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에서 주소없는 희망을 찾아다니다"
        2009년 04월 28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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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기륭전자 신사옥 앞 집회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싸움을 부정하는 어느 중산층 아파트의 주민들을 향해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누구에게 꽃을 바쳐야 하는가를 설득하며 사자후를 쏟아내던 투박한 억양의 노동자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가 바로 오늘 구미에서 만난 코오롱 정리해고분쇄 투쟁위원장 최일배 동지이다. 그들도 구로공단의 여성노동자들처럼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것을 제외하곤 해보지 않은 싸움이 없을 만큼 치열한 투쟁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 구미 코오롱 공장 앞 "정리해고 철회하라" 피켓을 든 질주실천단.

    23일 아침 구미공장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에, 그곳엔 이미 지역의 노동자들이 피켓과 펼침막을 들고 서있었다. 펼침막에는 “코오롱은 신규투자 일자리에 정리해고자 우선 채용하라!”는 내용과 “페놀 방류한 수질오염 배출 기업이 물사업자 진출이 웬말이냐?” 등이 적혀 있었다.

    질주실천단, 구미로 질주하다

    공장 안에는 조폭처럼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정문을 비스듬히 비켜서서 조용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복 경찰 2인이 회사 경비실을 거쳐 나오더니 질주실천단 단원 중의 한사람인 여성노동자를 임의동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도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였다. 회사 측 용역경호 직원으로부터 여성노동자에게 상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실천단의 여성노동자가 돌을 던져 상해를 입었다는 것인데, 우리가 선전전을 진행하는 동안에 개미새끼 한 마리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그들이 지목한 노동자는 정문을 뒤로 하고 반대방향인 큰 길 쪽을 향해 있었다.

    거듭해서 우리는 경찰에게 다쳤다는 사람을 직접 대면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며 상해가 발생했다면 직접 다친 신체부위를 보여줄 것과 돌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 증거물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회사 측 용역직원들은 잠시 후에 절름거리면서 경비실 건물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차량에 옮겨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경찰의 얘기로는 진단서를 떼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던 가운데 벌어진 이 해프닝을 두고 코오롱 정투위의 한 여성노동자는 저들이 한 짓은 자해공갈단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런 일들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자해공갈단들

    그들의 5년 동안의 신산했던 싸움들이 얼마나 고단한 과정이었을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코오롱정투위’에 따르면 코오롱의 정리해고는 당초 “앞으로 인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노사합의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깨면서 시작되었다.

    2005년 2월, 코오롱의 부실경영으로 구미공장에서만 430여명의 노동자가 정규직 일자리를 내놓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렸으며, 임금을 반납했던 78명은 기어이 정리해고 되었다.

    그런데 지난 3월17일 코오롱은 경북도청 대외통상교류관에서 대표이사와 김관용 경북지사, 그리고 구미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구미공장 투자에 따른 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코오롱은 2010년까지 1,500억 원을 투자해 설비를 증설하고 130명을 신규 고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코오롱으로부터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은 당연한 요구로써 근로기준법 25조가 명시하고 있는 신규고용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을 우선채용 해야 한다는 원칙과 법의 정신에 비추어 정리해고 당사자들을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 경찰이 질주실천단에 임의동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 당연한 요구를 걸고 MOU체결 당시 공식적으로 참석했던 시장면담을 촉구하고 구미시가 직접 나서서 코오롱 문제해결의 매듭을 풀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시청 들머리에서 가졌다.

    그런데 민주노총 지역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저들의 130명 신규 고용계획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부는 일자리 확대를 명분으로 코오롱을 포함한 30대 기업으로 하여금 대졸초임 삭감을 유도하고, 지난 3월 12일에는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그 직후에 나온 것이 코오롱과 경상북도의 MOU 체결소식이었다.

    정리해고가 윤리경영?

    그러나 한편에선 코오롱은 법인분리를 통한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오롱의 신규채용 계획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코오롱 기업이 물사업자 지정을 받아 사업확장을 하기 위한 딜이 아닌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켜볼 일이라는 판단을 지역에선 갖고 있었다.

    지난 3월 코오롱이 복지제도 부문 윤리경영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노사화합 선언을 했던 것도 적극 홍보하고 있었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윤리경영을 한다는 기업에서 5년째 거리를 헤매며 복직만을 염원하는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절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 대단한 이른바 윤리경영 기업에선 노동조합 선거에 돈과 향응으로 선관위원을 매수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해 인사팀장이 구속되는 일도 있었고, 더욱 소름끼치는 일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해고자들을 폭력으로 짓밟아온 용역깡패들을 직원으로 고용했다는 경악을 금치 못할 뒤집힌 진실이다.

    그리고 이른바 노사화합 모범사업장이라는 이곳에선 날마다 노조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아무리 상식이 뒤집힌 사회라고 하지만 출근길에 해고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눈 것만으로도 해고사유가 되고 있다니 자본의 탄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반인권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해고자에 인사만 건네도 해고사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고자들의 넉넉한 웃음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런 낙관과 의지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몹시 궁금하여 물었다.

