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아예 학교를 없애죠"
    2009년 04월 17일 09: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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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교육과정평가원은 일반계 고교 재학생의 지난 5년간 수능성적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아, ‘분석’이라는 단어를 빼고, “지난 5년간 수능성적 결과를 공개했습니다”가 보다 정확합니다. 여기서 마쳐야 합니다. 솔직히 글을 접고 싶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추측만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특목고 입학의 조건

‘학교간 격차가 최대 73점’이라고 교육과정평가원은 밝힙니다. 그래서요? 우리나라는 소득에 따라 거주지가 분화되어 있습니다. 부자동네가 있고, 가난한 동네가 있습니다. “쟤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라며 임대아파트와 벽을 쌓는 게 우리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동네에 따라 학생들 성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가난한 동네의 학교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부산 연제구, 해운대구, 광주 남구, 경기 과천시, 경기 가평군, 동두천시, 의왕시 등이 상위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요? 거긴 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있는 지역이거든요.

그리고 특목고에는 있는 집 아이가 많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특목고에는 월소득 400만 원 이상 가정의 자녀가 거의 절반(46.9% = 18.2 + 17.7 + 11.0)입니다. 일반고 25.4%보다 2배, 실업고 14.3%보다 3배 정도 많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06년 연구보고서 <교육격차: 가정배경과 학교교육의 영향력 분석> 중

그러면 그 지역의 성적이 좋은 게 학교 때문일까요. 가정 배경 때문일까요. 또한 특목고 하나 없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가 상위권에서 간혹 발견되는 이유는 뭔가요. 이에 대해서 교육과정평가원은 아무런 분석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섣부른 진단은 금물입니다.

전남 장성군과 경남 거창군이 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요? 거긴 ‘기숙형 자율학교’ 위주로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기숙형 자율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을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장성과 거창의 모 고등학교에 그 지역 출신 학생들은 도대체 얼마나 되나요. 그리고 타지에서 올 정도라면 어느 정도 여력이 있어 보이는데, 그 학교의 학생들은 어떤 가정배경을 가지고 있나요. 물론 교육과정평가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이래서 수능성적자료 발표의 의미는 ‘공개’ 뿐입니다. 뭐라고 덧붙이는 순간, ‘유언비어 살포’일 수 있습니다. 원인 분석이 없으니까요. 남은 건 무의미한 숫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숫자들이 살아 숨쉽니다. “어디는 몇 등이고, 어디는 뒤지고, 어디는 잘했대”로 보도되고 회자됩니다. 그러면 현 정부의 ‘경쟁 교육’에서는 성공한 겁니다.

전남 장성과 경남 거창에 기숙형 학교가 있었다

지난 번 일제고사 결과 발표와 똑같습니다. 성적을 보여주는 숫자가 있기는 한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합니다. 아니, 원인을 분석한 연구 없이 그냥 숫자만 내놓습니다. 그리고 100이나 90이라는 숫자들은 자동적으로 ‘한 줄로 나란히’를 합니다.

성적, 즉 학업성취도에는 여러 가지 변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국내외 연구결과들에서 밝힌 변인들을 가지고 ‘요즘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일반적인 조건’을 말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대졸 이상의 엄마 아빠
전문직 이상의 아빠
돈 많이 버는 아빠 또는 할아버지
영어되는 엄마
집에 있는 엄마
입시정보에 빠른 엄마
정보망과 인맥이 있는 엄마
자가용 2대 이상 보유한 가정
무조건 비싼 사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사교육시장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엄마
좋은 동네
학원시장이 발달한 동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와 대학입시에 관해서만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
독립적이나 반항적이지 않은 아이공부가 즐거운 아이
전문직 이상을 꿈으로 하는 아이(교사, 간호사, 경찰, 어른 등 평범한 꿈이 아니라)
“쟤랑은 놀지 말라고 했잖아”는 부모의 말을 잘 따르는 아이
자신감 있는 아이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
간혹 이기적인 아이
TV와 컴퓨터 게임을 자제하는 아이
함께 나누는 것보다 경쟁에서의 승리에 목마른 아이
교사나 부모의 말을 잘 듣거나 그런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
면학분위기가 괜찮은 학교
오래 공부시키는 학교

“IQ가 높거나 머리가 똑똑한 아이는 왜 없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일랑은 하지 마십시오. 일단 가정 배경이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 동네 환경, 학생 개인의 특성, 학교풍토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격차라는 게 발생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온통 ‘학교 효과’만 말합니다. 지난 번 일제고사 결과 발표할 때는 임실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이번 수능 결과 발표에서는 “교장 리더십, 교사의 열정 등 학교효과를 심층 분석하여 학업성취를 향상시키는 주요 요인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은근슬쩍 내비칩니다. ‘전남 장성의 기적’이나 ‘경남 거창의 기적’을 만들어냈겠다는 뜻입니다.

