 내비치기 마련이다. 이는 북한 사회의 혁명적 기풍에 기반한 운영원리가 연속성을 갖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고 있는가와 관련된 우려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작가는 소설의 제목처럼 ‘세월의 물음 앞에’서 어떤 답변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고민의 해결책은 ‘과거의 혁명적 전통(준성의 모범)’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이고, 그 전통을 현재의 삶의 지표로 삼는 것이다.

    북한문학을 금지하는 사회

    이렇듯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북한사회에 대한 운영의 메커니즘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문학이 북한의 문화예술분야에 차지하는 우월적 지위 때문이기도 하고, 문학과 당의 관계가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문학을 보다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용적 맥락 뿐만 아니라, 문학형식의 변화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북한 사회에서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가도, 북한 문학 작품 읽기를 통해 보다 내밀하게 읽어낼 수 있다. ‘광명성 2호’는 ‘강성대국건설’이 구체적 성과로 선포됨으로써, 북한 사회는 현재 축제분위기에 젖어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문학 연구나 출판에 대한 정부의 제재가 더 심해진 듯하다. 북한 문학을 통해 북한사회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봉쇄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남북 문학인들이 함께 발간하는 《통일문학》은 검열로 만신창이가 된 이후에야 남쪽으로의 반입이 허용되고 있다. 『개마고원』이 아무 제재 없이 남한에서 출간될 수 있는 것, 《통일문학》이 아무 검열 없이 남한에 반입될 수 있는 것, 그것이 그리 힘든 일일까.

    나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기 위해 북한문학을 읽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북한문학’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남한체제에 반대하는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분단시대 남북문학을 아우르려는 한 문학평론가를 옥죄고 있다. 그래도 나는 광화문 우체국 6층의 ‘통일원 자료센터’를 들락거린다. 그리고 북한의 문예지 《조선문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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