    최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정투위 동지들 하루하루가 모두 힘들지요. 특히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가족에게 짐을 지우는 미안함과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생계의 위협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든든한 힘은 스스로 옳다는 믿음과 서로를 받쳐주는 동지애입니다. 물론 오랜 투쟁을 이어오면서 많은 동지들이 생계를 위해 잠시 떠나 있지만 그 동지들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특히 아내의 이해와 신뢰가 늘 고맙지요. 제 아내 역시 가장 가까운 동지중의 한사람이죠.”

    질주실천단은 점심을 먹고 거리선전전을 즐겁고 유쾌하게 마친 뒤에 한국합섬(HK)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 전국을 누비는 질주실천단의 자전거들

    한국합섬의 투쟁은 구미지역에선 하나의 상징으로서 매우 선구적인 노동자투쟁의 전형을 보여주는 역사가 담겨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현장이다. 94년 노조설립에 이어 96년 노동조합 인정투쟁을 거쳐 총파업의 과정과 노동자의 분신에 이르기까지 노동운동의 처절한 투쟁의 살아있는 기록이기도 했던 곳이란다.

    그런데 이곳이 절망의 공장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 화섬경기 하락과 IMF를 거치며 모기업인 이화섬유가 강제 퇴출되는 과정에서 족벌(부자) 간의 합병이 이루어지고 퇴출기업의 부실채권 730억을 떠안게 됨으로써 발생한 동반부실의 위험과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시작되었다.

    2003년에는 임금삭감 없는 4조 3교대를 쟁취하면서 오히려 인원도 충원하는 힘 있는 단협을 체결했고 아주 모범적인 조합활동으로 노동조합의 대중적 신뢰는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는 것이 전임 사무장의 전언이다.

    구미의 또 다른 투쟁, 한국합섬

    2004년 한합은 부자 간의 지분다툼을 거쳐 아들이 경영권을 장악하여 2005년 12월이 되자 날카롭게 구조조정 압박을 가하며 790명 중 350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예고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2006년 1월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5일 동안 파업을 벌여 직접고용에 합의하고 단협을 체결하지만 사측은 일부 전직 노조간부와 대의원을 매수하여 노노갈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2006년 2월 정리해고 통보와 동시에 희망퇴직을 유도하였다. 이어 3월 11일 회사는 용역깡패 130여명을 투입했으나 600여명의 조합원들이 집결해 깡패들을 쫓아낸다. 이틀 뒤인 3월 13일엔 공장가동이 전면중단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일상투쟁을 전개하여 9월 8일에는 다시 공장가동에 합의하고 임금(기본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후 회사의 부실은 해결되지 않고 결국은 2007년 5월 27일 채권단에 의해 법정관리가 거부됨에 따라 파산에 이르게 된다. 파산 이후 노동자들은 일관되게 일괄매각과 공장재가동, 그리고 M&A시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합섬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공장 5개를 각각 2개 공장과 3개 공장으로 분리매각을 추진했다. 이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합섬 노동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장가동을 통한 재고용 쟁취” 한마디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지극히 소박한 요구를 내려놓지 않고 아프고 시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간담회 자리에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지한 물음들이 이어졌다. 생존의 한계에 서있을 것을 강요받고 있는 비대위원들은 하루하루의 생계를 어떻게 꾸려 가는지. 그리고 빼앗긴 체불임금은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합섬의 노동자들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 일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지역의 민주노조 사업장 동지들이 2천 원씩 모아주는 정성이 있어서 매월 비대위 기금으로 2백20만 원정도 들어온다고… 그래서 기존의 투쟁기금 조금 남은 것 포함해서 60만 원정도의 생계비를 지급한다고… 차라리 질긴 슬픔을 넘어 분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이 무거운 숙제를 육성으로 나누는 가운데 화섬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개별자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국면이라면 지금 총체적인 공황으로 치닫는 현실에 비추어 직접 당사자들이 나서서 국가의 직접책임을 환기하며 국유화를 요구하는 수준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있었고 이에 대해 여러 층위의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으며 비대위 노동자들은 어떤 과제와 요구라도 중요한 것은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며 이런 힘을 바탕으로 그것들을 관철시켜 나가고 쟁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전제일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깊은 질문을 스스로 갈무리하며 구미를 떠나는 저녁에 한국합섬 공장 안에 한 무리의 얼룩무늬 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몸집이 큰 사내들이 보였다. 비대위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다시 용역깡패들이 들어왔다고 무심한 듯 이야기했다.

    이것이 내가 구미에서 본 마지막 풍경이다. “너희가 아닌 우리들의 세상을 향한 질주”는 이제 서산 갯마을의 또 다른 절망의 공장 ‘동희오토’를 찾아 한줌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먼 길을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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