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만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By 나난
        2009년 04월 21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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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발생 피해자들이 21일 산업재해 결정을 촉구하며 증언대회를 가졌다.(사진=노동과세계)

    “제가 살아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치료받을 수 있게 산재 인정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근로복지공단이 “자체적으로 판단이 어려운 사안”이라며 산재 인정을 지연시키고 있는 가운데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반올림)가 산업재해 결정을 촉구하며 21일 오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피해노동자 증언대회를 가졌다.

    피해자 22명, 사망자 10여 명

    삼성LCD에서 일하다 2005년 소뇌부 뇌종양(상의세포종)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한혜경(32)씨의 어머니 이시녀(51)씨는 증언발언에서 “자식으로 떼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며 “걱정 없이 치료만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병은 현재까지 조사된 피해자만 22명. 사망자만 10여 명에 달한다.

    이날 반올림은 입장발표를 통해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되는 수십 수백의 화학물질과 방사선, 유해가스 등에 의한 직업병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밝혀지고 있다”며 “백혈병과 림프종 외에 희귀암과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 다발성신경염, 사구체신염 등 다양한 피해사례가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착용하는 방진복은 사람의 땀이 밖으로 배출되는 것은 막아도 외부의 물질, 하물며 물이 묻어도 피부에 바로 와닿는다”며 “방진복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1년간 삼성반도체에서 일해온 정 씨는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지독한 화학물질 냄새와 펌프 등의 엄청난 소음에 노출되며 여성노동자들은 유산이나 생리불순에 시달리고 있다”며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교육 한 번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5년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현재 투병 중인 김옥이(41)씨는 “입사 후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한 달에 하루 이틀 쉬어가며 일한 결과가 백혈병”이라며 “의료보험 혜택도 안 돼 하루 검사비만 60~70만 원이 든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 34일간 진행된 1차 항암치료에서만 2천여만 원의 치료비가 들었다. 백혈구 수혈을 받을 경우 한 번에 300~400만 원이 든다. 그는 “병이 재발이라도 되면 치료할 돈이 없다”며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산재신청을 인정해 달라”로 호소했다.

       
      ▲ 삼성LCD에서 일하다 2005년 소뇌부 뇌종양으로 지체장애1급 판정을 받은 한혜경씨.(사진=노동과세계)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2007년 6월 사망한 고 황유미씨 가족의 산재신청 및 고 황민웅, 고 이숙영씨 가족과 투병 중인 박지연, 김옥이씨 등의 산재신청에 대해 길게는 2년 가까이 산재인정 여부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근로복지공단 의뢰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반도체산업 제조공정 근로자의 건강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 여성노동자는 비호지킨 림프종 발생위험이 일반인의 2.6배고, 이 가운데 조립공정 생산직 여성은 5.16배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쟁점이 됐던 백혈병의 발생, 사망 위험도는 일반인의 1.48배, 발병위험은 1.31배로 나타나 “백혈병과 업무사이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근로복지공단, 판정 차일피일

    하지만 이 결과는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백혈병 환자가 다수 발병한 삼성반도체 1~3라인 생산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세부조사가 빠진 것으로, 실제 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과 비교하면 수치는 더욱 높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기에 근로복지공단은 현재 온양공장이 리모델링 중에 있는 것을 이유로 “근무할 당시의 환경이 없어져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고, 산안공단의 역학조사 결과가 애매하다”며 ‘자문의사 협의회’를 구성해 산재 여부를 5월에 최종 결정하겠다며 답변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가해 당사자인 삼성반도체는 유족들과 피해 노동자가 산재신청에 나서자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사건을 은폐하더니 이제는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병률이 낮아 업무와 연관된 것이 아닌 개인질병 때문”이라며 뒷짐 지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반올림은 “보통 산재 신청 1년 안에 처분이 내려짐에도 백혈병 피해자들의 경우 신청 2년이 돼가도록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냐”며 “결국 산재 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현재 △ 자문의사협의회 개최 시도 즉각 철회 △역학조사보고서 당사자 공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수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노동부는 지난 1일 반도체 사업장의 산업보건 임시 점검 등 건강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백혈병과 조혈기계에 영향이 있다고 알려진 방사선, 아르신 등 유해인자에 대해 정밀측정을 실시해 노출 수준에 대한 평가와 반도체 제조공정의 산업보건 매뉴얼을 개발해 체계적인 보건관리 지원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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