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하게 사는 게 왜 이리 힘든가요?”
        2009년 04월 16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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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쌍용자동차에 다니는 남편을 둔 아내 배은경입니다. 남편은 노동조합 간부입니다. 노동조합을 안방 삼아 지내온 지 넉 달이 되어갑니다. 일주일에 고작 한두 번 집에 들어와서는 병 든 닭 마냥 곯아떨어집니다. 하루 종일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을 텐데, 그 다음 날이면 또 무슨 일이 있는지 아침 일찍 일어나 밥 한 끼 편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출근을 서두릅니다.

       
     

    며칠 전 남편이 삭발을 하고 집에 들어왔더군요. 너무 놀란 아들 두 녀석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멈칫 물끄러미 쳐다보며 안아주질 않더군요. 처음엔 저도 많이 속상해서 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남편 하는 일에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본인 자신도 외모 중에 제일 아끼고 신경 쓰는 머리를 잘랐으니 저보다 더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을 겁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안아주지 않고

    한 때는 남편이 가정 일에 소홀해서 남편 하는 일이 이해도 안 되고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 보았지만, 아이 키우고 제 나이 마흔이 되어 직장을 다시 구해보려 했지만, 우선 나이가 걸리고 아이 보육에도 지장이 있을뿐더러 시간에 맞는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실이 이러한데 당장 해고되면 우리 남편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아이들을 책임지겠습니까?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평범하게 사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냐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왔건만, 아니 다른 직장은 생각도 안하고 열심히 시키는 대로 주야 잔업하며 성실하게 근무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 남편은 습관적으로 말해왔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일들이 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보다 나은 세상 위해 한다고. 예전엔 이해못했지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2월부터 수요일마다 촛불집회를 열기 시작해서, 지난 주까지 8번 정도 했나 봅니다. 저랑 아들은 수요일엔 여기에서 아이 아빠를 보는 셈 치고 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이 참여하는 집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회를 거듭할수록 집행부 얼굴만 익숙해져 갔습니다.

    가족들도 오는 가족들만…. 그래도 계속 하다보면, 조합원들이 나와 주겠지, 날씨가 풀리면 함께 하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3명 중 한 명이 잘려나갈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고, 조합원들은 ‘자신은 아닐 거야’ 하는 기대감에 쌍용차의 사태를 그다지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제 회사의 회생안을 보니, 기능직에선 두 명당 한 명이 정리해고되게 되어있더군요. 내 남편 아니면 바로 옆의 동료가 잘려 나가게 된 겁니다. 기름 얼룩도 지고 꾸깃꾸깃해진 작업복이 멋지진 않았지만, 그것 밑천 삼아 일해 왔는데.

    이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은 살아남고 절반은 작업복을 입을 수 없게 된 겁니다. 당장의 생활고는 이루 말할 수도 없겠죠. 아이들 커가면서 으레 지출했던 학원비, 옷값, 외식 등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매달 나갔던 주택 융자금, 차 할부금은 정말 큰 부담입니다.

    전에 누리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게다가 전에 누리던 것을 갑자기 못하게 되면서 마음이 얼마나 작아지고 유치해지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뭐 사달라고, 뭐 해달라고 할 때마다 “이제 우리 돈 없어. 진짜 어렵단 말이야”. 세상에, 쌍용차에 다니면서 이런 말을, 엄살 피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돈이 없어서 못해주겠다는 말을 아이에게 하리라곤 상상도 못해 보았습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 얘길 들어보니, 회사는 노동조합을 의논 상대로조차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회사입장을 발표할 때에도 노동조합에게 공문 한 장 달랑 보내곤 언론을 통해 먼저 알게 했답니다.

    지금까지도 노동조합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하지 않았다더군요. 넉 달 전 일이 생각납니다. 밀린 12월 월급 나왔다고 기뻐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쌍용차가 법정관리 되었다는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듣고선 화가 치밀었습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다니는 회사를 이따위로 막 취급하고 도망간 상하이자동차 사장에게 욕이 절로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 시작인 것 같아요 . 여기 계신 조합원들이 한 몸 한뜻으로 움직이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에서는 “함께 살자!”고 얘기합니다. 너와 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살자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얼마나 감동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자기만 살자고 하는 게 아니고. 단 한 명도 해고되지 않도록 힘을 모으려고 하고, 다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기 일자리를 지켜낼 그 어떤 보호막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 숱하게 널려 있는데, 고맙게도 우리에겐 노동조합이 있고, 함께 손잡아줄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일터는 내가 지켜야 합니다. 남이 지켜주지 않습니다. 아빠들이 투쟁할 때 우리 가족들도 힘껏 응원하고 함께 싸우겠습니다.

    사랑하는 당신도 힘내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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