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디 앨런은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
        2009년 04월 24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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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영화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한다. 그 영화 어때? 뭐에 대한 영화야? 볼만해? TV나 인터넷을 통해 제 집에 콕 박혀서 즐기는 영상 문화가 대세라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은 새로 나온 영화를 다른 이들과 어울려 극장에 가서 보는 재미도 여전히 쏠쏠해 하기 때문에 뭔가 색다른 영화에 대해서는 더 궁금해 한다.

       
      ▲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포스터

    정보가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시대에 걸맞게 정보를 담아내는 미디어의 틀도 참 다양하다. 그래서 신문이며, 잡지, TV 정보 프로그램, 인터넷 포털 사이트 뿐 아니라 나름 해박한 정보력과 지식을 갖춘 개인 블로거들까지 영화에 대해 쏟아내는 정보량도 만만치 않다.

    영화 소식을 처음 접하는 곳과 그 의미

    사람들이 어떤 영화에 대해 물어올 때는 이미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뭔가 궁금한 게 생겼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기본적인 정보는 영화 제작사나 수입사, 배급사 같은 이해 당사자 쪽에서 자기네 영화 좀 잘 팔아 되도록 많은 수익을 내보려는 요량에서 언론사에 돌리는 보도자료를 통해 걸러진다.

    보도자료에 담긴 기본정보는 소개하려는 영화의 의미나 가치보다는 제목, 감독, 출연진, 수상내역, 화젯거리 등등 영화에 대해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지기 십상이다.

    흥행 좀 되겠다 싶은 영화라면 개봉을 앞두고 제작 발표회며, 배급 시사회, 기자 시사회 따위 미디어에 노출되기 좋은 여러 이벤트로 미디어에 대한 낚시질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언론사들도 여기에 화답해서 영화를 보지는 않았더라도 어차피 의무적으로 채워야하는 문화면 영화 관련 꼭지를 내어준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일차적으로 알게 되는 정보라는 건 마케팅 차원에서 흘러나온 상품 소개며 광고인 것이다.

    영화 내용을 배반하는 제목

    사정이 그렇다보니 온갖 매체의 수많은 정보를 통해 어떤 영화에 대해 기본적인 소개를 받고 나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영화에 대해 미심쩍어한다. 그런 미심쩍음을 더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는 뜬금없는 포스터나 제목도 한몫을 한다.

    가령, 요즘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영화가 그렇다. 국내 개봉 제목으로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배우가 갖춘 연기력이며 매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스페인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올해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그런데 국내 개봉 제목으로는 이게 무슨 영화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가보다.

       
      ▲ 영화의 한 장면

    제목만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 결혼문화로 승인되는 일부일처제 문화권에 대한 도발이거나 성적 자유의 극단을 밀어붙이는 양성애를 지지하는 영화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국내 관람등급은 제목이나 어림짐작에 비해 꽤나 관대한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으니 이 영화 도대체 뭔가 싶기도 하겠다.

    홍보용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남자 주인공 하비에르 바르뎀이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뒤에서 안긴 자세로 ‘난 사랑만 있으면 셋도 O.K.’라는 말풍선을 달고 웃고 있다. 그 남자의 목을 뒤에서 안고 있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말풍선에는 ‘둘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더 뜨거워져’

    그리고 맨 앞에서 뒤에 있는 그 둘을 흘깃 쳐다보는 스칼렛 요한슨에게는 ‘로맨스라면 고통도 더 달콤해’라는 말풍선이 달려있다. 뭔가 지독한 성애 영화의 결정판일 것 같다. 한 술 더 떠 메인 카피는 ‘둘이 하면 로맨틱하고 셋이면… 환상적일까?’란다. 하기는 뭘?