   
  ▲ 사진=희망연대

뭐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할지는 뻔하니까요. 교육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이 발행하는 계간지 최근호에 한 지역의 기숙형 자율학교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이후 일류대 합격생을 상당수 배출하고 있다는 이 학교 재학생 중에서 그 지역 출신 학생은 300명 중 170명입니다. 나머지 130명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20명을 비롯하여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입니다. 성공 비결은 영재반에서 시작됩니다.

“이 학교는 1학년 때부터 영재반[30명]을 편성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영재반에서 제외, 장학혜택을 줄이는 자극을 통해 학생들을 독려한다. 인문계 학생 절반 이상이 3년간 수업료 면제 등의 장학혜택을 받고 있으며 최상위그룹에게는 학업격려금 500만원과 사이버학습을 위한 개인 노트북까지 지급하고 있다.” …

“인문계 학생 전원이 생활하는 기숙사인 OOO의 형광등이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새벽 1시 30분부터 6시까지, 4시간 남짓이 고작이다.” …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출입문 한 켠에 책상을 놓고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사감교사가 학생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하지만, 이 교사의 역할은 결코 ‘감시’에 그치지 않는다.” …

“평일의 외출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휴대전화 사용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각거리며 연습장을 굴러다니는 볼펜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

“이 학교 교사들은 서울 일류학원의 문제집을 구해 자체 분석한 뒤 이를 학생들에게 맞게 재구성해 가르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이 앞으로 여기저기에서 쏟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일제고사 성적을 높이기 위해, 수능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교와 지자체에 현수막을 달기 위해 “저 학교는 저랬다는데 여기는 왜 이 모양이냐”와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는 주문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아예 학교를 없애는 건 어떨까요

이럴 바에는 아예 학교를 없애는 건 어떨까요. ‘무늬만 학교’나 학원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어려울 것도 없어 보입니다. 현판의 교(校) 자를 원(院)으로 바꾸면 그만입니다.

자율형 사립고는 자율형 개인학원, 기숙형 공립고는 기숙형 공영학원, 마이스터고는 전문 직업기술학원, 자율학교는 학원, 국제중은 국제학원, 초등학교는 초등보습학원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초등보습학원은 국제학원 대비하고, 국제학원은 자율형 개인학원 대비하고, 자율형 개인학원과 기숙형 공립학원은 SKY 학원 대비합니다.

학원 안에서는 영재반/ 보충반 나누고 다양한 ‘당근과 채찍’으로 면학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간혹 전국 일제고사나 수능성적을 가지고 전국 1등부터 꼴등까지 학원들을 줄세우면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할 때 많은 도움이 되겠죠. 외면받는 기피 학원은 문닫고, 몰리는 선호 학원은 지필고사 등으로 학생을 고릅니다.

이렇게 되면 학원들은 다른 시장처럼 명품/ 짝퉁/ 박리다매 학원으로 나뉘겠죠. 경제력과 정보력이 있는 가정이냐 아니냐에 따라 명품이냐 박리다매냐로 갈라지겠죠. 뭐,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와 친하고, 부자들은 이 참에 “재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를 제도적으로 할 수 있고, 부자집 아이는 일찌감치 다수의 없는 집 아이들을 제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겁니다.

그러니 일제고사 성적을 시군구별로 찔끔, 수능성적을 상위 시군구 20개만 찔끔,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아예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일렬로 줄세웠으면 합니다. 초등학생도 전국 1등부터 60만등까지 석차를 매겼으면 합니다. 미사여구일랑 짚어치우고 ‘경쟁 교육’의 목적에 걸맞게 제대로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명박 학습 효과’라도 생깁니다. 그래야 다음에는 ‘평준화 해체’나 ‘초등학생도 경쟁’이라는 말을 감히 내뱉지 못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 등 경제학 전공자들의 다음 행보가 심히 기대됩니다. 조만간 국회의원 및 보좌관들은 수능 원자료 전부를 볼 수 있을텐데, 다양한 통계 기법을 동원하여 “전교조가 있으면 수능 점수가 떨어진다”느니 “평준화를 하면 서울대 못 간다” 등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주장들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학생 인권 무시하고 사육하면 성적 높일 수 있다”도 괜찮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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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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