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티 민족주의’의 의미?
        2009년 04월 24일 04: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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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쓰지만, 이제 내일 새벽이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거주지인 노르웨이로 가렵니다. 국내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또 거의 모든 시간을 학회를 하느라 보낸 관계로 산에도 갈 틈이 안나 속상해 죽을 지경입니다. 거기에다 미하일박 스승님의 별세 소식에 따른 충격과, 학회 하느라 몸이 피곤해져 살인적 독감에 걸린 사정까지 가미돼서 참 좋지 않은 심신의 상태로 조국을 떠나는 것입니다.

       
      ▲ 필자

    그러나 독감보다도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제가 참여한 학회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앞으로 공부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라는 데에 대한 근본적 의문들입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아 신세를 많이 진 그 학회는 ‘트랜스내셔날’, 즉 ‘국민/민족’을 초월하는 역사쓰기에 관한 이야기로 관통됐습니다.

    그 대의에 대해서야 저는 예나 지금이나 대찬성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이란 원래 ‘국지적 특수성’과 ‘세계 보편성’을 아우르는 걸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고, 원칙상 민족주의와 대립의 각을 세우게 돼 있습니다.

    단국 신화 조롱했던 백남운

    단군 신화를 조롱하는 1930년대의 너무나 멋진 백남운 선생을 생각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젠가 나이 좀 더 들어 한국 고대사의 대안적 교과서를 쓰게 되면 물론 현재의 교과서와 달리 백촌강 대첩에 참여한 왜인 군대에 대한 이야기, 패망하여 왜국으로 망명한 백제 귀족 가문 이야기, 7세기의 마지막 30년 내내 일본에 거의 매년 사절을 보냈던 신라의 대왜 관계 이야기, 불국사와 일본 동대사의 구조적 흡사성 이야기 등등을 자세히 쓸 것입니다.

    사실, 아예 ‘국사’를 과감히 없애고 한-중-일-베트남의 역사를 같이 가르치는 게 제게 제일로 편합니다. 그러한 측면이 있기에 ‘트랜스내셔날 역사쓰기’ 학회 이야기를 듣자마자 당장에 참석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일본, 중국 학자로부터 너무나 많은 소중한 지식을 배운 바 있어 좀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와세다대의 이성시 교수와 같은 일본 석학들을 모신 주최 측에 대단히 감사할 뿐이지요.

    그런데 학문적 담론의 범위를 넘어 ‘현실’을 직시하면 이 ‘트랜스내셔날’, 즉 ‘안티 민족주의’ 화두는 과연 어디까지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학문이야 애당초부터 당연히 ‘국제적’일 수밖에 없지요. 역사뿐만 아니고, 자연과학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예컨대 첨단 물리학이나 수학에 대한 논문을 세계의 다수의 동료들이 접할 수 있게 영어로 써서 인터넷에 올리는 건 당연한 절차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수의 피지배층들이 ‘국민/민족’의 범주에 갇혀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본인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받은 교육도 있고, 또 현실적으로 국가 단위로 짜여 있는 노동시장에 갇혀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실직한 비정규직이 ‘세계 시민’ 되려면? 불법 체류!

    실직한 부산의 비정규직에게 ‘세계 시민’이 되는 지름길이란 사실 일본에 가서 불법 체류하면서 막노동하는 것인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쪽에서 ‘시민’이라도 될 수 있습니까? 그게 문제지요.

       
      

    즉, 학회 토론장에서 “민족주의가 단세포적이다”라는 말을 백 번 외워도 학교 교육을 장악하는 국가도 미동도 하지 않겠지만, 국가 별로 구성된 노동 시장을 관리하는 각국 출입국사무소들도 움직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트랜스내셔날’ 논리가 실천이 되자면 한국과 그 주변 국가에서 ‘세계 피지배층 연대’에 친화적인 정치세력이 국가 권력 탈환을 생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라나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그리고 사민주의 우파가 권력을 갖고 있거나 나누어 갖는 영국, 독일 등의 나라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온건 좌파를 자칭하는 세력들이 국가를 장악한다 해도 ‘타자’에 대한 태도가 꼭 ‘트랜스내셔날화’되지도 않아요. 유럽 연합 밖으로부터의 노동이민을 제한하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아무리 ‘안티 민족주의’를 신조로 삼아도 국민 국가가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는 바뀌지는 않지요.

    그리고 과연 ‘민족주의’는 이 체제의 주된 이데올로기라고 봐야 합니까? 체제에 의해서 주로 ‘국가주의’라는 형태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게 표방하는 이념뿐이지 체제의 속살은 아니에요. 이윤 추구라는 이 체제의 근본적 작동 원칙에 맞기만 하면 이 체제는 민족이고 국민이고 다 팽개칩니다.

    사민주의 우파 나라들의 허울뿐인 ‘국제주의’

    ‘특별히 도움되는’ 교포 내지 외국인에 한해서 이중 국적을 허용하자는 논의를 보셔도 아실 것이고, 과거가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일본 기업을 끌어들여 우주항공산업 개발을 하는 모습도 보실 만합니다. 실제로는 예컨대 한국의 출입국관리 시스템은 각종 명칭 (외국인 등록증 등등)부터 시작해서 철저하게 일본 모델에 따라 짜여진, 아주 ‘국제적’ 시스템이지요.

    한미 FTA를 봐도 아시겠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국가 제소’ 등 일정 정도의 ‘準주권 포기’를 각오하면서도 한국 지배자들의 상당 부분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미국에서의 자동차 매상고를 올리려 합니다.

    뭐, 자본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트랜스내셔날 역사쓰기’에 대한 세미나도 잘도 지원합니다. 어차피 현실과 직결된 이야기도 아닌데, 저명한 외국 학자들을 모셔서 잘 대접하면 뭐가 나쁘냐는 논리지요.

    이 체제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 되는 것은 ‘안티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안티 자본주의’인데, 후자에 대한 학술적 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들을 국내에서 점점 고사시키려고 노력할 듯합니다. ‘트랜스내셔날’ 담론은 이 체제의 좋은 악세사리가 될 수도 있지만 자본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바로 ‘이적 행위’지요.

    하여간,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제가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체질적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제 ‘민족’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지도 않고 각국 피지배계층들을 ‘민족’/‘국민’ 별로 줄세우는 것도 우스운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민족주의’라는 게 자본주의의 ‘파생상품’일 뿐이지 이 체제의 본질은 절대 아닙니다. 본질적 문제란 여전히 계급 문제와 군사주의적 폭력 등 체제의 현실적 작동 논리와 직결돼 있는 문제들이죠.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라도 단순히 ‘국사’라는 개념을 포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할 듯합니다.

    동아시아 역사를 써도 계급, 계층간의 갈등, 투쟁, 포섭, 상호작용의 역사이어야 할 듯하고, 국가와 자본의 폭력적 본질을 직시케 하는 역사이어야 하지요. 과로사 당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서 “너무 피곤해 죽을 것 같아”라는 몸의 경고를 계속 받아도 감히 직장을 떠날 수 없는 일본, 한국, 중국 노동자의 피땀의 역사이어야 하지요.

    그런데 그러한 역사쓰기 토론을 위해서 지원금을 신청하면 노르웨이 정도면 모를까, 그것도 ‘외국’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응해줄 국가라고는 세상에 많이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번 회의를 조직하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부터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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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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