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즈음에 자서전을 쓰다. 아니, 벌써?
        2009년 04월 20일 0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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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은 그의 노래 <서른 즈음에>에서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멀어져가는 나날의 하루’를 읊조렸다.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은 점점 멀어져가고, 사랑도 그렇게 잊혀져가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서른 즈음의 삶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 무렵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김광석처럼 세상을 뜨지는 않지만, 누구도 서른 언저리에 걸터앉게 되면 그의 노랫말의 잿빛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없다. 민태원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이라며 ‘청춘예찬’을 하고, 소설가 김승옥이 ‘성욕조차 메마른’ 20대 청춘의 치열한 고뇌를 털어놓을 때, 김광석은 30대의 ‘뿌연’ 유리창 너머로 사라져가는 청춘과 이별 연습을 했다.

    30대, 청춘과의 이별 연습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서른한 살에 자신의 삶과 자신의 청춘을 ‘자서전’이라는 구조물에 전시해놓고 “한번 관람해보실 테냐”고 물어보고 있다. 아니, 벌써?

       
      ▲ 『신호등 건너기 게임』 표지

    <레디앙>에 ‘13년째 신인개그맨’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가끔’ 쓰고 있는 신민영이 그 사람이다. 그가 저자로 데뷔한 첫 책 『신호등 건너기 게임』은 출판사 <텍스트>가 기획 출간 중인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 제 1편이다.

    신민영은 흔히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해 놓고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노회찬 의원 인턴 보좌관을 지냈는가 하면, 미장원 주인이 된, 그리고 얼굴이 귀공자처럼 하얗고 한때 레게머리를 하고 다닌’ 이상한 총각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정도만 해도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그의 외형에 대한 ‘스펙’은 충분하다. 들쑥날쑥, 좌충우돌하는 이 모순의 스펙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너 왜 그렇게 사니?”라고 묻고 싶어지는 게 자연스런 일이라는 얘기다.

    이 책은 그런 신민영이라는 사람의 개인적 궤적이 궁금한 사람에게 궁금증을 충분히 풀어준다. 하지만 그에 대해 개인적 관심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이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이 적지 않다.

    그는 고아 출신의 건설노동자 아버지와 집안에서 알바 부업도 하고 가전제품 판매 사원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봉제노동자인 외할머니와 함께 가난을 등에 짊어지고 어린 날들을 살아왔다. 어린 신민영의 등에 올라타 있는 가난이야 무거운 것이라기보다,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너 왜 그렇게 사니?”

    그가 ‘귀공자 같은 흰 얼굴’을 갖게 된 배경도 그 시절, “넌 이제 많이 컸으니까, 집에 혼자 있어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하루 종일 지하 방에서 갇혀 있어야 했던, 4살 시절의 태양 빛과 관련된 것이다.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은 곳에서, 밤이 되면 울며 보내야했던 그 시절은 눈물겹다(하지만 그는 절대 찔찔대거나 징징대지 않는다. 이 점은 이 책의 저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이다).

    어린 신민영을 떼어놓고, 더 어린 것을 등에 업은 채 그의 어머니가 향한 곳은 ‘미용학원’이었다. 그가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며, 나중에 ‘트위스트 헤드’라는 머리 가게를 운영하게 된 뿌리이기도 하다.

    이밖에 그가 30년 동안 살아오면서 겪을 일들. 예컨대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이 발표된 1988년에 지하방을 탈출 상계동 아파트로 이사 간 초등학교 시절 생긴 일, 중학교 1학년 때 신문을 돌린 일, 강남 애들한테 지지 않으려고 무섭게 공부한 얘기(학원에서만), 대학에서 NL 계열의 ‘애청’에 들어가기 전후의 이야기, 사법시험 준비 과정, 미장원 운영 얘기, 노회찬 의원실 근무기 등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그의 거칠 것 없고 유머가 섞인 문체로 이 책 전반에 푸짐하게 널려져 있다.

       
      ▲ 신민영 씨

    이런 얘기들은 아주 사적이면서 동시에 저자 역시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기록의 측면도 있다. 신민영이 반장을 했던 고2 시절, 거대한 폭력을 행사하던 선생에 맞서, 교탁을 발로 걷어찬 후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 거리를 헤매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온 이유는 이렇다.

    “공부 안 하면 나만 손해다. 나 잘 되는 게 이기는 거다.” 착하다. 그 시대가 낳은 전형적인 순종하는 학생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누가 그럴 수 있겠나.

    가장 늦은 사람에 맞추어진 신호등

    그런데 신민영은 왜 지금 시점에 ‘자서전’을 썼을까. 자랑스러운 인생을 알리고 싶다거나, 책 팔아서 큰 돈을 벌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출판사에서 쓰라고 해서 그랬다거나, 뭐 이런 건 아니라고 할 것 같고, 그런 게 이유가 됐더라도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을 터, 그렇다면 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이 전달해주는 경청할 만한 메시지는 분명히 있는 듯싶다. 그런 게 도무지 없으면서 자서전을 쓴다는 건 좀 곤란한 일 아닌가. 필자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 그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목을 통해 전하고 있다. ‘신호등 건너기 게임’. 책 앞머리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조금 긴 듯하지만 옮겨 적어본다.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신호등이 빨간색이든 보라색이든, 좌삼삼 우삼삼으로 켜졌다 꺼지든 말든 상관없다. 외부 상황이 아무리 복잡하게 돌아가더라도 기준은 길 건너는 사람 중 가장 늦은 사람이 설정한다.

    이 사람과 나란히 건너거나 이 사람보다 조금 빨리 건너기만 하면 보상(안전한 횡단)이 주어지는 게임. 일등으로 건너겠다고 달음박질치거나, 세계 최고의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전지훈련을 다녀오면 도리어 바보가 되는 게 이 게임의 특생이기도 하다.

    일등이나 꼴지나 모두 가치를 인정받는 게임, 약자를 기준으로 짜인 게임 규칙. 그러고 보니 약육강식이 상식으로 된 지 오래된 ‘동물의 왕국’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신호등 게임보다 인간적인 상황을 별로 본 적이 없구나!”

    신호등 게임의 의미를 조금만 확장하면 우리는 최저임금제를 더 줄이겠다거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사회적 최저수준-social minimum-에 무관심한, 신호등 게임이 아니라 정글 게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상은 약자들의 희망보다는 강자들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더 많아서, 이런 희망이 쉽게 실현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이웃의 고통을 보면서 자신이 겪은 ‘가난의 시대’를 기억해내고 함께 아파하면서, 그 같은 공감의 감수성이 길어 올린 위와 같은 통찰은 강자들의 욕망과 대적하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30대에 자서전도 쓰는 마당에.

       
      ▲ 『그늘 속을 걷다』 (왼쪽)와 『키보드 워리어의 전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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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002 『그늘 속을 걷다』

    김담, 소설가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 통일문학상 수상’ 1994년 귀향해서 마침내 ‘숲’을 발견한다. 그 숲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부분으로 남아있는 한국전쟁 전후의 방대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소설의 공간이자 김담의 삶이 깊어지는 공간이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003 『키보드 워리어의 전투일지』

    한윤형, 인터넷 논객
    고3 때 서울대와 <조선일보> 공동주최 논술대회서 대상 수상.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함으로써 소년 키보드 워리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인터넷 정치 게시판과 블로그에서 아흐리만, 멜코르 등 ID로 종횡무진했다. 조숙한 소년 아흐리만에서 이제는 군필하고 복학한 청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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