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비뽑기는 슬픈 코미디”
        2009년 04월 21일 0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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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뽑기와 민주주의

    제비뽑기가 선거보다 민주적이고 공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의 경우 후보자가 속한 정파 규모가 당락을 결정했었다는 점에서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로 지도부를 선출했다면 분당은 없었을 것이다.

    제비뽑기는 지도자와 구성원을 동등하게 만들어 주고, 새로운 인물의 충원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라는 측면에서 제비뽑기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일 수 있다.

    제비뽑기의 한계와 모순

    문제는 민주적 제도로써 제비뽑기가 갖고 있는 전제조건에 있다. 모든 구성원이 아니라 일정한 자질을 갖고 있는 구성원들만 제비뽑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여성과 노예를 제외했던 것처럼,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제비뽑기가 이루어진다면 그와 같은 자격조건 설정이 불가피 할 것이다.

    제비뽑기는 순번제와 병행할 때에만 민주적이다. 특히 제한적인 경쟁조건에서 동일 인물이 다시 선출된다면 제비뽑기의 원칙에 반한다. 즉, 다음 번에는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다른 사람이 선출되어야 한다는 합의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양자의 사전 조율을 언급했던 조국 교수의 제안은 김민웅 교수의 제안보다 현실적이다.

    보다 큰 문제는 제비뽑기가 동질한 집단 내에서 이루어질 경우에만 유력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차이에서 정당성을 찾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제비뽑기는 몰아주기에 다름 아니다.

    정견을 같이하는 정당 내에서도 다양한 정파들이 상이한 정책으로 경쟁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제비뽑기는 동문회와 향우회 같은 조직에서만 그것도 제한적으로만 가능한 제도이다. 만약 부평에서 반MB연대를 위한 제비뽑기를 진행한다면, 그야말로 코미디일 것이다.

    진보단일화는 국민이 원하는 진보후보 선출과정

    진보단일화는 진보세력들이 원하는 후보를 국민들에게 강권하는 절차가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진보후보를 국민들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일정한 자격요건을 충족한 ‘아무’ 진보후보가 아니라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론조사가 일시적인 경향을 반영한다는 불신처럼 진보단일화시 승리한다는 것도 여론조사에 의한 불확실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즉,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최종 선택권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여론 수렴을 통해 선택될 수밖에 없다.

    진보의 공존을 위한 진통은 불가피

    울산 북구에서 단일화 과정은 향후 양 진보정당이 공존하는 방식, 즉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의 과정이다. 제비뽑기로 후보를 뽑는다면 양당은 차기 지방선거 또는 차기 총선에서 보다 큰 대가를 치루면서 공존과 연대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서울시장과 대선에 출마할 수많은 진보후보를 모아놓고 제비뽑기를 진행하는 것은 눈물이 흐를 만큼 웃긴 일이다. 차기 총선에서 양 진보정당은 제비뽑기에 당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특히 정당의 정책을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예비후보들 간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정책경쟁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양당 통합이 아닌 연대

    김민웅 교수는 왜 단일화가 되지 않는가를 기술적인 문제로만 바라보고 양자의 차이를 애써 부정하고 있다. 두 진보정당의 공존과 연대는 불가능한가?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참여연대와 환경연합과 같은 수많은 시민단체들에 대한 통합논의는 왜 진행되지 않는 것일까?

    진보세력의 과제는 차이의 소멸에 기초한 통합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 즉, 차이에 대한 존중 속에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연대의 가능성과 방식을 찾는 과정에서 울산 단일화 논의와 같은 진통을 피해갈 수 없다. 단일화의 가장 급진적인 방식은 진보단일후보를 후보자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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