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멈추면 한국경제 '다운'된다"
    By 나난
        2009년 04월 26일 06: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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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40에 70살 된 어머니께서 박스 주워 모은 돈 손 벌려 쓰기 송구스럽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윤xx씨 미안해요. 부인 항암치료 받는데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일을 이렇게 만들어 정말 미안해요.

    영x아 미안하다. 토요일 아기 돌도 못하게 만들어 미안하구나. 정x야, 집주인에게 한 번만 더 사정해 꼭 해결해 드린다고 말씀드려. 기x형 미안해. 지난번에 보내준 돈 20만 원이 마지막이야. 그것도 어머님이 박스 주워 모은 돈이야.”

    지난 16일 분신을 시도한 중국 동포의 유서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그와 그의 동료 15명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받지 못하자, 그는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불태우는 것을 통해 이 같은 현실을 격렬하게 고발했다. 

       
      ▲ 119주년 세계 노도절을 맞아 26일 500여 이주노동자가 생존권 보장 촉구대회를 가졌다. (사진=이은영 기자)

    노동절(5월 1일)을 닷새 앞둔 26일, 국적과 피부색이 제각각인 이주노동자 500여 명이 서울 광교 사거리 영풍문고 앞에 모여 ‘119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 경제위기 하 이주노동자 생존권 보장 촉구대회’를 개최했다. 

    "MB정권, 이주노동자들 ‘개고생’ 시켜"

    올해 노동절은 금요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평일에 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때문에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매년 노동절 전 주 일요일에 기념대회를 가져왔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37개 제 정당 노동 시민단체로 구성된 이주공동행동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공동주최한 이날 대회에서 이들은 “우리나라에는 70만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생활하고 있으나 문화, 언어, 종교적 차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최근의 경제위기 하에서 최저임금이 위협 받는 등 이주노동자에게 사회적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의 "Stop Crackdown"(탄압을 중단하라) 절규 속에 진행된 이날 결의대회는 먼주 네팔 이주여성 활동가와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영 사무처장은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는 TV광고를 빗대 “대한민국 국민과 이주노동자를 개고생 시키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자 이곳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I want labor rights.’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손 피켓을 든 5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하나다”를 외쳤다.

    우삼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공동대표는 “기계처럼 쉬지 않고 일하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의 권리를 달라’고,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달라’고 외쳤던 것이 노동절의 시작”이었으나 “119년이 지난 오늘 안타깝게도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고 전 세계 이주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저임금과 폭력에 노출된 70만명

    우 대표는 “아시아 각국의 노동자를 데려와 한국인이 기피하는 위험한 영역에서 일을 시키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인권보호보다는 기업 이익 창출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라 비난받던 산업연수생 제도에서부터 현재의 고용허가제까지 자본과 기업의 입장에서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는 정책만 계속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주노동자가 ‘침묵하는 노예, 기계 같은 존재’가 아닌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피부색, 언어, 인종과 국적을 넘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여러분의 목소리를 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한국에는 70만에 달하는 외국인․이주노동자가 있다. 한국 노동인구의 3%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월 50~60만 원의 ‘초’저임금과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강제단속, 거기에 최저임금제 2년간 유예 및 개악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지난달 27일 이주노동자에게 기숙사, 주택 등 숙박시설과 하루 두 끼를 제공하면 최저임금의 20%(한 달 18만여 원)까지 월급에서 제외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부담기준’을 마련해 이주노동자의 삶은 더욱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 경제위기하 이주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은영 기자)

       
      ▲ 쿠마리 스리랑카 이주여성 노동자.(사진=이은영 기자)

    이에 쿠마리 스리랑카 이주여성 노동자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때리고, 욕하고, 열심히 일하는 데도 월급에서 20%를 깎는 것 때문에 우리 기분이 어떤지 (한국 정부는) 모른다”며 “우리가 딱 한 달만 일 안 하면 (한국 경제) 다운된다. 부탁한다. 제발 월급에서 20%를 깎지 말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한 달 일 안 하면 한국경제 다운"

    신승철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연대발언을 통해 “한국은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약하고 힘없는 노동자가 끊임없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끝도 없는 경제위기를 자신의 죄인 양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월 1일 한국의 노동자와 함께 했다면 더 기뻤을 것”이라며 “민주노총은 5~6월 힘없고 소외된 이 땅의 억울한 모든 사람이 모여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하며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삼고, 최저임금 개악과 불법단속에 투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필리핀 이주노동자는 “모든 나라에 강타한 경제위기를 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 이런 고통분담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종종 비용절감의 희생양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최저임금법을 개악하고 기숙사비와 식비를 공제하려 한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그는 또 “이 자리에서 우리의 고용주와 한국 정부에 말하고 싶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생존권을 말살하고 있다”며 “경제 위기 하에서 이주노동자를 경제위기의 희생물로 삼는 한국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이주노동자의 대동단결과 연대를 통해 의연하게 투쟁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이들은 △경제위기 책임전가․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삭감 반대 △사업장 이동 제한과 구직기간 제한 폐지 △이주노동자 폭력적 단속 추방 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반인권적․인종차별적 단속 정당화 출입국관리법 개악 반대 △재외동포법 전면 시행과 자유왕래 보장 △한국 정부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즉각 비준 등을 요구했다.

       
      ▲ 노동절 기념 대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

       
      ▲ 이주노동자의 국민연금 권리를 주장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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