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욱식이 바라보는 ‘거대한 그물망’
        2009년 04월 21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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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나오기 불과 며칠 전인 지난 4월 5일 북한이 인공위성을 탑재한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로켓 발사는 유엔결의안 1718호 위반이라며 비난하고 대북 제재를 되살릴 수 있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6자회담 불참과 동 회담의 합의사항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핵 시설의 재가동과 IAEA 요원 등의 추방이라는 초강경조치를 취했다. 북한으로서는 자신이 가진 패가 단지 핵뿐만 아니라 미사일도 있으며, 국제사회의 반응을 충분히 예측하면서도 발사 강행을 통해 6자회담이라고 하는 게임의 장 자체를 북미직접대화로 바꾸려고 하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동기를 갖고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행위는 비단 남한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동유럽 등에서의 MD배치 반대 움직임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 그런데 북한의 지도부는 자신의 행위가 유라시아 대륙 저 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에 대한 대응은 다시 자신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를 생각했을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가 <동아일보> 인터넷판에 실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에 쏟는 정도의 관심을 북한에 보여주지 않는다며 노기를 드러냈다는 중국 당국자의 전언과 관련한 기사이다.

    김정일의 분노, 오바마의 무관심에 대한

    오바마 대선 캠프 외교자문위원을 지낸 마크 긴즈버그 전 모로코 주재 미국 대사가 인터넷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인용 보도한 것인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이란 등에 쏠린 미국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 임기 초부터 오바마 행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문제에 임하도록 하기 위한 동기에서 로켓을 발사한다는 예측 혹은 분석 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협상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 김 위원장이 이란 문제와 동격으로 북한 문제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역정을 낸다면 그건 다소 실망스럽다.

    사람은 모두 자신과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제일 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국제관계의 게임에서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베팅은 종종 엉뚱한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그 예로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 저자 정욱식은 이라크전에 대한 한국군의 파병을 든다. 미국에 협조함으로써 북한 핵문제에 대한 지렛대로 삼으려 했던 한국 정부 당국의 행동과 언사는 “동맹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는 파월의 핀잔이나 들어야했다.

    부시 행정부의 북한 핵문제, 혹은 북한에 대한 접근의 전환은 한국군 파병을 통해 기여하고자 했던 이라크의 안정화가 아니라, 오히려 이라크의 수렁화와 그에 따른 네오콘의 퇴조에 기인한 것이라며 저자는 ‘거대한 그물망’의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의 문제를 제대로 볼 것을 제안한다.

    국제체제의 속성이 가장 중요한 변수다, 단극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므로 미국이라는 틀을 통해 한반도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소리는 얼핏 (신)현실주의 등 국제정치학계의 주류학자들이 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나 주류 학자들이 미국의 세계전략을 움직일 수 없는 상수로 놓고 그에 약소국이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논한다면, 저자는 부시가 꿈꾼 제국적 질서와 행위가 다른 행위자들의 강한 반발 등을 가져와 오히려 제국의 몰락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몰락인지 일시적 위기인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기 발 경제위기의 깊이와 앞날에 달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전과 미국의 대북 정책, 한국군 파병의 3각관계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미국 외의 행위자도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 있지만, 어떻게 했을 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현재는 그 그물망이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동유럽의 MD 등의 사례를 들어 자세히 조망해준다. 그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의 여파를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분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장거리 로켓 발사 이전에 북한의 지도부가 이 책을 보았다면 그런 상호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2012년, “바보야, 문제는 안보야!”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의 상호연관성 증대라는 공간적 접근 외에도 저자는 2012년을 중심으로 미래와 현재 사이의 대화를 시도한다. 저자가 2012년이라는 시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북한이 그 해를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2012년은 한반도의 남쪽에서도 총선과 대선이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선과 러시아의 대선이 있고 중국은 후진타오를 대신해 시진핑이 전면에 나서고, 대만에서도 총통 선거가 실시되는 권력의 이행기이다.

       
      ▲ 책 표지

    그리고 저자가 ‘부시가 쏜 화살’이라고 칭한 폴란드, 체코 등에의 MD 시설 배치가 완료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에 대응해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재배치 등을 공언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제2의 냉전으로 악화되거나,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상당한 긴장관계로 전환된다면 오바마는 ‘검은 카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안보야!”라며 제 2의 레이건이 집권할 경우의 문제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저자는 ‘2012년 체제’가 그런 악몽이 현실화되는 우울한 미래가 될 수도 있고, 한반도 평화체제, 북핵 문제 해결,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협의의 2012년 체제’ 나아가 남북관계의 연합제 수준 발전, 북한의 ‘선군정치’로부터 ‘선민정치’로의 전환, 동북아 차원의 평화안보체제의 기틀이 마련되는 ‘광의의 2012년 체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것인가의 관건이 누구에게 달려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는 다소 혼란스럽다. 결론부에서는 한반도의 선택이 관건이라며 2012년 체제의 기회를 유실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외 정책의 문제점을 안타까워한다.

    발상을 전환하면 김대중과 노무현도 이룩하지 못한 정전체제의 (당연히 북핵 위기 등 안보문제의 해결을 포함하는)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하는 주역이 될 수도 있는데 그 기회를 발로 차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행태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저자의 가상시나리오의 주역은 이명박과 김정일이 아닌 오바마이다.

    MB가 평화와 통일의 주역이 되기보다는 제2의 YS가 되는 것은 자신의 선호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한국의 시민들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장에서 철저히 국외자로 머무는 데도 불구하고, 경제적 부담이나 크게 뒤집어쓰는 것에 분통을 토하는 90년대의 경험이나 되풀이해야 하는가?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지는 와중에도 부시를 재선시켜 주었던 2004년의 미국 시민의 꼴을 되풀이 할 것인가?

    아니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압승을 안겨 네오콘을 위축시킨 2006년과, 오바마라는 ‘검은 루스벨트’를 선택한 2008년의 미국의 시민을 따라 배울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이라크의 수렁화에 따른 네오콘의 쇠퇴와 그에 따른 대북정책의 변화를 직시하면서도 2004년과 달라진 미국의 여론의 변화 혹은 대중의 선택의 변화를 강조하거나 그 원인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고 있기에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층적 변수 제기했지만, 실제 분석은 그에 못미쳐

    오바마의 외교 안보정책을 분석하고 전망할 때 다층적 변수를 봐야한다고 하면서도 그의 선거시의 발언이나 공약과 더불어 개인사와 성향,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분석이 함께 이루어져야 분석과 전망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에 제한되는 그의 엘리트 중심적인 분석법 때문일까?

    저자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평화운동을 하고 있고, 지도자들에 바치는 정책보고서가 아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런 점을 지적하는 것은 먹물 근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다 많은 이가 이 책을 읽고, 거대한 그물망의 공간 속에서 상쟁과 공멸이 아닌 상생과 공영의 2012년 체제를 열어갈 한반도의 올바른 선택의 침로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때 필자의 그런 우려는 기우로 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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