    우디 앨런은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

    세간의 정상적, 합법적 이성관계에 대해 늘 시큰둥한 영화를 만들면서 삐딱선을 타는 영화를 만들어왔고 그 자신이 가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스캔들 메이커이기는 해도 보기에 화끈한 육체적 쾌락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는 그닥 열을 올리지 않았던 우디 앨런이 일흔도 넘은 나이에, 물리적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갑자기 에로티시즘으로 발언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라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기대를 품고 막상 영화를 봤다면 ‘속았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알고보면 우디 앨런은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 이 영화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Vicky, Cristina, Barcelona>다. 그리고 이 제목에 영화가 담고 있는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수상한 제목의 이 영화가 정작 보여주는 것은 비키와 크리스티나라는 두 젊고 아리따운 미국 처자가 감각적인 고장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여름 한철 동안 겪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절친한 사이지만 이성 관계에 대해서만은 확실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바르셀로나라는 낯설고 흥분되는 고장에서 관광객의 시선으로 어떻게 그 지역과 문화를 소비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 영화의 한 장면

    인물이며 체구가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우디 앨런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가지고 싶은 외모를 지녔을 듯한 레베카 홀이 배역을 맡은 비키는 딱 우디 앨런스럽게 내숭과 욕망 사이에서 주저주저하면서 자기는 카탈로니아 지방을 연구하러 온 거지 즐기러 온 게 아니라고 내숭을 떤다.

    아찔한 유혹, 깍듯한 예절, 낭만적 예술

    그 동안 우디 앨런이 남성의 시선으로 빠져들고 싶은 여성상을 갖춰서인지 몇 번이고 영화에 끌어들이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크리스티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실컷 즐기면서 풀어버리고자 한다. 그 둘을 끌어들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장점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 휴가지 특유의 아름답고 풍요로우면서도 부담없는 일탈에 있다.

    그 부담없는 일탈을 두 여성으로부터 이끌어내려면 매력있는 남성성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 역할을 떠맡은 이가 아찔한 유혹, 깍듯한 예절, 낭만적 예술의 현신 역할을 떠맡고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화가 후안 안토니오 곤잘로다.

    그런데 여행의 일탈로 들뜬 두 미국 아가씨들에게 진짜 스페인, 진짜 문화, 진짜 자기 자신을 보고 느끼라고 행패를 부리며 진짜 스페인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나타난다. 후안 안토니오 곤잘레스의 이혼한 아내 마리아 엘레나는 너희가 스페인에 왔으면 스페인을 제대로 경험하고 머물면서 사랑해보라고 한다. 이 멋지고 당당한 여자가 바로 한국어 제목에 생뚱맞게 등장한 ‘내 남자의 아내’인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제목은 그 누구의 남자도 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유혹과 그 유혹의 경험에서 얻은 영감을 예술의 원천으로 삼던 후안 안토니오 곤잘로를 영화를 보기도 전에 관객들에게 누군가의 ‘내 남자’로 만들어 버린다.

    마케팅의 횡포

       
      ▲ 영화의 한 장면

    그리고 기존 스페인 문화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고 관광객의 시선에서 스스로의 매력을 발견하는 후안 안토니오 곤잘로를 비난하는 진짜 스페인 예술가 마리아 엘레나를 ‘내 남자의 아내’로 만드는 순간, 영화는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겪은 바르셀로나 이야기, 그곳을 떠나는 비키와 크리스티나의 열패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크리스티나의 일인칭 시점에 갇힌 성애 영화로 바뀌어버린다.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겠다며 이들의 이야기를 남 얘기처럼 주절주절 읊어주던 남성 나레이터, 아마도 감독인 우디 앨런 자신의 속마음을 들려주던 목소리는 제목에서부터 배제된다.

    영화에서 바르셀로나가 두 미국 아가씨 비키와 크리스티나에게 짜릿한 일탈과 씁쓸한 열패감을 안겨주고 그저 근사한 경치, 가우디의 건축, 미로의 조각, 스페인 음악과 음식 따위 관광자원으로 소비되어 버린 채 남겨지듯,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한국식 마케팅은 영화를 도발적인 제목과 홍보문구를 빌어 매력적인 여배우들의 외모와 비정상적 남녀관계로 소비해 버린다.

    원제가 난해한 문구도 아니고, 영어 특유의 중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닌 명명백백한 사람의 이름과 지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함부로 끈적끈적하게 바꾸어버린 마케팅의 무작스러운 횡포 때문에 아마도 이 영화는 앞으로 얻은 관객수보다 뒤로 잃은 관객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뭐 어차피 우디 앨런 자신도 영화를 통해 씁쓸하게 바르셀로나를 소비하고 떠나갔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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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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