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들이 죽어야 한 이유
        2009년 04월 22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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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1

    이달 초 고리의 사채를 빌려준 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유흥업소에 취업시켜 화대를 챙긴 사채업자들이 구속됐다. 이 업자들의 피해자들 가운데 여대생이 있었다.

       

    그 여대생은 학비 마련을 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작은 판매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업자금으로 사채업자에게 300만 원을 빌렸다. 선수수료를 떼고 265만 원이 입금됐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한 달여가 지나자 일수가 밀리기 시작했다. 업자는 다시 대출을 받아 남은 빚을 갚으라고 했다. 대출을 더 받았다. 그것을 갚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고, 또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반 년이 지나자 매일 갚아야 할 돈이 55만 원으로 불어났다.

    그때쯤 됐을 때 사채업자들의 협박이 시작됐다. 견디지 못한 학생은 결국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갚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학생은 아버지에게 사정을 털어놨다. 이때 빚은 7,000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그 돈을 갚아줄 테니 딸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딸은 대출 과정에서 다른 대출자들과 연쇄적으로 맞보증을 선 상태였다. 자기 빚만 갚고 혼자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딸의 목을 졸라 죽이고, 이틀 후 자신도 목을 매 딸의 뒤를 따랐다. 여학생이 죽은 후 사채업자들은 다른 보증자들에게 그 여학생의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 죽음 2

    3월 말일에 한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매체들은 보이스 피싱의 실태와 폐해에 대한 기획기사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그 사건에서 짚어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숨진 보이스 피싱 피해자는 여학생이었다. 그녀가 당한 피해액은 650만 원이었다. 이 돈은 바로 그녀가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다음 학기의 등록금과 생활비였다. 그녀는 보이스 피싱에 속은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을 그런 극한 상황에 밀어 넣은 건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한국 사회가 진작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 등록금 제도를 폐지하고, 학생 생활비를 보조하는 교육복지제도를 완비했어도 그녀가 죽어야 했을까?

       
      ▲ 사채광고는 유명 연예인들까지 동원해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에 버젓이 등장한지 오래다

    서북부 유럽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제도들을 실행해왔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미국인 출연자가 자기 나라의 고액 등록금을 한탄할 때, 핀란드 출연자는 자기 나라엔 등록금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인을 경악시켰다. 한국은 미국식 체제를 추종한다. 바로 그런 한국이 그녀를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고 결국 죽인 것이다.

    정 떨어지는 나라

    올 1월엔 미국의 한 여대생이 자신의 처녀성을 판다는 광고를 냈었다. 그 돈으로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겠다는 것이다. 그녀의 언니도 매춘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아주 특이한 경우지만, 미국 대학생의 다수가 막대한 등록금 부담으로 빚쟁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졸업하자마자 일단 몸을 팔아(즉, 아무 곳에라도 취직해)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자기계발이나 자아실현같은 것은 사치일 뿐이다.

    대학뿐만이 아니다.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들의 등록금도 엄청나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나온 초우트 로즈메리 홀은 연간 4만 달러 이상이 든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밀턴 아카데미도 그 정도 수준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나온 필립스 아카데미는 4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없는 집 자식은 몸을 팔아도 대기 힘든 돈이다.

    작년에 유사성매매 업소들을 취재한 한 취재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막상 취재해보니 여대생의 수가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방학 때 유흥업계에 여대생들이 넘쳐난다는 속설도 있다.

    미국식 모델을 쫓아가는 한국 사회가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죽음으로 내몰면서 몸까지 팔게 하는 것이다.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 대학생 신용불량자 수가 15배 늘었다. 2005년부터 2008년 사이에 학자금대출 연체액은 17배 늘었다. 같은 기간 등록금은 폭등했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고, 일터로 내몰리는 학생들을 다시 공부하게 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가? 아니다. 부자들에게 혜택의 대부분이 돌아가는 감세의 일부만 고등교육재정으로 돌려도 등록금의 혁명적 인하, 나아가 무상교육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감세가 추진될 뿐이다.

    국가가 고등교육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은 그 어린 학생들의 생명력을 조금씩 모아 부자들에게 퍼주는 것과 같다. 단돈 몇 백만 원 때문에 학생들이 죽고, 몸을 팔도록 국가가 자린고비 노릇을 한 대가로 부자들은 엄청난 감세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은 가만히 있다. 등록금 조금만 깎아달라고 삭발하며 눈물 흘리는 ‘일부 운동권 학생들’ 말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세상은 조용하다. 즉, 한국인은 지금 학생 학살극을 방조하고 있다. 정 떨어지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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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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